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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이야기 3개의 색과 호흡, 그리고 리듬의 변주들

윤진섭

몸 이야기
3개의 색과 호흡, 그리고 리듬의 변주들

                                          윤진섭 (미술평론가)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최근 들어 그 열기가 전기 단색화에서 ‘후기 단색화(Post Dansaekhwa)’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는 조짐이 역력하다. 작년과 올해의 ‘KIAF’에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법관, 이배, 이진우, 장승택, 전영희, 천광엽 등등 후기 단색화의 범주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됨과 동시에,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 옥션 등에서 단색화 관련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이처럼 단색화에 쏠리는 세간의 지나친 열기에 대해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긍정적인 부분이 있으면 자연이 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부분도 깔려있게 마련이므로 무조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서로 관심을 갖고 노력해서 잘못된 점은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최근 들어 화단의 일각에서 일고 있는 단색화에 대한 비판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지나친 상업주의에의 경도가 그것이요, 둘째는 단색화에 대한 담론의 부족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맞물리는 가운데 단색화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난 5년 간 단색화의 국제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외 갤러리와 옥션, 미술재단의 역할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단색화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인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의 도록에서 ‘Dansaekhwa’로 표기된 이래, 201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 : Dansaekhwa : Korean Monochrome Painting)>에 이르러 정초되고 이후 다수의 국내외 갤러리들의 노력과 호응으로 일련의 국제화의 수순을 밟아왔다. 5년간에 걸친 전 과정을 여기에 쓰는 것이 적합지 않다고 여겨져 생략하니 이 부분은 내가 쓴 기존의 여러 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의 단색화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60년대 초반 권영우의 화선지를 이용한 작품과 곽인식의 일련의 유화에서 그 맹아가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집단적인 양상으로 국내 화단에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권영우, 김기린, 박서보, 서승원, 윤명로, 윤형근, 이동엽,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허황 등등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의 단색화가 등장, 정착되기에 이른다. 특히 이 시기에는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앙데팡당전>(1972)을 비롯하여, <서울현대미술제>(1975), <에꼴 드 서울>(1975) 등등 대형 전시를 통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지만 반면에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 숫자가 전성기에는 수 십 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확고한 양식을 구축한 작가들은 현재까지 살아남았으나, 한 때 유행을 좇아 부유하던 작가들은 스타일을 바꾸거나 사라져버렸다. 앞에서 열거한 단색화 작가들은 한국 현대사의 풍상을 겪고 살아남은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들이다. 

 대략 1950년 이후 출생자들인 후기 단색화 작가들은 전기 단색화 작가들만큼 한국 근현대사의 혹독한 풍상을 겪지 못했다. 한문 교육을 받고 유교적 가치관에 익숙하며, 일제 식민지배와 6. 25전쟁을 체험한 전기 단색화 작가들은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이라고 일컫는 비정형(앵포르멜) 회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에는 대체로 유교적 가치관인 ‘수신(修身)’의 흔적이 엿보인다. 전기 단색화의 특징인 정신성, 촉각성, 수행성은 바로 이러한 수신의 내면화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은 과학과 이성, 논리의 산물인 서구 미니멀 회화와 크게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반면에 후기 단색화 작가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든 고도성장의 시기에 청년 시절을 보냈다. 한글 전용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영어에 익숙하며, 후기산업사회의 산물인 다양한 산업재료의 도입에도 거부감이 없는 세대가 바로 이 후기 단색화 작가들이다. 플랙시글래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산업재료의 도입은 이들의 활동 배경인 후기산업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김춘수, 장승택, 전영희 등 세 사람은 다 같이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작가들이다. 김춘수와 전영희는 미국, 장승택은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 유학이 자유화된 것이 80년대 중반이니 이들은 거의 이 무렵에 미술공부를 하러 해외로 나간 것이다. 이 세 사람을 공통적으로 묶는 단색화의 세계를 염두에 두면, 이들은 70-80년대 한국의 단색화와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십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작가로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자신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미술경향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 후기 단색화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독자적인 청색 모노크롬(YKB)으로 유명한 이브 클랭(Yve Kline)의 그림을 직접 보고 공부한 장승택과 애드 라인하르드(Ad Reinhardt)를 비롯한 미국 미니멀 아트를 접하며 회화를 배운 김춘수와 전영희에게 있어서 단색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들이 오늘날 20여 년 이상의 긴 세월을 오로지 단색의 세계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처럼 한국과 서구라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두 세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유학을 통해 서구사회에서 경험한 모더니티와 전기 단색화 작가들이 국내에서 체험한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구분이 가능하다면 전자는 직접적인 경험인 반면, 후자는 미국과 일본을 필터로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간접적인 체험인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겪은 이들의 경험은 감각기관을 통해 흡수돼 내면화되며 그것은 유학 이전의 단색에 대한 감각적 체험과 서로 뒤섞이게(混淆)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 사람의 단색화는 전기 단색화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감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세 작가의 각자 다른 개성과 미적 특질을 지닌 작품에 대한 해석이다.
 
