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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공명(共鳴)

윤진섭

 풍경의 공명(共鳴)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지난 9월부터 DDP에서 열리고 있는 김영원의 조각전 [나-미래로]는 작가의 전 역량이 결집된 회심의 전시이다. 세계적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 : 1950-2016)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DDP 건물은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김영원은 이 거대한 건물의 안팎 공간을 이용, 17점에 달하는 대작들을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치밀한 계획 하에 배치하였다. 현재 이 작품들이 놓인 위치는 다음과 같다. 1층의 야외 전시장, 지하 2층의 어울림광장, 1층의 알림터 로비, 잔디언덕 등등. 
 김영원이 마치 거대한 우주선이 지상에 착륙한 것처럼 보이는 DDP를 종횡무진으로 관통하며 하나의 전체상을 이루기까지는 이 건물에 대한 그 나름의 치밀한 분석과 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긴장감의 소산이다. 특히 DDP처럼 거대하면서도 물방울과 같은 유동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태를 지닌 건물은 박스 형태의 모던한 기능주의 건물에 비해 배치의 난이도가 높은 것도 작품의 배치에 따르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치 인체 장기의 내부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 이 건물은 조각가에게는 하나의 모험이자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각가인 김영원은 정작 만들어진 작품보다는 이 기이한 형태의 건물과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조화시켜 거기에 생명을 부여하느냐 하는 문제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건축물에 종속되는 조각이 아니라, 건축과 조각이 대등하게 공존하고 상생하는 하나의 ‘풍경’을 연출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김영원은 건축과 조각이 야기하는 이 관계성의 미학을 가리켜 공명(共鳴)이라 명하고, 자하 하디드가 자신의 건축을 가리켜 ‘환유의 풍경(The Landscape of Metonymy)’이라 부른 것에 대해 자신의 조각을 ‘은유의 풍경(The Landscape of Metaphor)’이라 일컫는다. 다소 길지만 김영원이 이 기이하면서도 거대한 건물을 대면했을 때의 소회를 살펴보기 위해 그가 쓴 작업노트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자하 하디드의 DDP 건물과 나의 조각 작품이 대면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매우 흥분된 기분으로, 우선 이 건물을 세밀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DDP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위대한 정신에 공감하며, 공간의 감각 하나 하나에 묻어있는 숨결을 느끼고 무한한 존경과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유기적인 조형 질서로 이루어진 그 독특한 공간감과 물질감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조각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엄청난 조각과 대면하는 순간, 나의 조각 작품은 건물의 부속품이거나 장식품으로 보일 수 있는 우려가 컸기에, 큰 부담감을 가지고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김영원의 발언처럼, 자하 하디드의 DDP 건물은 거대하게 확장된 일종의 조각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건물의 은빛 외관과 동체를 사방으로 가로 지르는 복잡한 동선, 인체의 장기 속을 걷는 듯한 유기적인 건물의 내부 형태는 ‘단순과 복잡’의 이원론적 미학을 표방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평지에서처럼 단순히 자신의 조각품들을 배치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서 김영원은 작품의 배치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김영원은 자하 하디드가 ‘환유의 풍경’이라고 칭한 DDP의 건축적 특징에 주목했다. 물방울에서 모티브를 얻어 ‘흐름(flow)’을 본성으로 하는, 이 물질이 자아내는 유기적 형태와 자유로운 변신이 낳는 유연성에 주목, 결론적으로 “환유의 공간이란 단독으로는 완전하게 될 수 없는 물질적 공간”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 김영원이 느낀 것은 ‘과도한 물질성’이었다. 사실 자하 하디드의 DDP 건물은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외관을 무려 4만 5133장에 달하는 알루미늄 패널로 둘러 싼 것이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부른 것도 과언은 아니다. 게다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알루미늄 특유의 질감과 번쩍이는 은색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영원은 이처럼 ‘차갑고 메마르게 느껴지는’ 하디드의 DDP 건물이 지닌 모종의 결핍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과도한 물질성은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기운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질성이 강한 공간에는 인간의 숨소리, 인간의 향기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는 완전한 공간을 이룰 수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구상한 ‘인간의 은유’를 ‘과도한 물질성’이 야기하는 ‘비인간성’의 보완물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는 곧 피가 통하지 않은 차가운 DDP의 공간에 따뜻한 인간의 피, 즉 생명수를 흐르게 하는 구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에 대하여, ‘인체의 은유(Human metaphor)’라는 주제를 떠올렸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서로 상보하는 생명의 장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작품들 가운데서도 은유적 상징이 강한 작품들을 선별하기로 하였다.”(김영원, 작업노트 중에서) 
 
 김영원의 수혈의 전략은 즉각 실행에 옮겨졌다. 그는 마치 침구사가 혈(穴)을 정확히 찾듯이, 무려 19,500평에 달하는 DDP의 드넓은 공간에 자신의 인체조각을 배치하는 데 주력하였다. 우선 김영원은 DDP의 밖에는 두 개의 큰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두 개의 터널은 거대한 빵 덩어리를 엎어놓은 것 같은 답답한 구조물에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미래로’란 이름을 지닌 긴 다리와 또 하나는 ‘팔걸이’란 이름을 지닌 긴 곡선의 길이 그것이다. 김영원에 의하면 이 두 길은 “상식을 뛰어넘는 공간의 마법을 만나는 곳”이다. 

