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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 드로잉의 진수들

윤진섭

한국 근현대미술 드로잉의 진수들

                                                                윤진섭


 우리말로 ‘밑그림’ 혹은 ‘소묘’를 의미하는 ‘드로잉(drawing)’은 흔히 본격적인 미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예비단계의 스케치 정도로 가볍게 취급돼 온 감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용어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기초 단계의 밑그림부터 시작해서 어떤 구체적인 회화, 조각, 건축, 제품디자인 등의 설계나 제작을 위한 기초적 스케치 등을 포함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재에 따라 대상의 외관을 묘사하는 구상적, 사실적 드로잉에서부터 마음에 이는 상념을 추상적, 비구상적으로 표현하는 드로잉 등 작가에 따라 다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드로잉이 본격적인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부차적 수단에서 격상하여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는 일이다. 특히 세계적인 미술 경향으로 지구촌 곳곳에 번진 70년대의 개념미술 이후 드로잉을 독립된 미술의 장르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979년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있는 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리스본 국제 드로잉전]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건용은 이 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나의 기억으로 우리나라에서 이 드로잉이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이 아닌가 싶다.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한국판화ㆍ드로잉대전]을 필두로, 1981년의 [드로잉81](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한국 드로잉전 Korean Drawing Now](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1984년의 [제1회 서울 국제 드로잉 비엔날레](관훈미술관) 등등 많은 드로잉 관련 전시회가 특히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화단에 번져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 야외미술제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는 [겨울 대성리전]에서 전시된 일련의 야외 설치 드로잉 작품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제2회 때인 [겨울ㆍ대성리 35인전](대성리 화랑포 강변, 1982. 1. 9-13)에 대거 나타났는데, 먹물을 들인 새끼줄로 육각형의 도형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단 강용대의 설치 드로잉 작품을 비롯하여, 투명 아크릴 판에 앞에 보이는 풍경을 실크 스크린으로 전사하고 먼 곳에 보이는 산들을 선묘로 표시한 김성래의 드로잉 작품, 20개의 나무기둥을 세우고 일정한 거리를 붉은 색 노끈으로 감은 육근병의 설치작품 등등이 그것이다. 이 전시에서 당시 실험적인 경향의 전위단체로 이름이 높던 [S.T] 그룹의 회원이었던 나는 <강변을 달리는 선>이란 퍼포먼스 드로잉 작업을 행하였다. 대성리 화랑포의 강변을 따라 폭 30센티에 길이 약 200미터에 달하는 텔레타이프 두루마리 용지를 펼쳐놓고 그 위에 검정색 매직펜으로 중앙에 선 하나를 연속적으로 그려나간 드로잉 작품이었다.1)

 

 얼마 전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화(素畵)-한국 근현대드로잉]전을 둘러보면서 나는 깊은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대 초반 이후의 한국 미술현장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이 전시는 2010년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 드로잉 30년 1970-2000]전과 함께 한국 근현대 드로잉을 일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미 보도된 대로 이번 전시는 출품작의 거의 대다수를 드로잉 전문 컬렉터인 김동화의 소장품을 근간으로 했기 때문에, 드로잉에 대한 1인의 독자적인 시각과 해석이 깊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2)  

 기사에 의하면 출품작의 90% 이상이 김동화 소장본이라고 하는데, 국내작가 200여 명의 작품 300여 점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엄선된 작품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동일 계열의 어떤 전시에 비교해 봐도 질적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손색이 없다. 평소에도 김동화는 “드로잉 500점만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구성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이 분야에 진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며, 근현대 작가들과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할 정도로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이다. 이 작품들을 저본으로 소마미술관 학예팀에서 자체 리서치한 작품들을 덧붙여 이번 전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대 정작 전시장 현장에는 이러한 정보들을 알리는 계시물이 없었던 것은 다소 의아했다. 신문 기사에 의하건대, 출품작의 90%를 한 소장가의 작품들로 충당했다면 당연히 소장자의 인적사항은 물론, 그에 관한 소개와 기획의 배경 및 의미를 적은 안내문을 계시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전시현장이 아닌, 신문을 통해 독자와 관객들이 상세한 정보를 접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닐 수 없다.