 김춘수는 ‘청색’이란 특정의 색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가 근 삼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청색만 다루는 이유는 유독 청색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전통 도자기인 청화백자의 청색에 빠졌으며, 이를 계기로 청색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시작한 <수상한 혀> 연작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울트라마린(Ultramarine)> 연작에 이르기까지 김춘수는 90년대 초중반까지 수성물감을, 그 이후 일관되게 유성물감을 사용하여 캔버스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 왔다. 온 몸을 던져 캔버스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그의 행위는 예컨대 미국의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가 잭슨 폭록(Jackson Pollock)의 드리핑 회화를 가리켜 ‘투기장(arena)’이라고 부른 것처럼, 작가가 캔버스를 상대로 벌이는 일종의 격투기에 가깝다. 통상 300백호에서 500호에 이르는 대작을 끝내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기 일쑤이고, 정신을 못 차릴 만큼 기진맥진해 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물감이 묻은 손으로 캔버스 전체를 누비게 되는데 이 때 몸은 정신의 작용에 따라 특유의 리듬을 타게 된다. 작업에 깊이 빠져들수록 몸의 역동성이 더해지면서 정신적인 법열감이 찾아온다. 김춘수의 작업은 무엇보다 ‘몸성’이 두드러진 몸의 예술이다.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며, 신체를 통해 언어 이전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원초적 몸짓이다. 

 장승택은 플랙시글라스라고 부르는 산업재료를 다룬다. 투명한 합성수지인 이 재료로 만든 캔버스의 대용품이 곧 그가 격투를 벌이는 장소이다. 두께가 대략 10-15센티에 이르고 모서리가 약간 둥글게 고안된 투명한 사각형 입방체이며 속은 텅 비었다. 
장승택의 스튜디오 한 구석에는 비닐 막으로 둘러쳐진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흡사 ‘극한상황’이란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장승택의 작업이 펼쳐진다. 평상 위에 캔버스를 닮은 사각의 플랙시글라스 입체물이 놓여있고 장승택은 방독면을 쓴 채 스프레이 건을 한 손에 쥐고 묽게 희석된 유성물감을 프랙시글리스 판 위에 고르게 분사한다. 빨강, 청색, 노랑, 회색, 갈색, 검정 등 다양한 색상의 물감이 반복적으로 도포되는 가운데 회가 거듭할 수 록 색들은 줄줄이 판의 두꺼운 모서리로 흘러내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들은 응고된다. 장승택의 <무제> 연작은 마지막으로 과정을 거쳐 회색, 갈색, 검정 등 주로 무채색의 마감된다. 표면은 연한 파스텔 톤의 무광택을 띠게 되며, 관객은 눈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단일한 물체, 즉 ‘몸’을 보게 된다. 
 양태는 각기 다르지만 장승택의 작업 역시 김춘수의 경우처럼 ‘몸성’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무수히 반복되는 스프레이 작업이 주는 극한적 상황을 통해 몸은 고되지만 정신은 모종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획득된다. 

 전영희의 <숨>연작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수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석(硬石:coarse pumice gel) 성분의 미디엄을 캔버스에 나이프로 바르고 그 위에 넓적한 평붓으로 선을 긋거나 면을 만들어 나간다. 다양한 모양의 선과 면들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선염(渲染), 즉 번짐이다. 때로는 테이프를 이용하여 깔끔하고 예리한 면들이 나타나기도 하나, 대부분은 붓을 사용하여 손으로 직접 그리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은 기계적인 느낌보다는 붓의 자취나 모양새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풍부한 물성의 표정을 지닌다. 
 회색계열의 무채색은 최근 몇 년간 전영희가 즐겨 다루어 온 색상인데, 이색은 붓을 통해 천을 입힌 캔버스의 표면에 침투함으로써, 작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의 숨결’을 드러낸다. 전영희는 캔버스 위에 발라진 경석의 미디엄이 완전히 마른 이후 아크릴 안료에 물의 양을 조절하며 촉촉한 번짐의 효과를 냄으로써 까슬한 경석의 입자가 자아내는 특유의 질감에 매료돼 왔는데, 운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가 자신의 호흡이 작품에 스며드는 것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반복된 작가의 호흡과 동시에 리듬을 타는 붓질의 움직임 속에서 작품과 작가는 그 순간 혼연일체가 된다.
 올해 들어서 전영희는 이제까지 사용해 오던 회색에서 떠나 최근에는 인디고, 즉 푸른색의 천연염료인 쪽을 사용하고 있다. 근작들은 선과 면을 중심으로 전작에 비해 더 단순화되고 절제된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적 실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간 분할의 문제와 캔버스 표면에 색이 침투하면서 발생하는 색의 깊이와 그것이 주는 색의 느낌, 즉 색감과 관련된다. 한편으로는 재료의 질감(物性)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색의 침투에 많은 신경을 쓰는 전영희의 이번 작업은 또 다른 변화를 예측케 한다. 

                                  <아트비트갤러리 기획전 서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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