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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楮)의 물성 발현과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에 대한 탐색

윤진섭

닥(楮)의 물성 발현과 한글의 조형적 가능성에 대한 탐색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올해로 화단 경력 25년째인 손 일은 미술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현재 보는 것과 같은 닥(楮)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그동안 갈고 닦은 다양한 재료와 기법의 실험이 응축된 독자적인 세계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의 작품 경향을 낳은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작가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오래 전에 간송미술관에서 본 훈민정음 해례본(세종 28년, 1446년, 국보 70호)에서 받은 충격에 기인한다. 손 일은 이 소중한 문화유산의 목판 원본이 유실돼 현존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복원하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그는 작가이기 때문에 훈민정음 목판의 복원을 어떤 조형적 형식과 기법을 통해 새로운 조형언어로 재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쏠렸다. 그래서 찾아낸 방식이 샌드 블라스트 카빙(sand blast carving)이었다. 그는 아주 오래된 사물의 느낌을 표현하고 거기에 시간성을 주입하기 위해 유리공예에서 흔히 쓰는 이 기법을 통해 대상을 감쪽같이 재현하는 효과를 얻어낸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정과 의미에 대해 미술평론가 고충환은 “작가는 모래의 압력을 조절하면서 원형에 가해진 시간의 생채기를, 낡고 해진 풍화의 흔적을 재현하고 연출”1)했다고 평가한바 있다.

 동기야 무엇이 됐든지 간에 손 일이 이 무렵 관심을 가진 시간성에 대한 천착은 옛 것을 오늘에 소환함으로써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기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게 된다. 조상들이 남긴 과거의 문화유산이 박제된 하나의 사물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의 숨결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지닌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복원을 둘러싼 다양한 조형적 시도는 손 일에게 있어서 다양한 재료와 기법, 형식을 연마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그 이전, 그러니까 1990년대 말엽에 그가 시도한 다양한 실험적 방법론들과 결합돼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손 일의 작업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확연히 눈에 띄는 요소가 바로 재료에 대한 개방성인데, 이는 최근에 연탄재를 활용하여 부조회화 작품을 만들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Ⅱ.

 샌드 블라스트 카빙 기법에 의한 재현이라고는 했지만, 손 일이 훈민정음의 원본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볼 때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복제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가의 예술적 영감이 스며들어 새로운 시각에서 재창작되었다. 재료도 다양하여 테라코타를 비롯하여 한지, 세라믹, 목판 등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의 사용과 거기에 따른 각기 상이한 기법은 손 일의 부조회화의 성격을 매우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이 돼 주었다. 대략 2005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시기에 훈민정음을 저본(底本)으로 한 다양한 기법실험은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에서 풍부한 조형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긍정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도출된 하나의 문제는 훈민정음이라는 박제된 형식이 지닌 상투적 성격이었다. 그리고 손 일의 경우에 있어서 내용이 곧 형식이 되는 이 이중성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선입견을 줄 우려가 다분한 것이었다. 따라서 작가로서는 무언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국면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지와 닥지의 발견과 도입은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새로운 물성에 대한 실험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한지의 사용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0년대 중후반에 이르지만, 이것이 얕은 저부조의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풍부한 물성의 발현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은 2010년대 중반 무렵에 와서야 가능하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약 10여 년간 지속된 다양한 방법론에 대한 실험이 정리되면서 한지의 풍부한 물성 실험의 단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 10년 간 손 일은 구상과 추상의 결합을 비롯하여 조소와 회화의 결합, 회화와 도예의 결합 등 탈장르적이며 융합적인 다양한 방법론의 실험을 개진해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부조가 있었다. 이 부조적 특성은 손 일의 작업에서 가장 특징적인 성격인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애초에 훈민정음의 목판본이 지닌 판화 내지는 부조적 성격에 닿아있다.



Ⅲ.