 경위야 어떻든 이번 전시는 오랜 만에 한국 근현대 드로잉 작품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던 전시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근대 동양화의 6대가 중 한 사람인 소정 변관식을 비롯하여 고암 이응로, 천경자, 김기창, 박래현, 산정 서세옥 등 동양화가들, 김환기, 곽인식, 박서보, 권영우, 이우환, 이동엽, 윤형근, 정상화, 최병소, 허황 등 단색화의 원로작가들, 주재환, 임옥상, 신학철, 이종구, 이철수, 최경태, 김봉준, 황재형, 김정헌, 강연균, 강요배, 노원희, 민정기, 손장섭 등 민중미술 작가들, 강국진, 곽덕준, 김구림, 김범, 김수자, 김용익, 박현기, 백남준, 이강소, 성능경, 심문섭, 이건용, 이불, 이승택, 홍명섭 등 70년대 이후 개념미술, 설치미술,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등의 실험작가들, 강환섭, 구본웅, 권옥연, 권진규, 김영주, 박영선, 백영수, 김흥수, 서동진, 서진달, 성백주, 송혜수, 오지호, 유영국, 이항성, 한묵, 임군홍, 이철이, 이쾌대 등 근현대미술의 원로 및 작고작가, 황주리, 홍승혜, 최정화, 최석운, 조덕현, 정현, 이샛별, 유현경, 샌정, 유인, 김진열, 김지원, 김을, 김원숙 등 50-60대의 중견 및 중진작가들을 망라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전시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전시실-서양화의 수용과 드로잉’은 도입부에 해당하는데 전시실을 들어서면서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이전시장에는 이중섭을 비롯하여 이인성, 박수근 등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수놓은 스타급 작가들을 전진 배치하여 드로잉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견인하려는 기획의도가 읽혀졌다. 2전시실은 ‘드로잉의 주제들1-인체, 인물, 정물, 풍경’이다. 천경자, 박고석 등 많은 작가들의 드로잉 작품을 통해 밑그림으로서의 드로잉이라기보다는 완성된 작품 자체로서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는 코너이다. 3전시실의 주제는 ‘드로잉의 주제들 2-비구상, 추상개념, 아이디어’이다. 작가로는 장욱진, 이응로, 김환기, 이승택 등이며 70년대 이후 개념미술과 대지미술, 오브제 아트, 설치미술, 이벤트 등 다양한 경향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한국 퍼포먼스계의 신화적 존재인 고 정찬승의 판화작품을 강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4-5전시실은 ‘한국 현대미술과 드로잉' 코너이다. 5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한 박서보를 비롯하여 민중미술 게열의 신학철, 주재환, 여성작가인 이불, 황주리, 윤석남과 70년대 실험미술 작가인 김용익, 이강소 등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가 지닌 장점이라면 기획자의 의도대로 주로 소품의 드로잉 작품들을 통해 무려 100년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족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 정도의 숫자에 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작들을 통해 일별하려면 소마미술관의 서너 배에 달하는 전시공간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비록 연륜은 짧다 해도 한국의 근현대미술은 스펙트럼의 폭이 넓고 다양한 만큼 기획에 따라서는 상이한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분야이다.

 무릇 젼시 기획이란 책임의 소재가 분명한 인간 활동의 영역이다. 전시기획자는 자신이 완수한 전시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이번 전시가 질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는 명쾌하지 못하고 다소의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타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미술관은 비켜갈 수 없다. 미술관이 공기관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이나 견해가 개입되는 데에는 더욱 엄정한 객관적 판단기준이 작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아트 인 컬처, 2019년 6월호>


1) 겨울, 대성리 35인전-현장토론, 겨울강변에 펼쳐진 청년세대 35인의 의식, <공간>, 1982년 2월호.
2) 국민일보 손영옥 기자, “정신과 의사 김동화, 선과 색이라는 미술언어에 매료돼 수집”,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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