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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과 재사진의 역발상

윤진섭

인용과 재사진의 역발상

                                      윤 진 섭 

 근 삼십 여 년 전의 일이다. 1992년,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의 관장으로 일할 때 무역센터점에서 <창작과 인용>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이 전시는 당시 한국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 속에서 고전 명화들이 어떤 모습으로 현대미술에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인용 내지는 전유(appropriation)’의 문제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쟁점시리즈’는 나름 야심찬 계획 하에 출범했다. 당시 현대백화점 미술관을 총괄한 나는 압구정 현대미술관에서는 ‘풍경화, 인물화, 초현실주의, 풍자화, 실내정경’이라는 다섯 개의 테마로 <구상회화의 재조명> 시리즈를 기획했고, 무려 삼 년(1992-4)에 걸쳐 완성했다. 문제는 무역센터점 전시였다. 나는 당시 도록에 실린 기획의 변에서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첨예한 쟁점들 가운데 몇몇을 추출, 엄밀한 학문적, 비평적 접근과 함께 오늘의 한국미술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분석,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자”는 의도에서 혼성모방, 설치, 평면성, 테크놀로지, 시뮬레이션(의태), 키치(Kitsch), 페미니즘(Feminism) 등등,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루 아우르는 핵심적인 개념과 방법론들“을 검토, 향후 미술계에 한 가닥 좌표가 되었으면 한다는 전시의 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에서 이처럼 전문적인 장기 프로젝트를 실현하기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아쉽지만 <창작과 인용>전 하나로 끝내야만 했다. 
 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Prince Picasso>전을 보면서 오랜 추억이 떠오른 것은 이 전시가 바로 이 해묵은 ‘인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카소를 오마주한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는 알다시피 남의 사진작품 이미지를 전유하여 자기작품으로 만드는데 귀재가 아닌가. 미국의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변에서 흔히 보는 말보로 광고의 이미지를 전유하여 유명해졌다. 그가 ‘재사진(re-photography)’이란 특유의 기법을 개발하여 ‘자기화’하는 전략에는 ‘더 이상 새로움이란 없다’는 포스트모던 특유의 시대 미학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리차드 프린스와 사진 원작자들 사이에 얽힌 소송사건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 소개할 수가 없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차드가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이면에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특히 그가 세계 굴지의 화랑인 가고시안의 전속작가라는 사실, 그리고 예술가란 다름 아닌 끊임없는 뉴스와 이슈의 생산자여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작가는 이제 후미진 작업실에서 고독하게 작품이나 매만지는 고리타분한 존재가 아니라, 마치 유명 정치인이나 대중 스타에 버금가는 존재여야 하는데, 그렇다면 누가 해 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뉴스를 만드는 뉴스의 생산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진을 전공한 적도 없고 미술대학을 나오지도 않은 리차드 프린스가 일찍이 70년대부터 사진이나 광고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게 된 데에는 물론 대중사회의 온갖 것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수집벽이 뒷받침되었겠지만, 기존의 미술 문법과 관습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리차드 프린스의 전시는 변화무쌍하다. 가령, 2017년 비슷한 시기에 가고시안에서 열린 전시의 내용과 베를린의 막스 헤츨러 갤러리의 개인전 내용이 서로 다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기존의 문법과 표현 관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역발상에 근거한 새로운 기법의 창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차드 프린스가 보여주는 이 기행에 가까운 도발과 실험은 한 가지 기법을 개발하면 평생을 우려먹어도 대가의 칭호를 듣는 것이 가능한 국내의 상황에 좋은 교훈이 된다. 
 기성작가의 사진뿐만이 아니라, 각종 도서의 초판본, 오래된 잡지와 신문의 광고, 만평이나 시중에 떠도는 성적 농담의 인용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남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달린 댓글까지 지우고 자기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등 다양한 SNS 매체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전략을 구사하는 그는 가히 잡식성 작가의 표본이다. 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나는 ‘엄숙주의로부터의 이탈’을 들고 싶다. 오랜 역사로부터 형성된 유교주의에 뿌리박은 저 근엄함과 엄숙함 뒤에 숨겨진 이중성의 해체,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얻게 될 재기발랄함과 새로운 표현 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 
 리차드 프린스의 콜라주 작품과 파블로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원래 2012년 스페인의 피카소 말라가 미술관(Museo Picasso Malaga)이 주최한 <PRINCE⎸PICASSO>전에 출품됐던 작품들 중에서 선별한 것이다. 말라가는 피카소의 고향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제목이 재미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왕자 피카소’가 될 터인데, 사실 피카소에게 ‘왕자’ 칭호는 가당치도 않은 일. ‘황제’쯤 돼야 만족할 피카소는 정작 세상에 없으니 호칭 강등에 따른 억울함을 하소연 할 데도 없을 터. 사실 이 작명에 따른 후일담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내가 할 일은 내 나름대로 이 제목을 해석하는 일일 터인데, 어디로 보나 리차드 프린스(Prince)의 판정승인 것 같다. 왕자(Prince) 칭호를 피카소에게 붙여주는 대신 자기의 성이 앞으로 왔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자타가 인정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인 피카소를 상대한 리차드 프린스의 전략은 다름 아닌 피카소의 도판을 사용하여 콜라주하고 여기에 특유의 자유분방한 드로잉을 첨가하는 것. 말라가 전시에서는 여인의 누드를 찍은 흑백 사진들을 콜라주하고 피카소의 작품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그리거나 붙인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으나 이번 전시에는 소품들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한편,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들은 주최 측의 전언에 의하면 피카소가 직접 반죽해 제작한 것들이다.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은 국내에도 수 차례에 걸쳐 소개된 적이 있어서 비교적 익숙한 편이다. 
 우리 나이로 아흔 세 해를 산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장구한 세월에 걸친 예술실험과 성과, 업적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고자 한다. 다만 이 글의 초점인 세라믹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회화를 비롯하여 판화, 조각, 오브제 등등 미술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손대지 않은 장르가 없지만, 특히 세라믹은 그의 큰 관심사였다. 오죽하면 1948년, 마두라 공방이 있는 프랑스의 남부지방인 발로리스로 가족과 함께 영구 이주하였을까? 그는 그곳에서 마두라 공방과 협약을 맺고 다양한 형태의 기물(器物)과 직접 만든 아주 독창적이며 창의적인 형태의 도조작품의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때 피카소의 관심을 끈 것은 작품에 그린 그림들이 가마 속에서 구워진 뒤 나타나게 될 변화였다. 이듬해에 피카소는 발로리스에 향수공장으로 쓰던 땅을 사들여 작업실로 만들고 거기서 도자기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1953년부터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 전시는 뉴욕의 커트 발렌타인갤러리를 시작으로 런던, 로테르담르담으로 이어졌으며, 1967년 런던 테이트모던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되면서 피카소 예술의 주요 품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20세기 모던아트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거장 파블로 피카소, 한 때 그 이름 자체가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대명사였던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뜬 지도 어언 반세기가 다 돼 간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한 불세출의 전위 시인이자 예술 후원자 겸 안목 높은 콜렉터이기도 했던 여인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 : 1874-1946)의 저택에 모였던 피카소와 마티스 등등, 훗날 기라성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이 된 그들이 벌였던 매일 밤의 축제는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신자본주의가 풍기는 돈 냄새의 악취 속에서 그래도 예술의 진정한 향기는 아직, 좀 남아있는가? 
                                         <아트인컬처,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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