 “이 통로들은 터널처럼 뚫려 있는데 들어가는 문이며 나오는 문이기도 하다. 즉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하며 그 경계도 불분명하다. 지붕과 벽체, 각각의 층간 구분, 동선의 흐름 등등. 모든 공간을 ‘물’의 관점으로 풀어낸 건물로 해석되었다.”(김영원, 작업노트 중에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에 대한, 마치 상보(相補)와 상생(相生)을 기본으로 하는 한의학의 원리를 연상시키는 김영원의 해석은 기공수련과 선(禪) 수행을 통해 체득한 동양의 심오한 우주론에 입각한 그의 통찰에서 비롯된다. DDP 건물에 대한 다각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이러한 그의 해석은 물론 대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아랍 문화권의 태생인 자하 하디드가 영국과 스위스 등 유럽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컬럼비아와 예일대학교 등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코스모폴리턴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녀의 의식이 관류하는 다문화적 종합의 경지는 동양적 사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초기의 딱딱하고 각진 건축 디자인의 개념이 벽과 바닥, 천장 등이 상호 유기적으로 섞이고 확장되는 유기적 구조로 전환되는 가운데 파격적이며 역동적인 공간 미학이 탄생되기에 이른 것이다.1) 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 여기에서 나타난 유연성, 다원성, 탈경계, 모호성 등등의 개념은 박스 형태의 모던한 기능주의 건축에 저항하여 탄생한 포스트모던 공간에 다름 아니다. 
 김영원과 자하 하디드의 만남은 ‘풍경의 공명’이란 상호 조화의 미학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디드의 건물이 거대한 크기에서 오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기념비적인 ‘랜드마크(landmark)’가 아닌, ‘도시 생태 풍경(landscape urbanism)’으로서의 유기적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김영원의 조각은 DDP 건물의 내부를 중심으로 보행로와 광장, 공원, 잔디밭 등 건물의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 혈점(穴点)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가리켜 기(氣)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영원 조각전의 이번 플랜은 단순히 DDP 건물과의 조화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싸고 있는 주변의 도시 환경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거대한 웅자를 자랑하는 DDP 건물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빌딩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층고(層高)로 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멀리서 볼 때 마치 빌딩의 숲 속에 웅크리고 앉은 은빛 딱정벌레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 두산타워, 밀리오레, 롯데백화점 등등 거대한 빌딩들이 밀집한 동대문 인근의 상가는 몰려드는 인파와 차량들로 늘 북적이며 따라서 그만큼 피로도가 높은 곳이다. 이처럼 번잡한 도심에 조각작품들이 놓여짐으로써 삭막한 도시 환경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김영원의 조각과 자하 하디드 건축의 만남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Ⅱ. 김영원은 높이가 무려 8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작품 <그림자의 그림자-길>(브론즈, 2016)을 DDP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미래로(未來路) 앞에 설치하는 것으로 자하 하디드와의 수담(手談)2) 바둑의 대국에서 기사들이 흰색과 검정색의 바둑돌을 주고 받는 일을 가리켜 대화를 한다는 의미로 일컫는 말. 말이 없어도 서로 뜻이 통한다는 의미. 여기서는 이 두 사람의 걸출한 예술가가 바둑을 두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둑에서 흔히 쓰는 이 비유를 사용하기로 한다. 
