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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 형태의 해체와 자연으로의 회귀

윤진섭

기하학적 형태의 해체와 자연으로의 회귀 


                                                            윤진섭(미술평론가) 

 서승원은 60년대 초반이후 <동시성>이란 명제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상회화를 추구해 온 흔치 않은 작가이다. 따라서 50년에 걸친 회화적 족적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그를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작가로 꼽는 근거가 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관에서 열린 [서승원,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전은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는 서승원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전시는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근 2-3년 간 열린 그의 개인전들이 근작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전시의 상당한 비중을 초기의 기하학적 추상에 할애하고 있어 미술사적 의미가 큰 행사였다.  
 1963년에 창립된 <오리진> 그룹의 창립회원으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한 서승원은 ‘4. 19세대’에 속한다. 그는 60년대 초반 대학시절 전쟁세대가 일군 비정형 회화(Informel)의 화풍을 잠시 시도하기도 했지만, 50년대 후반에 시작해서 60년대 중반에 이르는 비정형회화가 당대의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님을 직감했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간파한 사람은 비단 서승원 뿐만이 아니었다.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한 ‘무’와 ‘신전’의 동인들 또한 이에 동감하고 있었으며, 당시 화단에서 활동하던 대다수의 작가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당시 화단에는 후대에 의해 선대의 미술운동이 부정되는 전위(avant-garde)의 속성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국전의 고루한 화풍에 저항한 전쟁세대가 비정형회화를 추구함으로써 전위적 자세를 취한 것과 동일 선상에 선 것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후에 전쟁세대의 미학은 다시 ‘4. 19세대’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된다. [청년작가연립전]은 ‘탈(脫)평면’을 주장하며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는 한편, 선대의 미학에 도전한 ‘무’와 ‘신전’의 멤버들로 구성된 전시였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이 전시에 참여한 ‘오리진’ 그룹인데, 이 그룹은 기하학적 화풍을 추구함으로써 평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같은 평면이라 하더라도 ‘오리진’ 그룹의 멤버들이 추구한 회화의 내용은 비정형회화가 아닌 기하학적 추상으로써 당대 산업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가 지닌 가장 큰 의미는 바로 1967년에 제작한 서승원의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작인 <동시성> 연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오방색의 기미가 역력한 이 작품들은 그 무렵 화단에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던 전통 찾기, 예컨대 단청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과도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1971년에 열린 [A.G]전에 서승원은 각 변이 91센티미터인 정방형 한지를 순차적으로 여러 장 겹쳐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준 14점의 오브제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당시 한옥에 거주한 그가 전통 창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듯 서승원과 전통 한지와의 만남은 즉각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70년대 서승원의 <동시성> 연작에는 파스텔 톤의 연한 미색과 푸른색이 등장하며, 화면에는 각과 선이 분명한 여러 개의 사각형들이 겹쳐진 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형태들은 개폐구조로 이루어진 전통 한옥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서승원은 빌딩으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에서 소재를 취하는 한편, 자기 예술의 뿌리를 전통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나타난 연한 베이지와 유백색, 푸른색 등은 백자를 비롯하여 분청, 창호지, 그리고 전통한지에 연원을 두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 서승원은 오랜 동안 유지해 온 기하학적 형태들을 점진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화면의 질서를 해체하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 행위는 서승원의 그림이 훗날 자연으로 돌아가는 국면의 일대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질서와 해체가 공존하는 시기인 90년대를 거쳐 2천년대에는 형태들이 완전히 해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서승원의 이번 전시는 각 시기별 대표작품을 통해 이러한 해체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Art in Culture,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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