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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과 절제의 미

윤진섭

단순과 절제의 미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한 작가의 작업 전반을 살펴보면 대개 전 활동을 관류하는 공통적인 키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조각가 김인겸의 경우, 그것은 ‘단순’과 ‘절제’의 미가 아닐까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다양한 양태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도달하게 된 어떤 지점을 향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획득한 미의 에센스, 나는 그것을 가리켜 ‘단순과 절제의 미’로 규정하고자 한다. 사실 김인겸의 미니멀 조각의 에센스는 단순과 절제라고 하는 이 두 진자 사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변용 양상과 관련돼 있으며, 그 에센스의 집합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회고전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의 주된 내용인 것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린 김인겸 회고전은 여러 관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지만, 성격이 회고전인 만큼 작가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들이 곁들어 짐으로써, 40여 년에 걸친 창작활동의 족적을 추적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장점으로 돋보인다. 물론 김인겸 조각의 전모를 온전히 드러내기에는 전시 공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회고전은 김인겸의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밀도가 높아 보였고,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보완적이거나 자기 충족적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글은 70년대 초반 이후 현재에 이르는 김인겸 조각사를 한 눈에 조망해 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기술된 것임을 밝혀둔다. 

Ⅱ. 김인겸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다룬 화집1)의 연보에서 자신의 환기 시리즈의 근원이 격자형 창호에 난 작은 사각 구멍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자연에 인공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길 즐기는 한국 전통건축 미학의 속성상 격자형 창호는 예외에 속한다 할 수 있는데, 김인겸은 바로 여기에 눈길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양반계층이 거주하던 기와집의 공간미학의 대표격인 ‘차경의 미’를 으뜸으로 치는 바, 이 때 열린 문들이 일자형으로 관통하는 공간구조 역시 한국 전통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 문들의 구조가 작은 틈이 확장된 형태라 할 때 김인겸의 미니멀 조각은 한국의 전통적 공간 구조에 그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등학교 시절에 이미 격자창 창호에 난 작은 사각형의 구조에 눈길을 주면서 비롯된 김인겸의 미의식은 훗날 그가 천착하게 되는 ‘단순’과 ‘절제’의 미학을 그 당시에 이미 내장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인겸은 미에 관한 한 까다로울 정도로 깔끔하고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작업과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치밀한 사람이다. 그 한 예가 바로 그 자신의 작가적 이력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베니스비엔날레 참가와 관련된 일화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건립되던 첫 해(1995)에 참여작가로 결정된 김인겸은 건축가에게 요구한 설계 변경 요청과 이를 둘러싼 제반 진행상황이 원활하지 못하여 몹시 혼란스럽고 힘겨워했던 것 같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당시 술회의 일부이다. 

“한국관 개관과 함께 첫 번째로 참가하는 작가로서 한국관이 과연 미술관의 전시공간으로써 그 기능을 얼마만큼 책임질 수 있는 건축물이었는가에 대해 분명한 소신 표현이 있어야 되겠다는 책임감과는 달리, 오히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나를 멈칫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이번 행사를 통하여 받은 의외의 고통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이 이야기는 내가 베니스비엔날레의 대표작가로 발표된 후 전시 공간 문제로 소모전을 벌여야 했고, 종국에는 출품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를 지경으로 자신을 혹사시켰던 사실들로써, 혹 나 개인의 신상발언이 될까 자못 조심스럽다.”2)

작가에 따라서는 대충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는 이런 사안에 대해 고심하고, 심지어는 “출품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3)에 이르기까지에는 매사 치밀하고 완벽을 기하는 김인겸의 성품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해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귀국전에 출품을 거부하는 한편, <공간>지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축에 대한 비평문을 기고한 바 있다.4) 
  
나는 김인겸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책임을 다 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적 자세야말로 평생을 자신이 추구하는 미적 이념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고 본다. 또한 그 뒤에는 아들의 활동과 행적을 늘상 지켜보며 원군(援軍)이 되어준 어머니가 있었다. 

