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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심축(axis mundi)으로서의 무한열주

윤진섭

우주의 중심축(axis mundi)으로서의 무한열주

윤진섭(미술평론가)

행정안전부, 전라남도, 목포시, 신안군이 공동으로 주최ㆍ주관하는 ‘제1회 섬의 날’ 제정을 위한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열리는 박은선초대전은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감회가 깊은 귀향전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인 조각 공부를 하기 위해 1993년 이탈리아로 떠난 이래 26년만의 금의환향이기 때문이다. 목포시 김대중기념관이 있는 삼학도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목포시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인 박은선의 조각세계를 목포 시민들에게 최초로 선보이는 뜻 깊은 자리이자, 나아가서는 목포가 예술과 문화의 본고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타국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적인 삶을 산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지만, 박은선의 경우는 실로 빈손으로 이룩한 자수성가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3년 전에 공무(公務)로 그가 살고 있는 피에트라산타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작가로서 그의 지난 삶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알았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동양인이 조각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그만한 성공을 거두기란 기실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 조각이기 때문에, 조각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고 했다. 그의 몸에 밴 겸손은 외국 땅에서 살아야만 했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낸 미덕이며, 동시에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 매일 조각 작업에 몰두해온 수행의 결과인 것이다. 
그가 살며 작업을 하는 피에트라산타는 과연 어떤 곳인가. 유럽의 부호들이 많이 사는 이곳은 아름다운 대리석의 산지인 카라라가 인근에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유명한 조각가들이 많이 찾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살바도르 달리, 마리노 마리니, 아르망, 후앙 미로, 헨리무어 등등 세계미술사를 수놓은 거장들이 거쳐 간 곳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곳에는 대리석을 능숙하게 다루는 장인들이 많아서 기술을 습득하기에 좋은 곳이다. 남달리 야망이 강했던 박은선이 온갖 간난(艱難)과 시련을 극복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을 연마하게 된 이면에는 대리석 조각의 본고장인 피에트라산타에서 진검승부를 해보자는 승부욕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에서 조각가로서의 성공은 곧 세계미술계에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각가로서 이탈리아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가 구축되자 박은선은 본격적으로 이탈리아를 벗어나 활동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프랑스를 비롯하여 스위스, 네덜랜드, 독일, 리히텐쉬타인, 룩셈부르크 등 유럽은 물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미국, 파나마 등 남북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시 초대를 받았다. 
박은선이 뚜렷이 개가를 올린 일은 2018년에 받은 프라텔리 로셀리 조각상 수상이다. 이 상은 유럽과 미국인들이 주로 받은 상으로 아시아인으로는 일본 조각가가 유일하며 박은선이 두 번째로 수상했다. 이 상은 피에트라산타에서 명성을 빛낸 최고 역량의 조각가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조각의 성지인 이탈리아에서 이 상의 수상은 곧 조각가로서의 성공을 인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은선은 이 상을 받기 전에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갖는 등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특히 유럽에서 매우 유명한 조각가이다. 
이미 국내외의 수많은 비평가, 미술사가들이 각자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쓴 바 있지만, 박은선의 조각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는 무한을 향한 매스의 확장과 음과 양을 기본으로 한 형태적 변주, 그리고 균열 등이다. 기본적으로는 수직으로 길게 뻗은 형태가 주를 이루며 여기에 나선형의 뒤틀림이 첨가돼 다양한 형태상의 변주를 이루고 있다. 그 사이를 깊은 균열이 대리석의 긴 몸체(mass) 속을 파고들어 마치 갈라질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리석의 몸체 속에 난 균열은 작가가 삶을 살아오면서 부딪치고 느낀 위기감, 상처, 고통 등에 대한 비유인 동시에 자칫 단조로울 듯 싶은 형태감에 파격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색의 대리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착하여 기둥과 구(球)를 만드는 작업은 장시간에 걸친 고도의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의 일이다. 중력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 계산과 물리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며, 뿐 만 아니라 작품이 주로 야외에 설치되는 까닭에 바람의 저항 등 자연 현상에 대해 대비하는 고도의 지식이 요구된다. 
미니멀한 형태의 모더니즘 추상조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브랑쿠시의 <무한열주>가 마치 주판알 같은 형태의 반복적 증식을 통해 수직적 확장을 이룬 것이라면, 박은선의 <무한열주>는 음양의 반복적 구조가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그것이 다시 뒤틀린 입방체나 혹은 구(球)의 수직적 증식을 통해 공간 속으로 개념적 확장을 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무려 13미터에 달하는 박은선의 수직형 조각은 대지에 우뚝 솟아 있으나 그것이 다가 아니요, 개념적으로는 무한히 허공 속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우주의 중심축(axis mundi)에 다름 아니다. 
김대중기념관과 삼학도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박은선 초대전에는 총 9점의 피에트라산타 현지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된다. 높이 14미터에 무게가 44톤에 달하는 3점의 연작 <무한열주>를 중심으로 <공유>, <세대>, <연속성> 등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세 점의 대형 작품 <무한열주>는 나선형 드라이버 형태의 거대한 기둥들로 구성돼 있다. <세대>는 거대한 구를 품고 있는 사각입방체의 기하학적인 모습을, <연속성>은 여러 개의 구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공유는 사각형의 프레임 위에 겹쳐진 원반들이 부착된 형태이다. 그 어느 스타일의 작품이 됐든지 간에 짙은 색(음)과 밝은 색(양)의 대조는 기본적인 조형어법으로 하나의 단위가 되고 있으며, 그 단위들이 여럿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은선은 2018년의 부산아트쇼와 페이지갤러리 초대전에서 <무한열주> 등 대작을 선보인 바 있다. 고향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 후속으로써 작가로서 그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각인시키는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간 여러 유형의 작품들을 제작해 왔지만 박은선 조각의 백미는 역시 거대한 크기의 작품들이다. 허공을 향해 수직으로 쭉 뻗은 시원한 열주들을 바라보며 먼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작업을 했을 환경을 생각하며, 그의 성공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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