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보편과 특수, 그 초월의 미(美)를 향하여

윤진섭

보편과 특수, 그 초월의 미(美)를 향하여


                                      윤 진 섭(미술평론가)
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새봄을 맞이하여 기획한 <장욱진을 찾아라>전은 입체적인 계획 아래 전개된다. 그것은 첫째, 공간적으로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유명작가들이 다수 참여한다는 점이며, 둘째 회화를 중심으로 하되, 현재 미술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뉴미디어 매체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초대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장욱진을 중심으로 앙리 마티스, 피카소, 피에르 술라주, 앙드레 마송, 나라 요시토모 등 해외의 유명작가들과 한국화의 거장인 김기창을 비롯하여 박이소, 김도균, 전원근, 노현지, 최페레이라, 김선우, 장마리아, 박형진, 한지민, 이주행, 홍인숙, 강이경, 김미래 등등 중견 내지는 신진작가들이 국적과 세대를 초월하여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열거한 초대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딱히 한 두 개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만큼 작가선정의 진폭이 컸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회화나 조각 중심의 천편일률적이며 상식적인 전시기획에서 벗어나 참신하고도 실험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비단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매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매체와 전시방법론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는 증강현실, 3D 애니메이션, 아티바이브 앱과 같은 신매체들이 다수 선을 보이고 있다. 관객이 아티바이브 앱을 다운받은 뒤 다양한 문장과 단어들이 벽에 적혀있는 특정한 구역에서 ‘장욱진 그리드’를 통해 직접 자신의 감정을 체험하는 등 신매체를 통한 관객참여 방식의 새로운 미적체험이 두드러진다.  

Ⅱ.
 이 전시가 막 시작할 무렵에 ‘코로나19(Covit19)’라는 전지구촌적인 규모의 유행병(pandemic)이 터졌다. 중국의 우한에서 발원한 이 뜻하지 않은 질병은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대재앙이 되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삶의 패턴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미술 역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은 미술의 감상 모드가 전시라는, 다중에게 개방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공연장이나 체육관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에게 문호가 개방된 독특한 형태의 문화시설이라는 점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따라서 미술관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기획 전문가들은 이 초유의 예상치 못한 사태를 접하고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팬데믹에 대한 대응책은 비상사태 매뉴얼에도 없는 신종의 대재앙이기 때문이었다. 
 팬데믹이 장기화의 국면에 접어들자 정신적 패닉에 빠져있던 전시기획자들은 웹사이트를 이용한 사이버 전시에 착안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 경매, 아트 페어들이 웹사이트를 열고 사이버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문명에 걸맞는 새로운 전시 형태가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방식의 사이버 전시가 실험되는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를 올바로 인식하게 된 일부 발빠른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예약제로 전시를 운영하는 등 절충식으로 폐쇄된 문을 조금씩 개방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실제공간에서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가 엄격한 규율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던 것에 반해. 미술관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 SNS 매체와 스마트폰을 매체로 활용한 사이버 공간에서 전시를 비롯한 각종 세미나 등 미술관 활동을 이어갔다.         
 장욱진미술관도 순발력 있게 팬데믹 사태에 대응한 공립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친절한 안내 멘트를 곁들인 전시장 풍경을 약 3분 정도의 짤막한 동영상에 담아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톡 등등 가능한 모든 SNS 매체를 통해 전시를 홍보했다. 

Ⅲ. 
 장욱진미술관이 마련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여기, 여기, 여기’이다. 이 주제는 장욱진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어느 날, 제자가 화실을 방문하여 어디서 그림 그리고, 먹고, 자느냐고 묻자 “여기”, “여기”, “여기”라고 똑같이 답했다는 재미있는 일화에서 이 주제가 나왔다고 한다. 마치 선불교의  선(禪)문답처럼, 공간개념이 모호한 동양의 선사상을 엿볼 수 있다.  
 평소에 ‘심플한’ 미를 추구한 장욱진은 동심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 매우 독특한 화가였다. 대개가 소품에 해당하는 장욱진의 그림들은 ‘작지만 큰 세계’를 지향했다. 까치, 소, 개, 나무, 집, 장독, 가족, 부처, 해, 달, 산, 호랑이 등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순수한 정신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아동화 혹은 선화(禪畵)를 연상시키는 장욱진의 그림들은 속기(俗氣)와 치기(稚氣)을 넘어선 지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탈속(脫俗)’의 경지를 통해 자연 속에서 노니는 풍류와 여유의 미가 장욱진 작품의 일반적 특징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일상적 모습을 통해 서민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자 했다. 어떤 작품은 민담이나 설화에 기반을 둔 것들도 있고, 원두막을 소재로 농촌의 한가한 여름풍경을 화면에 담은 작품들도 있다.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오방색의 기미가 약간 단순하게 표현된 수탉의 모습에서 보이기도 하나, 장욱진의 색은 민화의 원색에서 속기(俗氣)와 치기를 한 꺼풀 벗겨낸 고아(高雅)한 색이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다. 
 장욱진의 그림에 나타난 공간감은 근대적 체험 이전의 세계를 보여준다. 원근법에 의한 위계와 층위의 공간이 아니라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같은, 아예 방위의 개념이 없는 공간이다. 그것은 농경사회의 산물인 한 식경이나 한 마장이 가리키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이다. 도대체 ‘밥 한 그릇 비울 시간(한 식경(食頃))’이란 과연 어떤 시간을 이름인가? 그리고 그런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란 대체 어떤 거리일까?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잘 가늠이 되지 않는 그 시간, 그 거리가 바로 장욱진의 그림이 보여주는 시간과 거리의 개념이다. 