“본인 자아 속에서 스스로 우러난 금지, 집념 한 치도 어김없이 바른 길, 바른 문을 열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상상 못하고 있는 자연에 깊숙하게 들어있는 고고의 것을 한 손길로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중략)...김인겸 작가 긍지와 집념 속에서 우러난 우리 문화 창조적 바다와 같이 길이 뻗어나갈 고귀한 작품으로 우리의 것을 넓히고 발받침에 문이 열렸으니 한 손길로 이루어진 획득으로 안다. 이것은 엄마의 생각, 사소한 이야기나 같다. 대견한 마음 금치 못한다. 한 자리에 시간 없어 글로 감회를 베푼다. 1988년 10월 15일.”5) 

미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어머니의 글이라 하기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예리한 통찰력을 느끼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연’, ‘고고’, ‘문화 창조적 바다’, ‘고귀’, ‘우리의 것’과 같은 어휘들은 김인겸의 예술세계를 요해할 수 있는 키워드들로서 매우 암시적인 데가 있다.
 
사실 작가주의 정신에 충실한 작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투철한 긍지와 집념을 지닌 자로서, 자신이 선택한 예술적 이념을 위해 평생을 일관되게 사는 법이다. 그렇다고 할 때, 김인겸이 수미일관되게 살아온 40여 년에 걸친 작가적 족적은 전업작가로서의 전형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Ⅲ. 김인겸의 작업에서 조각과 별도로 논의돼야 할 것이 바로 드로잉이다.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참가에 이어서 김인겸은 퐁피두센터 미술관의 초청으로 도불하게 되는데, 2004년까지 이어진 이 기간에 그는 일련의 드로잉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그는 이 드로잉 작업을 ‘드로잉 스컬프춰(Dessins de Sculpture)라고 부르고 1997년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드로잉 연작이 주목되는 이유는 2차원 평면 위에서 3차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드로잉을 단순히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독자적인 영역으로 대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작업에 대해 기울이는 그의 애정은 조각에 못지않으며, 그 양이나 질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드로잉 작업을 ‘회화적 조각(Pictorial Sculpture)’라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이 조각은 분명 아니되, 평면 위에서 이루어진 드로잉의 자취들이 끊임없이 3차원의 조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디안 잉크를 비롯하여 금색 내지는 은색 잉크와 같은 반투명한 성질의 재료적 성분에 기인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 일회적이며 즉발적으로 그려진 형태들이 미니멀한 조각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인겸은 <종이 조각(Paper Sculpture)>(Drawed paper, 16x1.5x39cm, 1997)이라는 제목의, 종이를 여러 개 오려 겹친 검정색 종이 입체작품을 제작한 오브제 작품을 시도한 바 있다.
 
1997년 이후, 김인겸은 신문과 사진 잡지, 편전지, 표면이 매끈한 화지(畵紙) 위에 스펀지나 스퀴즈를 사용하여 즉발적인 단색의 드로잉 연작을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하여 제작하고 있다. 단색화(Dansaekhwa)의 계열에 속하는 이 작품들만큼 한국 단색화의 특징을 담고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검정과 청색, 엷은 주황색, 금색, 은색 등 단색의 잉크를 주재료로 사용, 스퀴즈를 잡은 손의 힘의 강약을 이용하여 방향을 달리 하며 단번에 제작하는 기법은 김인겸 특유의 날렵하면서도 섬세한 미감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섬세한 인조견이나 반투명한 모기장과도 같은 미적 효과를 발산한다. 스퀴즈의 단면이 지나간 자취들이 겹쳐지면서 그라데이션이 형성되고, 물감의 농도에 따라 투명과 반투명한 효과가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 은색과 금색의 물감은 검정색 바탕 위에서 춤추는 듯한 스퀴즈의 운필에 의해 기운생동의 기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동양미학의 한 특징이랄 수 있는 여백은 김인겸의 ‘조각적 회화’가 지닌 분명한 심미적 특장(特長)일 것이다. 사실 형(形)을 바탕에 포치하는 이 능력만큼 김인겸의 회화적 감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직관적으로 이 일을 해내고 있으나 그 능력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가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타고난 그의 예술적 재능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Ⅳ.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인겸이 생활 속에서 발견한 창 내지는 사각의 구멍이라는 모티브는 ‘틈’과 함께 그의 초기에서 중기에 이르는 작업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특히 미니멀한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김인겸 조각의 이해에 따른 필수적 사항이기도 하다. ‘열린(開)’ 공간과 ‘닫힌(閉)’ 공간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김인겸 조각의 구조적 특징은 일정한 단위의 반복과 함께 특히 <묵시공간>을 관류하는 기본이 된다. 이에 대해 일찍이 나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다소 긴 인용을 무릅쓰고 여기에 옮긴다. 

