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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 / 미술의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윤진섭

이탈 / 미술의 경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윤 진 섭(미술평론가)

Ⅰ. 
 폭 넓은 지평에서 보면 작가란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발언하는 자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의 정의가 다양한 것처럼 작가 또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가령 아름다운 꽃을 그리는 화가도 작가이며, 폭력, 이데올로기, 지구온난화의 문제, 자본과 예술의 관계를 주제로 전위작업을 하는 행위예술가나 미디어 아티스트도 작가인 것이다.  
 이탈은 이 중에서 후자에 속한다. 90년대 초반에 캔버스 작업으로 출발해 점차 매체의 폭을 넓혀 온 그는 미디어 아트와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섭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2015년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올해의 작가’전에 추천되기도 한 그는 이미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중견작가이다. 지난 20여 년에 걸쳐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매체의 다양성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관심을 기울여 온 주제의 동시대성과 긴급성으로 인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올해의 작가’전에 추천된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문제의식에 대해 미술계가 수여한 응분의 보상이었다. 특히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그의 능력은 매우 뛰어난데, 사건의 국면을 기계장치를 비롯한 다양한 설비를 통해 설치형식으로 풀어내는 언어적 감각이 출중하다. 
 이탈에게 있어서 언어를 통한 명제적 진술은 내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품의 명제가 되기도 한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로써 명제가 곧 작품의 내용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탈의 경우에 있어서 명제를 해석하는 일은 곧 작품의 내용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탈의 작업이 지닌 이러한 성격은 그의 작업이 개념미술의 전통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탈을 가리켜 실험미술가 혹은 전위미술가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특히 행위예술을 통한 그의 예술적 실천은 ‘몸(body)’을 매개로 이루어지며, 예술에 있어서 몸의 문제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통해 실험하는 전위미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Ⅱ.
 이탈이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줄 작품은 두 대의 프로젝터를 동원한 영상 설치작업이다. 우측 영상은 전쟁 포로를 연상시키는 두 사람의 남자를 시작으로 결혼식장의 신부의 모습과 하객들의 모습을 거쳐 끝 무렵에 전쟁포로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좌측 영상은 배구를 하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다이빙하는 남자의 모습을 거쳐 거리를 지나가는 관광용 마차의 뒷모습이 나타나면서 끝난다. 
 이탈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영상을 인터넷 서핑을 통해 구한다. 촬영한 지가 상당히 오래 돼 보이는 영상은 빛바랜 필름 특유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으며 흑백 필름을 노랑색이나 붉은 색 등을 가미해 원작과는 전혀 색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예컨대 <요단강 가는 길>이란 작품은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피에로 복장을 한 남자가 걸어가는 단순한 플롯을 지닌 영상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흑백 영상에 붉은 색을 덧칠한 것이다. 오르골 음향의 실로폰 연주 같은 가볍고 경쾌한 배경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행위자가 공동묘지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잡은 카메라 워크가 돋보인다. 약간 코믹해 보이는 행위자의 분장과 어두운 죽음은 본질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3분 30초짜리 이 짧은 영상을 통해 관객들은 비로소 죽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영상작가로서 이탈의 예리한 시선은 우측 영상 도입부에서 포로처럼 보이는 두 남자 중 오른편 남자의 고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국면의 전환을 꾀하는 장면에 잘 드러난다. 정지된 화면이 지루하게 흐르다 천천히 변화하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화면은 약간씩 활기를 띠지만 그것은 미세한 변화이기 때문에 무신경한 관객은 거의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러나 영상작가로서 이탈의 재능은 그보다는 오히려 필름을 찾아내서 고르는 선구안에 있다. 보도사진이나 영상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일에서부터 컴퓨터 조작을 통해 화면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일 등이 혼합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삶을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 
 50대 후반이상의 사람들이면 누구나 귀에 익숙한 새마을 주제가를 배경으로 돼지를 연상시키는 뚱뚱한 남자의 나체 뒷모습이 등장하는 <Video_Jumping>은 작가의 재치와 순발력이 돋보인 수작(秀作) 이다. 비록런닝 타임 1분 50초짜리 소품이지만, 마치 볼록 거울에 비친 왜곡된 모습처럼 기괴한 형상의 등장인물은 음악에 맞춰 끊임없이 줄넘기 동작을 되풀이한다. 과거 60-70년대의 독재 권력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해학적으로 펼쳐져 이를 보는 관객들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이탈의 영상작품은 사람들을 묘한 향수에 젖게 만드는 효능을 지닌다. 강변에서 줄넘기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동작을 담은 영상은 색채의 효과 면에서 복고풍적이며 시간의 역류와도 같은 강한 시각적 잔상을 남긴다. 이처럼 시간성을 향해 던지는 이탈의 질문은 공간과 함께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담고 있다. 그 작업의 궤적이 적지 않은 양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그간에 해 온 작업을 통해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미술의 경계에 대해 질문해 온 이탈이 중간 결산의 의미에서 제시하는 뜻 깊은 자리인 것이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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