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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엽의 작품에 나타난 서명의 특징과 시기별 변화에 대한 분석

윤진섭

황용엽의 작품에 나타난 서명의 특징과 시기별 변화에 대한 분석



윤 진 섭(미술평론가)

1. 들어가는 말 
 아마도 한국 근현대사에서 6.25전쟁만큼 한국인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사건은 없을 것이다. 36년에 걸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의 꿈을 이룬 한국은 분단된 채로 남과 북이 갈리는 비운을 맞이했다.

1948년,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독립된 정부가 들어선 한반도에는 2년 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졌다.
  남쪽에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한민국이, 북쪽에는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선지 2년 만에 북한의 남침이 있었다. 그 후 3년에 걸친 6.25전쟁은 전국토를 초토화시키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포성이 멎었다. 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작가 황용엽(1931-   )은 출향민이다. 그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양. 전쟁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당시 그는 평양미술대학에 재학  중 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 황용엽은 대학에서 한 선배가 학생회 간부들로부터 혹독하게 비판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상’에 물든 불순한 화풍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선배는 “사랑이 넘치는 모자상을 마리아처럼 성스럽게”1) 그린 화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선배의 화풍은 황용엽의 그림과 분위기가 서로 비슷했다. 황용엽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꼈고, 그런 위기감은 결국 남쪽으로 내려오는 계기가 되었다. 예닐곱 달 지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머니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이었다. 황용엽은 고향을 떠나온 북한 실향민들이 느끼는 것처럼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산가족의 한(恨)을 가슴에 담고 산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 글은 참혹했던 6.25전쟁과 남북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속으로 삭이며 오로지 ‘인간’을 주제로 70여 년 간 그림을 그려 온 황용엽의 작품에 대한 변천과 그에 따른 서명(signature)2)의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작가에게서 서명, 즉 사인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사인은 작가가 자신이 제작한 작품에 진품성을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징표이며, 사인을 하는 행위는 그 작품이 자신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하는 객관적 근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가의 사인에 대한 체계적 고찰은 작품의 진위 판단에 입각한 작품 감정(鑑定)의 결과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Ⅱ. 초기 : 1950-1960년대   
 황용엽 작품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인간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70년대부터이다.3) 그러나 그 이전인 60년대에도 간헐적으로 인간이 주된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향민으로서 겪은 전쟁체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부상을 겪은 후 상이용사로서 남한 땅에서 겪은 인간 존재를 둘러싼 ‘한계상황’을 작품 속에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황용엽의 작품 연구에서 가장 취약점은 1950년대 이전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그의 세대가 그런 것처럼 빈번한 이사 등 생활의 불안정에서 오는 작품의 멸실과 관계가 깊다4). 따라서 원작이 부재한 상태에서 작품에 대한 연구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황용엽의 경우 몇몇의 도판을 참고로 하면  특히 60년대 이전인 1950년대의 작품에는 반구상적인 필치로 비교적 단순하게 그려진 풍경화를, 본격적인 ‘인간’시리즈의 원조격인 누드의 여인상을 예로 들 수 있다.5)   
 사인은 1959년도 작품인 <여인 A woman)>(65.5x80cm, 캔버스에 유채)에서 연도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 비교적 작은 검정색 글씨로 ‘59 Hwang’이라고 적혀 있다. ‘1959’을 줄여 ‘59’년으로 표기한 예에서 보듯이, 천 단위와 백 단위를 생략하고 십 단위와 년 단위 만을 적는 것이 황용엽의 전체 사인에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이다. 


 그러나 60년대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인 색채와 형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앞에서 잠시 언급한 1959년 작 <여인>을 좀 더 상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야말로 60년대 들어서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는 여인상과 소녀상, 가족상의 원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벌거벗은 여인의 상반신을 그린 그림이다. 암갈색의 거친 붓터치가 가득한 배경을 바탕으로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모습이 역시 거친 붓터치로 그려져 있다. 인체는 황용엽 그림의 특징인 가늘고 거친 파묵(破墨)의 선묘로 그려져 있다.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은 약간 슬픈 표정을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 팔은 뒤로 가려져 있고, 왼 팔은 가늘고 짧게 퇴화된 것처럼 왜곡돼 있다. 사인은 이 오른팔의 바로 밑에 보이는데, 검정색 글씨로 작은 편이다.

