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탈속(脫俗)의 경계

윤진섭

탈속(脫俗)의 경계


윤진섭(미술평론가)


 김근태는 1970년대라고 하는, 한국 모더니즘의 시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작업을 통해 체험한 작가이다. 그는 20대의 시기를 엄혹한 군부 통치의 산물인, 황사 바람이 이는 공간 속에서 보냈다. 한편에서는 강압적인 군부 통치에 대한 저항이 거센 물살을 이루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발적인 침묵이 이루어지던 70년대란,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정치적 지형(地形)이었다. 지금 우리가 ‘단색화’라고 부르는 화풍이 본격화되던 70년대의 화단 공간은, 이를테면 정치적 진공지대와도 같은 곳이었다. 일각에서는, 가령 문단(文壇)에서는 현실참여를 부르짖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었지만, 화단(畵壇)에서는 아직 잠재된 상태로 머무르고 있었다. 화단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의 ‘현실과 발언’의 창립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민중미술의 등장은 이 그룹의 활동에서 서서히 그 맹아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근태는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간의 갈등과 충돌이 빚은 80년대 초반의 어수선한 혼란기에 화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는 70년대에 모더니즘의 교육을 받은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그룹을 결성하면서 화단정치의 본산인 주류미술에 저항을 하던 때였다. 김근태는 중앙대 회화과 출신들이 결성한 ‘전환의 회화전’ 그룹을 중심으로 현대미술 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는 [전환의 회화전], [종이작업전], [드로잉 검증전], [서울현대미술제]와 같은 일련의 모더니즘 계열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80년대 초반의 공간에서 작업에 대한 감각을 익혀 나갔다.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김근태의 단색화 작업은 따라서 굳이 그 계보를 따지자면 70년대의 단색화에 그 맥락이 닿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단색화 작업은 80년 중반에 이르러 본격화되기 시작했지만, 그 이념과 의식의 맹아는 70년대의 단색화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근태는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30여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을 단색화라는, 오직 한 우물만 파며 버텨왔다. 버텨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말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고 하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선사(禪師)가 면벽수도를 하듯이, 마음의 세계, 다시 말해서 내면의 세계를 물감과 캔버스를 통해 드러내는 일에 매진해 온 것이다. 그 세월이 무려 30여 년에 이른다. 단색화에 몰입해 온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지속과 항상성(恒常性)인데, 흰색이나 검정과 같은 무채색을 화두로 삼아 내면의 정서를 밖으로 드러내는 이 작업은 인고(忍苦)의 마음가짐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참으로 지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근태는 무명(無名) 속에서 자아의 본질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참나(眞我)’를 찾아나가는 구도(九道)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그는 80년대부터 노장사상에 깊이 빠져들었으며, 한편으로는 간화선(間話禪)을 통해 마음의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근태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작품은 궁극적으로 수행(修行)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마치 면벽 수도를 하는 것처럼 무형상(無形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연관된다. 이는 형태가 없는 화면의 구축을 통해 어떤 정신세계를 드러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근태는 우선 회화의 근본 원리인 평면성을 용인하고, 여기에 일련의 행위를 가함으로써 “회화는 하나의 평면이다”라는 존재론적 명제에 충실한 작업을 행한다. 그가 그리는 것은 어떤 대상 세계의 표정이나 사물의 외관이 아니다. 그는 내면의 세계에 충실히 접근하여 마치 선사들이 선(禪)을 수행하듯이 정신의 세계를 탐색해 나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선(禪) 수행을 연상시키는 작업이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참선도 하나의 현실이듯이 그는 정신의 세계를 샅샅이 살핌으로써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비물질적인 정신의 세계를 현실화(물질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 선사와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선(禪)에서 발현되는 정신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조선의 백자, 산, 암벽 등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의 세계를 가다듬는다. 그는 말한다. 
 
 “텅 빈 가운데 실체가 있고 고요한 가운데 숭고함이 있다. 텅 빈 그릇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쓰임새가 있듯이 화면을 채우기보다는 비워냄으로써 지극한 곳에 이른다.”

 이 지극한 곳이 바로 김근태의 작업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고요나 숭고와 같은 미적 가치가 싹튼다. 그는 흰색, 베이지, 갈색과 같은 단색의 물감을 여러 번에 걸쳐 화면에 바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색깔의 어떤 지점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것은 물질을 통한 정신의 발현이며, 수행의 결과로서 단색화의 한 양태인 것이다.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숨이 탁 막히곤 한다.....(중략).....그 커다란 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는 순간, 나로 모르는 사이 바람소리와 구름 한 점이 그 알 수 없는 처지를 벗어나게 하고는 한다. 글귀에 빠져들고 모양에 속은 어리석은 모습이 그 벽 앞에서 형태 없는 형태로써 한 줄기 빛으로 보여지고, 그 경계를 선(line)과 색으로 옮겨본다.”
                             -김근태, 작업노트 중에서-
 
 김근태가 여기에서 말하는 경계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장구한 세월동안 일관되게 <담론(Discussion)>이란 명제를 유지해 온 그는 이 연작을 통해 층위(層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물과 사물과의 경계, 사물과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와의 관계, 혹은 인간의 시선이 머무는 사물의 테두리와 그것의 배경으로서의 풍경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경계들이다. 그렇다면 그 경계는 구체적으로 그의 화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은 가령 캔버스의 바탕 위에 칠해진 검정색 위에 뒤덮힌 또 하나의 흰색의 층위 사이에서 비죽 모습을 드러낸 검정색의 자취들이 아닌가? 그가 계곡 안으로 깊숙이 걸어들어가면서 느낀 감정, 즉 벽에 부딪쳐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신비한 정신적 체험이 전이돼 물감과 붓질을 통해 드러난 이 경계가 바로 이 자취들이 아니겠는가? 
 김근태의 작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시간성이다. 시간의 축적과 추이는 그 자체 하나의 과정으로써 그의 작업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지만, 그는 시간이 배태한 켜를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오랜 세월 풍화된 흙벽이나 암벽, 분청사기의 질박한 느낌, 오래된 건축물이나 석탑에서 맡아지는 고졸(古拙)한 정취 등등은 김근태 회화의 특징을 이룬다. 그는 근본적으로 관념적일 수 밖에 없는 이 시간성을 모티브로 삼아 그것을 현재화한다. 그의 회화가 지극히 개념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의 그림은 붓질을 통해 반복된 그의 행위와 물감이 빚어낸 또 하나의 관념이 아닌가. 분청사기의 작은 반점을 연상시키는 김근태의 텅 빈 단색의 화면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연상을 통해 서로 교호(交互)되고 있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적 경험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그 계기로서의 시간이 관념적으로 만날 때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그의 단색 화면에 나타난 반점은 분청사기의 표면에 존재하는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관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숨이 탁 막히곤 한다.” 고 썼다. 그는 벽에 부딪쳤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를 구한 것은 오히려 바람소리요, 구름 한 점이었다고 들려준다. 나는 그의 회화가 바로 이러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천 길 절벽 위에서 질끈 눈을 감고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김근태의 회화는 사념(思念)의 장(場)이다. 그것은 경험의 축적으로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본, 감각의 총화이자 그러한 현상을 넘어서 오직 ‘물자체(Das Ding an sich)’ 즉, 사물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무명(無名)을 넘어서 30년간 추구해 온 그의 회화가 수련의 도정으로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져 있지 아니한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