Ⅳ.
 사실 잘 관찰해보면 장욱진이 지향하고자 한 세계는 근대(modern) 이전인 ‘전근대(premodern)’의 그것이었다. 계몽주의의 산물인 ‘근대성(modernity)’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에 도달하는데, 본질적으로 서구적 개념인 그것이 제국주의의 물결에 편승하여 동양에 도달했을 때(서세동점(西勢東漸)), 동양이 지니고 있던 기존의 세계관과 충돌하면서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가령 ‘원근법(perspective)’은 근대성을 떠받친 핵심적인 개념인데, 이는 구한말에 민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존의 다시점법과 충돌을 일으켰다. 가령, 구한말에 유행한 책거리 병풍에는 기존의 다시점법과 서양의 원근법이 충돌하면서 파생된 절충적 방식의 흔적이 엿보인다.
 화면에서 원근법적 요소를 완전히 배격하고 다시점법과 무(無)방위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공간의 층위를 두지 않는 장욱진의 그림들은 원근법이 대세였던 당시의 회화적 관습에 저항하며 세계를 보는 고유한 방식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선구적 사례이다. 장욱진이 1963년 이후 근대의 상징인 서울을 벗어나 덕소, 수안보, 용인 등 한적한 농촌에 작업실을 마련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삶이 곧 예술인 그에게 있어서 삶과 예술의 일치란 곧 ‘윤리’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과 행동이 겉도는 위선적 삶이 아니라, 언행이 일치되는 가운데 구도적인 자세로 평생의 화업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이다. ‘심플(simple)’은 그런 그에게 있어서 삶이나 예술 양자를 추동하는 일종의 화두와도 같았다.    
 
Ⅴ.
 그럼 이번에는 <장욱진을 찾아라>라는 제목을 살펴보자. 우리는 구체적으로 장욱진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장욱진을 단순히 찾는데 그치지 않고 그에게서 무엇을 찾아낼 것인가? ‘코로나19’가 팬데믹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기에 이런 질문은 아주 시의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의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19’가 지구촌 전체를 덮친 현 상황에서 위기적 징후를 나타내는 생태에 대한 관심 또한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욱진이 맨 처음 서울을 벗어나 덕소로 들어간 1963년은 박정희 소장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집권한 후 가장 야심차게 추진한 경제개발5개년 계획(1차 : 1962-1966)이 출범하던 무렵이었다. 이른바 근대화 정책의 핵심을 차지하는 이 계획은 근본적으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보다는 ‘물질’에 더 가치를 둠으로써, 그 후 우리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정신적 질곡과 가치전도로 인한 다양한 폐단을 낳았다. 
 그렇다면 장욱진에게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미술관의 고유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전시의 교육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장욱진미술관 학예팀은 장욱진 예술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전시기획의 주제를 정했다. 

1. 여기/이상향의 추구(전시공간1) : 장욱진, 최페레이라, 전원근, 김도균, 피에르 술라주, 앙리 마티스
 이 섹션은 재현의 문법에 기대지 않고 순수한 직관에 의존하는 미니멀 추 상 회화나 조각, 건축의 모형을 이용한 설치 등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평소 ‘심플한’ 미를 추구한 장욱진의 정신과 맥을 이루는 작품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다. 장욱진에게 있어서 단순한 것은 곧 ‘이상적’인 것이며, 현실에서 비롯됐으되 현실을 초월한 미로 발현된다.  
   