 60년대 전체의 작품들에서 사인을 판별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난무하는 필선과 붉은색과 청색, 녹색조의 어두운 톤 때문이다. 서명은 주로 오른 쪽 하단에 작고 약간 흘림체의 영문글씨로 하는데, 때로는 왼쪽 하단부에 한 경우도 있다(yong yop).6) 그러나 대체로 년도 다음에 첫글자를 대문자로 영문 성만 쓰거나 성 전체를 영문 대문자로 쓴 것이 많다. 예) 65 Hwang, 62 HWANG. 그러나 <탈(Mask)>(1962, 50x60.5cm, 캔버스 위에 유채)의 경우, ‘’6 HWANG’처럼 ‘2’자를 빼고 쓰는 것도 있으니 유심히 살필 일이다.7)   60년대의 서명의 특징을 정리하면, 
1. 년도, 영문 대문자를 사용하여 성만 표기한 것(62 HWANG)이 주류.  
2. 년도, 영문 첫 글자만 대문자로 써 성만 표기한 것(63 Hwang) 
3. 흔하지는 않으나 왼쪽에 년도와 영문 성만 쓴 것도 보임(65 Hwang)  
4. 글자의 일부가 누락된 사례가 보임(62-‘6’으로 표기)  
5. 캔버스 뒷면에 년도, 제목, 한문서명, 영문 성 표기 서명을 가는 붓글씨  흘림체로 함.(예 : 63 <두 사람> 습작 黃用燁 Y. Hwang)   특기사항 : 이후 캔버스 뒷면에 하는 이런 형식의 사인이 현재까지 지속됨.여러 글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캔버스 뒷면에 한 이런 형태의 사인방법은 위, 변조를 방지하는 황용엽 특유의 방식이 됨.    

Ⅲ. 중기 : 1970-1980년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황용엽의 화풍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70년대 중반기에 이르기까지 위에서 아래로 내리 긋는 스타일의 붓자국이 나타나는 것이다. 70년대의 <인간(人間)> 시리즈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회색조의 빗금으로 이루어진 화면 배경과 철사처럼 가늘게 표현한 형해화(形骸化)된 인간상의 전단계에 해당한다. 이처럼 초기에는 굵고 거친 선묘는 후반으로 갈수록 철사처럼 가늘고 섬세한 필획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두드러진 선묘의 변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회색으로 변하는 색조의 변화와 함께 마치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회화작품처럼 시각장을 어지럽히는 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서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흰색이나 붉은 색으로 쓰는 습관을 낳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년도 표기와 함께 성을 영문으로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은 흘림체로 쓴 서명(77 Hwang, 74 HWANG)이 주를 이룸.
  2. 서명의 위치는 주로 오른쪽 하단부에 많으나 왼쪽 하단부에도 빈번히 보임.
  3. 년도와 함께 ‘용엽’이라고 쓴 한글 서명도 간혹 보임.(예 : 75 용엽)
  4. 캔버스 뒷면에 년도, 제목, 한문서명, 영문 성 표기. 서명을 가는 붓글씨
흘림체로 함.(예 : 82, 15号 <人間> 黃用燁 Y. Hwang)

Ⅳ. 중후기 : 1990년대 
1990년대에 들어 나타난 황용엽 화풍의 특징은 1980년대의 그림을 지배한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화려하면서도 무속적인 분위기의 연장선에 두어진다. 겨우 팬티만 걸친 남성과 가슴부분과 하복부를 가린 여성의 가늘고 섬세한 인체를 통해 미니멀한 인간상을 표현한 시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꽃잎과 나뭇잎이 휘날리는 자연 속에서 형해화된 인간 군상이 춤을 추는 환희가 이 시기의 그림 속에 잘 표현돼 있다.  