을 시작했다. 이곳은 DDP로 들어서는 관문으로서 그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이 작품을 여기에 놓았다는 사실은, 첫 바둑돌을 판상(板狀) 위에 놓을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DDP 건물로 들어오는 관람객들과 이 건물 앞의 사거리를 지나가는 보행자들, 길 건너의 롯데백화점과 두산타워, 밀리오레 혹은 동대문과 장충체육관 방향에서 진입하여 이 작품 앞을 스치는 차량들 속 승객들의 시선까지 고려한 이 작품의 배치는 따라서 본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빌딩의 맞은편에 배치된 <그림자의 그림자-꽃이 피다>(브론즈, 2016) 역시 높이가 8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다. 마치 활짝 핀 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높이 솟은 인체의 상부가 여섯 개의 부분으로 잘려 대칭으로 벌어진 모습을 띠고 있다. 칼에 의해 예리하게 잘린 것처럼 묘사된 인체의 내부 단면은 평면으로 처리돼 있으며, 바깥 부분은 납작하게 단순화된 인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인간의 역사를 꽃에 비유, 일종의 알레고리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실존과 생존이 동일함’을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둘러본 뒤 알림터와 배움터의 사이에 있는 팔걸이 안쪽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 이 건물의 뒤편에 위치한 보행로의 중간에 우뚝 서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작품과 마주하게 된다. 높이 5미터에 이르는 브론즈 작품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2010)가 그것이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가다 허리께에서 두 부분으로 절개돼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이 거대한 작품은 마치 결코 만날 수 없는 자웅동체처럼 인간의 슬픈 운명에 대한 연민의 정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 2층의 어울림 광장은 늘 인파로 분주한 곳이다. 동대문역사 문화공원역 1번 출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과 나눔관 입구에서 어울림광장 쪽으로 난 긴 비탈길로 내려오는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 넓은 광장에 김영원은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브론즈, 높이 5미터, 2016), <그림자의 그림자 08-4>(브론즈, 높이 2미터, 2008), <그림자의 내면>(브론즈, 높이 1.8미터, 2014), <절하다>(브론즈, 높이 0.8미터, 2014> 등 총 4점의 작품을 배치하였다.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는 흰색의 우레탄 도료로 칠이 된 작품으로서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그림자의 그림자-길>처럼 인체의 앞과 뒤가 구분이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연작들은 마치 입체파 그림처럼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인체로 인식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 앞에는 검정색으로 칠해진 <그림자의 그림자 08-4>가 놓여 있어 마치 바둑돌처럼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음양을 고려한 배치로써 동양의 음양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울림광장에는 마치 인체가 위로 솟아오르는 시간의 추이를 표현한 두 점의 흑백 조각품이 놓여 있다. 하나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인체가 하나로 합체된 조각상(<그림자의 내면>, 검정색)이고, 다른 하나는 엎드려 부처님 앞에 절하는 포즈(<절하다>, 흰색)이다. 이 두 점은 시간성을 조각의 양괴(mass)에 부여한 형식실험적인 작품들로서 다면체적인 인체의 표현과 함께 새로운 시도에 속하는 것들이다. 
 팔걸이의 긴 터널을 통과한 관람객들은 배움터 건물 뒤편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의 잔디밭 입구와 끝 쪽에 놓인 <중력 무중력 2002>(브론즈, 높이 2.2미터, 2002)와 <중력 무중력 81-5>(브론즈, 높이 2.8미터, 1981), <중력 무중력 82-6>(브론즈, 높이 1.8미터, 1982) 등 3점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들은 미래로의 통로에 위치한 <중력 무중력> 군상 시리즈와 함께 김영원이 사실적인 조각에 몰입하던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로서 <중력 무중력> 시리즈의 백미에 속하는 것들이다. 사실적인 인체조각을 통해 상황성을 부여, 현대의 산업사회 속에서 고독과 소외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초현실적 기법을 통해 표현한 작품들이다.
 1층 알림터의 로비에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후반에 제작한 작품들 중에서 이 시기의 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을 선별해서 배치하였다. <그림자의 그림자2>(FRP에 채색, 높이 1-2미터, 가변 설치, 2008), <제3의 예술을 위하여>(무쇠기둥, FRP, 높이 2.5미터, 1997), <중력 무중력 88-2>(브론즈, 높이 1.5미터, 1988),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검정거울, FRP, 높이 2.2미터, 2005) 등등이 그것이다. 