“<묵시공간> 연작의 조각가 김인겸이 최근 몇 년간 기본 어법으로 삼아 온 특징들은 비석이나 문, 또는 반구형의 고분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태들이다. 1988년 제1회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된 이같은 형태는 85년 무렵의 <환기-창> 연작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개폐공간’이라고나 할까. 네모진 입방체의 한 가운데에 역시 크고 네모진 구멍이 뚫린 이 작품들은, 어떤 것은 군데군데 열린(開) 상태로, 어떤 것은 완전히 닫힌(閉) 상태로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후에 김인겸 작업의 근간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마치 창문을 여닫듯이, 이들 커다란 몸체 속에 존재하는 네모진 작은 구조들이 ‘끼워 넣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고안된 구조가 이후의 작품에서 보이는 주요 특성인 각 구조물들의 ‘분리와 접합’이라는 조립식 구조를 지니게 하는데 힌트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특징은 <환기-창> 연작에서 보이는 가운데가 뻥 뚫린 사각의 공간이 <묵시공간> 연작에서는 매우 축소된 형태나마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틈(열린 공간)’의 요소는 75년 이후 일관되게 지속된 <생성> 연작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다.”6) 

위의 언급은 기하학적이며 미니멀한 미적 특성을 지닌 김인겸의 조각이 80년대의 <환기-창> 연작을 거쳐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에 이르는 <묵시공간>에 이르는 긴 과정 중에서 특히 90년대 초반까지의 흐름을 분석한 결과이다.7) 그 이후에 그는 1992년에서 1995년에 걸친 <Project>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며, 다시 그가 <묵시공간> 2기에 해당하는 작업을 펼치는 시기는 1996년에서 1998년에 이르러서이다. 그 중간에 <Project>라고 명명한 설치작업이 있다. 이제부터는 <묵시공간> 2기의 작업에 대한 기술에 앞서 <Project>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Ⅴ. 1992년에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발표한 <프로젝트 사고의 벽(Project-The Walls of Thought)>은 건축적 조각 혹은 조각적 건축이라 칭할 수 있는, 개념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대규모 작업이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독립된 방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건축의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으나, 미술의 관례에 속하는 화이트 큐브 공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현대 미니멀 조각의 확장된 형태로 해석된다. 이 프로젝트는 8개로 이루어진 독립된 방들과 중앙의 문에서 약간 비켜 서 있는 또 다른 3개의 독립된 방들이 위치한 불규칙한 형태의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철판 용접으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사각형의 방들 사이에는 오목과 볼록의 스테인레스 거울이 설치돼 있어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일그러진 형태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몇 개의 외부 조명이 천장에서 비추는 관계로 실내는 어둡고 묵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실내의 안에는 군데군데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어 명상적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관객은 전면에 좁게 트인 통로를 따라 구조물의 내부로 들어가게 설계돼 있는데, 벽 사이를 돌아 안으로 들어갈수록 침묵과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중앙의 방에 가까워진다. 

