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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 익숙하지만 낯선 - 풍경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

윤진섭

윤지원 / 익숙하지만 낯선 - 풍경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 

윤진섭(미술평론가)


 풍경화를 주로 그리는 윤지원이 화면에 담아내는 세계는 우리의 눈에 익숙한 장면들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래서 특히 새롭다고 할 수 없는 풍경들이 주 소재로 등장한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를 비롯해서 헐벗어 황량해 보이는 산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기차역, 텅 빈 도시의 한 모퉁이 등등이 윤지원이 즐겨 다루는 소재들이다. 흰색을 주로 섞어 쓴 탓인지 전체적으로 약간 채도가 떨어져 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그런 까닭에 약간 활기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따금씩 보이는, 사람이 혼자 등장하는 화면은 다소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고적감을 자아낸다. 

 아주 세부적으로 그리지 않는 윤지원 특유의 묘사법과 함께 이 고적하고 스산해 보이는 그림의 분위기는 이제 익숙한 그의 화풍이 되었다. 10여 년 전, 오랜 이태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그의 첫 국내 개인전 출품작들의 분위기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 윤지원은 잦은 국내외의 스케치 여행을 통해 아주 조금씩 섬세한 변화를 꾀해 왔다. 그 변화란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풍경이 단지 눈에 보이는 외관(外觀)으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내면의 잔잔한 호흡이 물결처럼 스며든 ‘독백’으로서의 풍경을 일컫는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최근 들어서 부쩍 늘어난 화면 속에 인물의 등장이다. 

 단독으로 등장하는 윤지원의 풍경화 속의 인물들은 그것이 남자건 여자건 간에 어떤 형태로든 풍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물론 작품의 해석에 따른 자의적 분석이긴 하지만, 그것이 윤지원 풍경화의 변화를 촉발한 요인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단순히 풍경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안에 인물을 등장시킨다고 하는 사실은 객관적 시선에서 벗어나 자의식적인 요소의 개입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지원의 근작들에 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들은 여전히 인물이 부재하고 있다. 그러나 근작에서 인물의 비중이 더욱 증가하고 있는 바, 이는 향후 작업의 전개에서 나타날 모종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윤지원은 현장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은 물리적으로는 재현일지라도 거기에는 아무래도 작가적 시선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윤지원의 그림이 단순히 풍경화로 치부될 수 없는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서두에 강조한 것처럼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풍경을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전환시키는 윤지원 특유의 전략은 예의 채도를 떨어트린 색채뿐만이 아니라 다소 어눌해 보이는 화풍에 있다. 이야말로 윤지원의 작품을 오롯이 그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한데, 이 결코 달필, 즉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잘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없는 특유의 화풍은 풍경의 비현실성을 강화하는 요인이며, 아울러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새로움의 충격을 느낄 수 있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이처럼 윤지원의 그림의 장점은 새롭다고 할 수 없는 풍경을 통해 새로운 미적 환기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과 관련된다. 눈에 익숙한 광경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미적 경험을 매개하는 윤지원의 그림들은 따라서 예술에서 나름대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과거 10여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는 윤지원 특유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특이성이 존재해 있는 것이다. 

 윤지원의 그림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원인은 현실의 실재성을 비실재성으로 전환시키는 특유의 기법과 장치에 있다. 우선 색채에 있어서는 특유의 탁색(저채도)에서 오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필두로 풍경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독자로서의 인물, 사물과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와의 관계 및 그것이 차지하는 화면에서의 큰 비중,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몽환적인 느낌과 초현실성 등등이 그것들이다.

 상기한 특성을 강화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특유의 구도를 들 수 있다. 이 구도의 설정은 사실 작가의 감각과 재능, 그리고 거의 직관에 가까운 즉흥적 창의성에 기인하는 것인데, 윤지원은 화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 재능을 타고난 작가이다. 윤지원의 그림에 나타난 구도들은 마치 스냅 사진처럼 무작위로 잘린 것들에 가깝다. 그래서 딱히 이것이다 라고 할 만큼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묶을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 그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정면성 : 건물이나 풍경을 정면에서 다룬 것으로써 이 경우 관객의 시선은 대개 화면의 중심부에 닿는다. 따라서 화면은 안정적이며 편안하게 느껴진다. 해경, 들판 풍경, 도시 풍경 등이 여기에 속한다.  

 2. 한계상황 : 막다른 골목을 그린 작품이나 단독의 인물이 등장하는 담장을 그린 풍경화, 꽉 막힌 담장의 높은 벽 등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주는 느낌이다. 실존적 느낌이 강하며 사물이나 풍경에서 오는 부조리성이 강조된다.

 3. 밀착형 : 이것은 대상이 캔버스 화면의 전체를 차지하는 경우이다. 큰 건물이나 대형 거울이 있는 실내풍경 등이 그것으로 이는 마치 눈앞에 밀착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윤지원이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 중에 120호에 달하는 대작이 있다. 평소에 그가 그리는 작품에 비해 매우 큰 작품에 속한다. 미국의 코넬대학 앞에 있는 유서 깊은 카페를 그린 이 작품에도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두 두 사람인데 하나는 정면에 보이는 카페의 유리창에 비친 사람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출입문에 난 타원형의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의 검정색 옷을 입은 남자이다. 왼쪽에 보이는 거리에는 저 멀리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으며, 거리에는 여기저기 잔설이 보여 매우 추운 겨울임을 알 수 있다. 윤지원 작업의 총화랄 수 있는 이 작품에는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한 특징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다. 쌀쌀한 겨울 날씨가 주는 춥고 냉냉하며 고적한 느낌,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느끼는 이국적 분위기와 넓고 큰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인물과 반사된 반대편 거리의 풍경의 혼재된 상황이 주는 부조리한 느낌과 이에 대비되는 실존적 의식 등이 상하로 3등분 된 특이한 구도 속에 잘 담겨있다. 

 이 작품은 한편으로 볼 때 미국의 전형적인 포토리얼리즘에서 엿보이는 소재처럼 보이기도 하나, 윤지원 특유의 시선으로 해석한 것이며, 미국의 한 대학의 주변 풍경을 그 특유의 화풍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리차드 에스테스(Richard Estes) 류의 미국 포토리얼리즘에서 흔히 보이는 냉정한 객관적 묘사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정감 있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이야말로 이제까지 윤지원이 자신의 풍경화를 통해 추구해 온 인간적인 시선,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윤지원 그림의 뿌리는 유년시절의 추억에 가 닿는다. 어렸을 적,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던 유년시절의 현실적 체험이 무의식의 심층 그 내면에 잠겨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물과 사건을 통해 현재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할 때 윤지원이 그려내는 풍경은 현실의 풍경 저 너머에 잠재해 있던 ‘기시감(deja vu)’의 다른 표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그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은 그런 의미에서 비단 윤지원만의 것이 아니라, 실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것이며, 공통된 느낌들에 대한 그 만의 독자적인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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