 사물의 고유한 성질인 물성에 대한 손 일의 지대한 관심은 테라코타를 비롯하여 한지, 세라믹 및 각종 혼합재료(mixed media)가 중심이 된 2000년대의 물성 실험에서 이미 이루어지기 시작했다.2) 그는 1990년대 후반에 볏짚을 이용한 대규모 포장 설치작품을 시도할 정도로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사물의 물성적 특징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온 손 일은 사물과의 대화를 통해 사물의 존재 양태에 주목했다. 사물의 존재 양태를 미술의 입장에서 다루려면 그 보다도 먼저 사물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령 닥지를 예로 들자면 닥(楮)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미술의 상황에서 예술가의 개념이 철학자나 과학자에 가깝게 다가가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술의 이러한 개념의 변천에 기인한다. 화가가 대상의 외관을 모사하는(copy) 게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게 된 이후 작가는 현상학자나 철학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손 일은 물성의 탐구와 함께 한글의 자모를 소재로 등장시킴으로써 작품의 의미론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사실 손 일의 작품에 있어서 한글 자모의 도입이 반드시 소통이론이나 의미론적 해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손일이 도입한 한글 자모가 문장 구성의 요소로 사용되기 보다는 조형적인 차원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즉 자모들이 의미를 성생하기 보다는 집합적 미의 효과를 낳기 때문에 미적 효과를 둘러싼 소통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보는 편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2014년은 손 일의 닥종이 작업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분기점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단색의 평평한 저부조 형태의 작업에서 벗어나 닥지의 풍부한 섬유질을 살리는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Essence-sound> 연작은 바이올린을 오브제로 삼아 소리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게 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보다 한 해 전인 2013년에 손 일은 <Human grain> 연작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의 판을 얕은 저부조의 흰색 단색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입한바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닥의 천연의 색을 최대한 발현하는 쪽으로 작업의 행로를 정하고 풍부한 물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드러내는 데 주력하였다. 2015년까지 이어진 <Essence>, <Journal> 연작은 한지와 닥지의 풍부한 가소성을 이용하여 한국의 자모 형태를 화면에 축적시키는 가운데 부조의 높이가 점차 높아지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핑크, 녹색, 노랑, 청색 등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여 한글 자모가 축적된 고부조 형태의 작품을 제작해 단조로운 닥종이 작업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Ⅳ.

 최근들어서 손 일은 닥종이 작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패널의 하단부에 솟아있는 부조의 높이가 무려 10센티미터에 달하는 강한 인상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는 손 일의 성격이 지닌 실험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으로 연탄재를 이용한 부조작품에서 보이는 과감한 재료의 실험과도 통하는 것이다. 닥지의 물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닥의 성질이 한글 자모의 조형성과 연계돼 캔버스라는 하나의 장(field) 안에서 혼효(混淆)되기에 이른 것이다. 닥지를 둘러싼 그의 미적 안목의 성취는 대작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했으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손 일의 단색 닥종이 부조회화가 만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러한 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손 일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작업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소 산만하게 전개된 다양한 방법적 실험들을 정리하면서 보다 단순한 단일 회로로 작업의 방향을 정하고 매진해 나가는 일이다.     

 따라서 손 일에게 있어서 베니스에서 소개될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을 해외에 알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이번 전시를 준비해 온 것이다.

 첫째 그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을 백색, 회색, 청색, 적색 등 주로 단색의 색상에 초점을 맞춰 제작했다. 그것들은 한글의 자모에 바탕을 두거나 파상(波狀) 혹은 기하학적 줄무늬처럼 보이도록 고안되었다. 그 중에서 백색의 대형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기하학적 줄무늬처럼 보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깊이감이 느껴지는 부조의 형태를 띠고 있어 주목된다.

 패널에 부착된 한글의 자모를 비롯하여 영어의 알파벳,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모티콘 등등 다양한 형태의 기호들은 모두 문화적 함의를 지닌 상징으로써 다 같이 인류의 소통을 위한 것들이다. 거기에는 한글처럼 특정한 문화권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도 있지만, 영어의 알파벳이나 웹상에 떠도는 이모티콘들처럼 세계화한 것들도 있다. 손 일이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고 있는 이러한 문화적 기호들은 문화가 더 이상 국지적인 현상으로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엿보게 해 준다. 이는 그가 십수년 전에 훈민정음을 접하고 느낀 충격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한글의 조형을 통한 문화의 해외 전파에 보다 큰 의의가 있다. 그만큼 손 일은 한글의 자모를 자신의 특유한 조형적 방법론을 통해 예술화하고 그럼으로써 한글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1) 고충환,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인 소통을 위하여>, <<디스커뮤니케이션>>, 손 일, HexaGon, 2015. 4쪽.

2) 훈민정음이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이기 때문에 이를 저본으로 한 작품들의 해석에는 당연히 소통의 문제가 따른다. 손 일의 작품에서 이 소통적 특성에 대한 분석은 미술평론가 고충환이나 이상수 큐레이터 등에 의해 이루어진바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 보다는 사물의 물성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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