 90년대의 화풍은 80년대의 그것을 더욱 진폭있게 밀고 나간 결과물이다. 60-80년대를 지배했던 1인 혹은 2인의 인간이 등장하던 등식을 깨고 군상이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90년대이다. 물론 이 시기에도 1인 혹은 2인이 등장하는 사례도 많으나 다수의 등장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 인간 군상은 마치 한반도의 허리를 관류하는 철조망을 상징하는 듯한 여러 개의 가로 선들에 막히거나 마치 거미줄에 걸린 삐에로처럼 불안해 보인다. 

이 시기의 그림도 보는 자의 시각장을 교란시키는 요소들은 화면의 도처에 깔려 있다. 작은 붓터치의 중첩과 화면을 이리저리로 가로 지른 선들, 꽃잎과 나뭇잎의 휘날림, 어지러운 선과 면, 색의 난무와 혼합 등이 그것이다. 서명의 특징은 80년대의 그것과 기조를 같이 하나 특기할 사항은 년도 표기와 함께 ‘용’을 가로 흘림체로 ‘o ㅛ ㅇ’이라고 쓴 서명이다.  
 이 시기 서명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년도와 함께 한글로 ‘용엽’이라고 쓴 서명이 상당수에 달한다.  
2. 년도 표기와 함께 성을 영문으로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은 흘림체로 쓴 서명(77 Hwang, 74 HWANG)이 병기된다.  
3. 서명의 위치는 주로 오른쪽 하단부에 많으나 왼쪽 하단부에도 빈번히 보임. 
4. 캔버스 뒷면에 년도, 호수 명기, 한글제목, 한문 서명, 영문 성 표기 서명을 가는 붓글씨에 검정색 흘림체로 함.
(예 : 95, 1005号 F <가족> 黃用燁 Y. Hwang)


Ⅴ. 후기 : 2000년대 이후 
 이천년대에 접어들면 70대의 노년기에 들어선 작가가 인생을 관조하면서 화풍에도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엄격하고 정확한 선묘보다는 약간 어리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선묘가 나타나게 된다. 일종의 종합양식이라고나 할까, 이제까지 추구해 왔던 화풍이나 소재가 재등장하는 가운데 인물들은 더욱 미니멀해지고 일종의 기호화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특기할 사항은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원색에 가까운 청색의 단색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인체는 단순한 직선으로 표현되거나 기호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연의 한 원소로 환원된다. 70년에 가까운 긴 회화적 도정이 자연으로 환원되는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경지가 나타난다.

  이 시기 서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한글 서명이 지배적이다. (예 연도와 함께 ‘용엽’이라고 흘려 쓴 것) 2. ‘oㅛo’, 즉 한글의 ‘용’을 가로로 풀어쓴 것과 ‘yong yop’이라고 영문으 로 표기한 서명이 혼용.     
‘yong yop’으로 표기한 경우 연도 표기 없는 경우가 있음. 
3. 캔버스 뒷면에 년도, 호수 명기, 한글제목, 한문 서명, 영문 성 표기 서명을 가는 붓글씨에 검정색 흘림체로 함.(예 : 95, 1005号 F <가족> 黃用燁 Y. Hwang)
4. 캔버스 뒷면 좌우에 붓글씨 서명이 나타남. 왼쪽은 영문 서명, 오른쪽은 한글 및 한문 서명
(예 :2013 Life Story yong yop(왼쪽)       
2013 25F <삶 이야기> 黃用燁 ㅇㅛo (오른쪽)


Ⅵ. 맺음말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황용엽 서명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천해 왔다. 그 과정을 정리하자면 한 마디로 말해 전체를 관류하는 큰 규칙이나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 시기에도 여러 양식이 혼재하며 전에 것이 나중에 재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변화의 특징은 크게 영문 서명에서 한글 서명으로 이행해 온 것이다. 한글, 영문, 한문이 고르게 사용되고 있는 바, 이는 캔버스 뒷면에 가는 붓으로 또박또박 쓴 정자체의 서명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살펴본 황용엽 서명의 특징에 관한 분석과 서술은 그의 전 작품을 조사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기에 이것이 표준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는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연구에서 밝히지 못한 부분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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