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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역할과 처우 개선

윤진섭

비평가의 역할과 처우 개선

윤진섭


 서울아트가이드 4월호에 실린 미술평론가 이선영 씨의 글을 읽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 모 미술기관이 시행한 레지던시의 작가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에 참가해 2백자 원고지 60매 분량의 글을 썼는데 원고료가 고작 13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하여 이런 개탄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미술비평가, 미술사가, 미술행정가, 미술이론가 등 수백 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미술 관련각종 회의(운영자문회의, 심의 및 심사 등) 수당이나 미술관에서 발행하는 도록 및 도서의 원고료가 터무니없이 적어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는 기색이 별로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던 차였다. 그 동안 돈과 관련된 일이라 글을 쓰는 문사들은 차마 드러내놓고 공론화하길 꺼려왔지만, 최근 들어 부쩍 실명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추세가 늘고 있는 모양을 보면 드디어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  창작에 임하는 작가들의 고뇌도 크지만 작품을 다루는 비평가들의 글 또한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전 리서치에서 사색을 거쳐 글의 컨셉 잡기, 집필에 이르는 과정은 많은 시일을 요한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 일 선생은 평문 집필을 가리켜 '피를 말리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이선영 씨는 빈약한 원고료 책정의 책임을 해당 미술기관의 담당자에게 돌리지 않았다. 원고료 책정을 규정한 규정집을 만든 공무원, 아니 그 너머의 관료체제에 묻고 있다. 관료제도라는 추상적인 집단의 그늘에 가려 펜대를 놀린 익명의, 그러나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규정집의 기안자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최소한 석사학위 이상인 미술전문가들의 원고료를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책정해 놓았는가? 내가 보기에 이선영 씨의 경우, 2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각각 2백자 원고지 30매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열흘은 걸렸을 것이다(나의 경우 글 한편을 쓰면 다음 글을 쓰기까지 며칠 간의 휴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론 데뷔 30년 차인 중견 미술평론가인 그가 받은 원고료 13만원을 10일로 나누면 하루에 만삼천 원, 최소 시급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이럴 수가 있는가? 얼마 전에 집에서 싱크대의 수도관이 고장 나 인부를 불렀더니 1시간 일하고 15만원을 받아간 기억을 떠올리면 이건 서글프기까지 하다. 수도 배관공의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평가의 원고료라니! 비평은 어느 분야든 간에 그 시대의 풍향계와도 같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술 분야의 비평은 예술가들이 예민한 촉수로 감지한 시대의 정신에 대해 논평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방향타가 돼 준다. 인문학의 한 분과로서의 비평이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회인이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지닌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에 필요한 자양분을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삶의 토대인 사회로부터 얻을 수 밖에 없다. 작품은 이처럼 다양한 경험들이 작가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담즙에 의해 소화, 흡수되는 가운데 생성되는 생명체인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낳는데 산고가 있듯이, 비평가 역시 비평을 하는 데에는 정신적 고통이 따른다.  물론 비평의 대상이 반드시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들을 포함하여 각종 미술제도도 비평의 대상에 해당한다.  비평가는 시대와 더불어 살아간다. 특히 현장비평가는 전선의 최전방에서 적정을 살피는 척후병처럼 당대의 변화를 예민한 촉수로 감지하고,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여 비평에 반영하는 중요한 과업을 수행한다. 비평가는 작가와 함께 행동을 같이 하며 때로는 사선을 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아방가르드의 본령인 '도전과 저항의 정신'인 것이다. 사회가 부패하지 않게 소금의 역할을 하는 비평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런 비평가들을 이제까지 지나치게 홀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차제에 관계 기관은 원고료 및 각종 회의와 심의 수당의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 주기 바란다.

서울문화투데이 2019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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