 <그림자의 그림자2>는 빨강색으로 칠한 높이 1-2미터의 입상(立像) 조각작품 약 40여 점을 알림터의 중앙홀에 배치한 것이다. 조각상의 전면은 평면적으로 처리돼 있으며, 뒷면은 도톰하게 볼륨감을 줘 인체의 특징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군상(群像)이 2천년대 후반에 들어서 김영원이 실험하고 있는 인체구조의 단순화를 반영하고 있다면, <<제3의 예술을 위하여>는 1994년상파울루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실천에 옮긴 제의적 기공 퍼포먼스의 결과물인 4개의 원형기둥과 그 앞에 도열한 기도하는 인간 입상군(立像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무렵에 김영원은 참선과 기공 수련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를 작품에 불어넣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수 제작, 발표하였다.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기공 퍼포먼스를 발표하여 브라질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끈 바 있는 그는 이 점에 크게 고무돼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은 구각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 인간상을 흑백의 대비를 통해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기공 명상을 통해 의식의 저변에 잠재돼 있는 무의식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안과 밖의 상호 긍정과 화합을 이룸으로써 본질적인 힘”(김영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높이 2.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기둥에는 김영원이 기공춤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충전된 몸의 에너지를 손끝에 모아 점토로 이루어진 원기둥에 가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는 이에 대해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때 나의 의식은 어떠한 판단이나 사고의 개입도 하용하지 않고 그저 찰라간 나의 내면 깊숙이 잠재돼 있는 원초적인 의식이 스스로 드러나게 내 몸의 흐름을 맡기고 내버려둔다. 나는 단지 지켜볼 뿐이다.”

Ⅲ. 40여 년 전인 70년대 후반, 김영원은 객관적인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리얼리즘 기법의 조각상을 통해 반영하는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억압적인 군부통치로 인해 인간의 자유가 제한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적 문제의 탐구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현대인이 사회 속에서 겪는 인간 소외와 관련된 것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만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과도 같은 주제를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빌어 군상(群像)으로 표현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영원은 기존의 관심으로부터 환골탈퇴, 불교에 심취하면서 해탈을 비롯한 현실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인간사 보다는 그것을 함축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보편적 조형언어를 추구해 나갔다. 90년대의 선(禪)을 통한 기공명상에의 실천은 한편으로는 인격도야와 함께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예술을 통한 자기실현의 기나 긴 과정이었다. 따라서 김영원에게 있어서 예술, 다시 말해서 조각이란 예술행위를 통해 자기인식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수단 내지는 매개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술은 작가가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상호 긍정과 화합의 소통 수단에 다름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40여 년의 긴 작품활동을 통해 김영원은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형식적 실험을 갱신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용의 전환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예술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왕성한 실험정신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자하 하디드의 DDP 건물이 들어선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건립된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 스포츠의 메카인 동대문운동장은 사라지고 주변은 어느덧 패션의 메카로 인식돼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자리는 조선시대에 청계천 물길이 성곽 밑을 관통해 흘러가도록 고안된 이간수문(二間水門)이 있던 곳이다. 또한 주변에는 한양도성의 성곽과 조선시대의 군영인 훈련도감의 부속기관인 하도감이 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DDP 건물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숨결이 머물던 장소를 허물고 그 위에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세워졌다. 거대한 웅자를 자랑하는 DDP 건물이 건립을 전후하여 끊임없이 비판과 논란을 야기한 것은 이러한 몰(沒) 역사성과 장소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개관 1년간 840만 명의 관광객이 DDP를 찾았다는 보도는 이 건물이 비록 많은 논란을 야기했지만 서울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객관적인 지표이다. 그러한 DDP가 이제 김영원의 인체 조각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차가운 은빛 동체에 훈훈한 인간적 서정과 정신적 울림을 더함으로써,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건물을 ‘인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영원 DDP 초대전 도록 서문)





1)naver 지식백과. 두산백과  
2)바둑의 대국에서 기사들이 흰색과 검정색의 바둑돌을 주고 받는 일을 가리켜 대화를 한다는 의미로 일컫는 말. 말이 없어도 서로 뜻이 통한다는 의미. 여기서는 이 두 사람의 걸출한 예술가가 바둑을 두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바둑에서 흔히 쓰는 이 비유를 사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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