이 작품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며, 미니멀한 건축적 조각의 구조물 안에서 명상적이며 제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일종의 확장된 형태의 환경조각으로 간주된다. 이는 관조에서 참여로, “단순공간에서 체험공간으로/부분에서 전체로...(중략)....단층구성에서 복층구조로/갇힌 틈에서 열려진 공간으로/불확정적 상황에서 확정적 상황으로”8)의 전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이 일은 어느 글에서 김인겸의 <프로젝트>를 가리켜 그것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미완(未完)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지속될 성격의 것이란 의미로 기술한 바 있다. 작가 역시 이 프로젝트들이 좀 더 발전되지 못하고 단발적으로 끝난 것에 대해 일말의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9)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규모 설치작업은 미술계의 관심을 모으게 되고, 급기야 김인겸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초대작가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Project 21-Natural Net>는 김인겸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에 즈음하여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였으나10), 현지의 건축에 따른 제반 문제점은 준비단계에서부터 작가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문제의 출발은 “전시공간 문제의 해석”(김인겸)에 따른 어려움에 있었다. 건축물에 대한 건축가의 발상과 의도, 해석이 미술의 입장보다는 건축에 우선했기 때문에 파생된 이 문제는 결국 차후에 작가로 하여금 비판적 견해가 담긴 장문의 글을 잡지에 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11)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김인겸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1층에서 2층과 옥상에 이르는 건축 구조를 이용하는 <프로젝트 21-Natural Net>를 구상하게 된다. 이 대규모의 설치작업은 관객의 참여를 적극 유도한 것으로 관객의 존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도록 유도됐는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이르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 십대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12). 1층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는 반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든 수조가 설치돼 있고, 관객들은 계단을 오르며 조명을 받아 아크릴 통에서 영롱하게 빛나며 부글거리는, 수조 속의 물이 발생시키는 공기 거품이 내는 소음과 현란한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이 부글거리는 공기 거품은 타이머가 장치된 에어 컴프레셔의 공기조절의 의해 작동되게끔 설계되었는데,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기 거품이 발생하는 반투명 아크릴 너머로 전시장 밖의 풍경과 실내에 있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객들이 설치 작품의 밖에서 내부로 진입해 들어간다는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는 이 작품 역시 <프로젝트-사고의 벽>과 유사한 개념의 것이다. 그것은 조각작품이 단순히 밖에서 관조되는 기존의 형식을 넘어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동시에,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운, 조각의 새로운 형식과 개념을 부여한 작업이었다. 

Ⅵ.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지속된 김인겸의 <묵시공간> 2기에 이르면 우리는 보다 단순해진 형태를 만나게 된다. 2기의 <묵시공간>은 보다 단순해진 미니멀한 사각 형태에 난 사각의 구멍이 더욱 작아지면서 마치 작가가 중등학교 시절에 본 격자문 창호에 난 작은 구멍처럼 줄어드는데, 이를 가리켜 ‘원초적 상태로의 환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야외 설치작업이 됐든, 실용적인 의자의 모습을 띠었든지 간에 편지 봉투 형태를 지닌 이 시기의 <묵시공간> 연작은 대부분 스텐레스 스틸이나 기성의 합판 질감을 그대로 떠낸 브론즈로 제작된다.   
  
1998년, 제 2기 <묵시공간>이 끝난 이듬해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김인겸은 <묵시공간-공(Revelational Space-Emptiness)>를 발표하였다. 이 전시는 넓은 철판을 구부려 위에서 지긋이 누른 것과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을 비롯하여, 초승달과 같은 모양의 옆 단면을 지닌 것 등 완만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연작들은 2천년대의 <Emptiness>로 가는 도정의 과도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어지는 <Emptiness> 연작은 기하학적 단순미가 돋보이며 재료 또한 철이 주로 사용되었다. 조각은 덩어리의 예술이란 점에서 어떤 경우든 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조각의 존재론적 조건이라면 제목을 ‘빈 공간:Emptiness)’이라고 붙인 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일견 그것은 질료와 부피를 지닌 어떤 실체를 넘어선 정신성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다음에 옮기는 작가의 발언은 이 점에 대한 구체적인 표명이다. 

