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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와 비장미,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비유로서의 예술작품

윤진섭

숭고와 비장미,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비유로서의 예술작품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조숙진은 8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전에 한국에서 이루어진 그녀의 화단 활동을 보면, 1983년의 [제10회 앙데팡당전]을 시작으로 87년까지, 한 차례의 개인전과 약 10여 회에 이르는 단체전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조숙진이 화단 활동을 하던 80년대 초중반의 분위기는 70년대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민중미술과 한강미술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형상미술 등 전반적으로 구상미술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미술대학 시절에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지만, 오랜 군부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저항세력으로 등장한 민중미술이 화단을 점진적으로 장악해 가는 모습을 보며 작품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이 시기의 서울 화단은 70년대의 미협을 중심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계열의 헤게모니 장악에 저항한 20대의 젊은 작가들이 그룹을 결성, 새로운 진로 모색을 탐색하고 있었다. 1980년의 횡단그룹을 필두로 [한국 현대미술의 모색전](1982), [젊은 의식전](1982-3), [실천그룹전](1982), [대성리전](1980), [시대정신전](1983)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그룹을 결성, 기성 화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거 20여 년간의 핵심적 구조가 헤게모니의 추구로 인하여 상대적 파워의 구축을 초래”(한국 현대미술 모색전), “밖으로부터의 예술 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희를 고집”(현실과 발언)과 같은 선언문들은 당시의 젊은 작가들이 품었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의 단면을 보여준다. 
 조숙진은 [서울 국제 드로잉 비엔날레 ’84](문예진흥원 미술회관), [물질, 그 존재방식](1984, 관훈미술관), [한국 현대미술 31인의 여류전](1986, 관훈미술관), [에꼴 드 서울](1986, 관훈미술관), [한국미술의 최전선전](1987, 관훈미술관) 등등 비중 있는 전시에 참가한 후, 1988년에 홀연히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뉴욕에 정착, 1991년에 프렛 인스티튜트 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현재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한국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성공한 작가로 미국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뉴욕화단에서 조숙진이 거둔 성과는 매우 화려하다. 미국에서의 정착 초기에 그녀는 뉴욕에 있는 오케이 해리스 화랑(O.K Harris gallery)의 전속작가가 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짧은 글을 통해 그녀가 뉴욕화단에서 거둔 작가적 성공의 지표를 일일이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도널드 커스핏(Donald Kuspit)을 비롯하여  엘리너 허트니(Eleanor Heartney),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 조너던 굿맨(Jonathan Goodman), 리차드 바인(Richard Vine) 등등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들이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리뷰기사와 작가론을 집필하는가 하면, 아트 인 아메리카와 아트뉴스 등 미술전문지들이 그녀의 개인전에 관한 리뷰 기사를 싣고 있다. 또한 여러 권의 단행본과 앤솔로지를 비롯하여 수십 여종에 이르는 문헌 자료는 조숙진이 국제적인 작가로 손색이 없음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Ⅱ. 조숙진은 회화를 비롯하여 입체, 조각,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공공미술(public art) 등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전방위 작가이다. 종횡무진 펼쳐지는 그녀의 상상력을 담기에는 이 다양한 분야와 매체들이 부족할 정도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녀에게 작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제공한다면, 그녀는 반드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한 설치작업으로 이에 보답을 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작업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와 치열한 작가 정신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길거리를 비롯하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을 사용하여 이를 가공, 작품화하는 것이 조숙진의 오래된 창작 방법론이다. 그녀는 길을 걷거나 어떤 장소를 방문했을 때 눈에 띄는 특정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이를 가공, 매혹적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버려져 퇴색한 나무판자를 비롯하여 의자, 책상 다리, 죽은 나뭇가지 등등 주로 나무로 된 사물들은 그녀의 거대한 설치작업의 기본재료가 된다. 그녀가 사용하는 이러한 사물들의 특징은 본래 목적의 기능을 다한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사회에서의 효용가치를 다한 이 죽은 사물들은 조숙진의 상상력을 통해 거듭 태어나 예술적 사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숲속에 버려진 나뭇가지와 부러진 책상다리, 폐기처분된 의자들은 그녀에 의해 예술적 문맥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너의 죽음을 생각하라(Memento Mori)’라는 문구이다. 이 라틴어는 원래 고대 로마에서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개선을 할 때, 행렬의 맨 뒤에 있는 노예들이 외쳤던 구호이다. 삶은 덧없다는 준엄한 경구이다. 이 바로크적 비장미를 담고 있는 문구가 조숙진의 오브제를 사용한 설치작업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효용가치가 소멸돼 버려진 사물의 모습이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죽으면 장례 절차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듯이, 버려진 사물들은 폐기처분돼 쓰레기장으로 보내진다는 준엄한 사실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기막힌 비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숙진의 설치작업은 때로 방대한 규모로 펼쳐진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에 가득 매달린 나무파편들은 그 압도적인 규모로 인해 장엄한 비장미와 함께 일종의 숭고미를 동반한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우선 시선을 끄는 사물들의 집단적 양태에 압도된다. 그리고 찬찬히 바라보며 음미할수록 폐기된 사물들의 처연한 모습을 통해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 평범한 사물을 통해 인생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감정을 진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조숙진의 예술가적 재능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바탕으로 공동체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바로 조숙진의 공공미술 작업들이다. 2001년에 브라질의 바히아(Bahia)에 위치한 요아 우발도 리베이로 초등학교(Joāo Ubaldo Ribeiro School)에서 진행한 백화작업에서 이 학교 학생들과 함께 벽화를 그린 것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빈 드럼통을 야외에 설치하고 그 안에 관객들이 들어가게 한 <삶의 색깔(Color of Life, 1999)>은 이 계열에 속하는 공공미술 작품이다.  
 2009년에 제작한 <소망의 종(Wishing Bell/To Protect & To Serve)>은 L.A 시내 La Metro Detention Center 입구에 있는 퍼블릭 광장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으로 정사각형의 모듈을 갖춘 거대한 사각 입방체 구조물에 수백 개에 이르는 종(鐘) 풍경(風磬)을 달고 얇고 긴 장방형의 철판에 ‘친절(Kindness)’, ‘미래(Future)’,  등 다양한 문구를 새겨넣은 작품이다. 시민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이 거대한 공공미술 작품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공동체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Ⅲ. 조숙진의 드로잉은 설치나 오브제 작품을 위한 밑그림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 완벽한 회화작품이기도 하다. 종이나 딱딱하고 두꺼운 카드보드를 이용하여 능숙한 붓질로 그린 조숙진의 이 드로잉들만큼 동양의 정서와 맛을 드러낸 작품도 드물다. 검정색 위주의 이 드로잉 작품들은 모필의 맛과 표현력을 한껏 머금고 있다. 한국에서 시작하여 뉴욕으로 옮겨간 조숙진의 작가적 이력은 이제 그 오래된 연륜만큼이나 성숙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정한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작업에 알맞은 매체와 재료를 찾아 삶과 죽음, 숭고, 비장미, 또 때로는 거룩한 종교적 법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조숙진의 설치작업은 이제 숙성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 원숙한 작업의 세계에 걸맞는 국제적인 작가로서 세계 미술계의 평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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