2. 여기/일상의 재현-자연(전시공간2) : 장욱진, 김기창, 김선우, 장마리아, 박형진, 한지민, 홍인숙, 나라 요시토모,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이 섹션은 호랑이를 소재로 설화와 민담의 세계를 보여준 장욱진과 김기창의 호랑이 그림을 비롯하여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증강현실이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된 개가 등장하는 나라 요시토모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증강현실로 관객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전시가 지닌 장점 중 하나이다. 이와 더불어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3. 여기/이분법적 경계의 초월(전시공간3) : 장욱진, 앙리 마티스, 박이소, 이주행
 이 섹션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박이소의 작품이다. 심플한 구성을 통해 단순미를 보여준 박이소의 <팔방미인>(2002)이 어쩌면 섹션 1에 배치됐어도 무방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봤다. 박이소의 이 작품은 그 만큼 풍자적이기도 하지만 장욱진의 ‘심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섹션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장욱진의 익숙한 도상을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을 프린트해서 디스플레이한 작품과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빔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벽면에 투사한 작품 등등 신매체를 활용하여 다양한 응용을 시도한 점이다. 
이 섹션이 이분법적 경계를 초월하여 동양과 서양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구상과 추상의 구분 없이 경계를 초월하여 소통을 시도하는 학예적 전략의 요충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매체적 개방성과 실험성에 기인한다. 

Ⅵ. 
 이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장욱진미술관이 제작한 홍보용 영상을 보면 이 전시가 얼마나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으며, 장욱진 작품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인 ‘단순미’를 전시 디자인에 반영했는가 하는 점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도입부인 1전시실에서 8전시실까지 전체적으로 작고 예쁜 리본을 연상시키는 전시장의 구조에 알맞게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제1전시실에는 컴컴한 암실에 조명을 밝힌 가운데 장욱진의 작품 14점이 걸려 있다. 이 방은 이 전시의 방향과 성격을 암시하는 특별실이다.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장욱진의 작품을 통해 이 전시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관객들은 이 전시실을 둘러보고 다음 전시실로 들어간다. 
 제2, 3전시실은 제1주제인 “여기, 이상향의 추구”가 구현된 방이다. 2전시실에 설치된 최페레이라의 장욱진미술관 모형작품을 둘러본 관객들은 주전시장인 제3전시실에서 전원근의 미니멀한 평면회화와 김도균의 깔끔하면서도 단순한 형태의 입체작품을 마주치게 된다. 또한 넓적한 붓질로 검정색 물감을 단숨에 칠한 피에르 술라주의 서체적 추상을 감상하게 된다. 
 제4전시실은 섹션2의 주제 “여기: 일상의 재현-아이/사람”이 구현된 공간이다. 장마리아의 심플하면서도 작은 미니어처 <사람들(젠틀맨 시리즈-사람들(2019)>이 좌대에 놓여 있다. 나라 요시토모의 <무제(2000)>를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증강현실로 감상할 수 있다. 
 제5전시실은 노현지의 증강현실 체험존이다. 벽면에 그리드 형태로 마감한 시트지에 다양한 문장들이 적혀있고 아트 바이브 앱을 다운받은 관객은 자신의 휴대폰을 조작, 자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증강현실 체험공간이다. 
 제6전시실은 강이경과 김미래의 3D 애니메이션 공동작품 <영원한 소년, 화가 장욱진(2020)>이 영사되는 곳이다.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3분짜리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다. 
 제7, 8전시실은 “여기, 일상의 재현-자연”이 전시된다. 박형진, 박이소,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김기창, 홍인숙, 김선우, 한지민, 이주행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Ⅶ. 
 전시기획은 미술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의 대화를 매개하는 문화적 행위이다. 따라서 창작에 버금가는 창조성이 강조되며 예술작품의 해석에 따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전시의 대상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에 대한 학예실의 논의는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최대치의 성과를 향해 항진(航進)한다. 전시기획의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는 대략 이러한 과정들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때이다. 
 장욱진미술관이 기획한 <장욱진을 찾아라>는 장욱진의 작품들을 근간으로 동서양의 다양한 국적과 연령층의 작가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통해 ‘같음과 다름’의 차이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가령, 장욱진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인 ‘단순성(simplicity)’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작가군(郡)과 그렇지 못한 군(群)의 설정이 가능하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 전시는 그런 점에서 열려 있다. 가령, 김기창은 호랑이라는 소재에서는 장욱진과 ‘같음’에 해당하지만, ‘단순성’이라는 특징에는 ‘다름’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이 전시가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은 증강현실과 같은 신매체를 활용하여 관객의 미적체험을 극대화한 것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관객의 참여가 증대되고 있는 예술계의 현실은 이미 주입식 전시를 지양하고 관객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러한 때에 장욱진미술관이 지향하는 이러한 스타일의 전시형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여파에서 보듯이 하나의 대안적 전시방법론의 개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향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을 찾아라]전 서문, 202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