“근작 <스페이스리스(Space-Less)> 시리즈는 1900년대 말부터 제작해온 <빈 공간(Emptiness)> 시리즈에서 추구했던 조형의 영혼성 개념을 보다 구체화시킨 작품들로 평면과 입체,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공간적인 조각이라 할 수 있으며 물리적 공간과 사유의 공간이 하나 되는 시각적 일루전과 초월적 공간현상을 보여주는 ‘이미지 조각(Image Sculpture)’이다. 그동안 해온 ‘조각 같지 않은 조각’에서 이제 ‘조각을 떠난 조각’으로의 이동이라고 할까. 이것은 한 마디로 정신적 영역으로 열어가는 조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13) 

<스페이스리스> 연작은 스테인레스 판에 아크릴 우레탄 분채 도장을 해서 반짝이는 표면의 광택효과를 유발한 작품들이다. 이는 마치 ‘회화적 조각’ 드로잉을 입체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회색을 비롯하여 검정색, 흰색, 연한 적갈색으로 도색된 이 입체조각 작품들이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시각적 일루전을 유발하여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김인겸이 위의 인용문에서 <스페이스리스> 연작을 가리켜 “평면과 입체, 실체와 허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공간적인 조각”으로 칭한 이유이다. 즉 ‘이미지 조각’을 통해 정신성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Ⅶ. 김인겸은 한국에서 태어나 조각을 공부하고, 베니스비엔날레의 참가를 계기로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미술관의 초대로 도불하였다. 이후, 약 8년간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한 뒤 2004년에 완전히 귀국하였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무한과 영원, 그리고 초월’을 찾아 오랜 세월을 일관되게 작가적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삶은 한 순간도 멈춤이 없는 지속적인 창작으로 일관된 것이라기보다는 휴지기(休止期)조차 창작을 위한 여백의 시간으로 스스로 인정할 만큼 “의도적으로 작품의 외형적 생산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낸 시간도 많았다.”14) 이른바 긴장과 이완이 적절한 호흡을 갖출 때 쉬는 기간은 작품의 여백처럼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게 되며 그것은 새로운 창작으로 연결되게 된다. 어느덧 70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김인겸에게 있어서 이번 회고전은 한국 현대조각의 대표작가로서 그의 위상을 확인하는 동시에,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작업의 역사적 흐름을 통해 김인겸 조각의 독자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김인겸 초대전 도록서문>


각주) --------------------------------------------------------------------------------------

1) KIM IN KYUM, eMart Publications, Inc, 2011, 296쪽, 도판 참고. 
2) 김인겸, 앞의 책, 138쪽. 
3) 실제로 당시 그는 참여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문화부의 만류로 참가함. 
4) 김인겸,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비평, 공간 1995.9월호. 
5) 이 글은 당시 80세에 이른 작가의 모친이 아들의 첫 개인전에 다녀간 후 남긴 편지의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김인겸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회고전 오프닝에서 모친이 남긴 이 편지를 읽으며 평생의 힘이 되어주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출처:김인겸, 앞의 책, 302쪽. 
6) 윤진섭, 견고한 구축과 집합의 아름다움, 이 글의 출전은 <<공간>>(1991년 3월호)이며, 본문은 <<미술관에는 문턱이 없다>>, 재원, 1997년 판에서 인용한 것임.  
7) 참고로 김인겸의 화집 목차에 표기된 연대는 다음과 같다. 
   환기: 1986-1980, 묵시공간: 1991-1987, 프로젝트:1995-1992. 묵시공간1998-1996 
8) 이일훈, 공간체험 그리고 자유, 조각가 김인겸의 <프로젝트>를 대하며, <<공간>>, 1992년 7월호. 
9) 필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2017년 2월 16일. 여주 작업실.  
10) 1995년 창설 100주년을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정체성과 이질성-동서양의 만남’이었다. 김인겸은 이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고심하였으며, 한국관이 지닌 구조적 결함을 극복, 관객참여를 통한 현장 작업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11)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인겸,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비평, <<공간>>, 1995년 9월호를 참고할 것. 
12) 이때 모니터에 비친 관객의 영상은 건물 안에 장치된 CC카메라에 의해 찰영된 것으로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전송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13) 김인겸, 정신적 영역으로 열어가는 조각, 2011년 5월, 김인겸, 앞의 책 8쪽. 
14) 김인겸,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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