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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pandemic) 시대의 자연미술 퍼포먼스

윤진섭

팬데믹(pandemic) 시대의 자연미술 퍼포먼스

                                                    윤 진 섭

Ⅰ.
 바야흐로 '팬데믹(pandemic)'이라고 부르는, ‘전 지구적 차원의 대유행병’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 19(Corvid 19)’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를 덮치더니 물러설 줄 모르고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돌이켜 보면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 SARS)과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 MERS)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이 두 호흡기 질병의 경우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넘어간 것 같다. 메르스 때에는 마침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북경 공항에서 흰색의 방역복을 입은 중국 의료진들이 비행기 안에서 검역을 하느라 상당 시간 지체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흰색의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비행기 안을 누비고 다니는 진기한 광경을 보면서 한 편의 퍼포먼스를 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19'의 경우에는 이 질병의 감염 대상이 78억에 달하는 전 세계의 인구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국지적이라기보다는 전 지구적이며, 단기전이 아니라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장기전이라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변종의 출현으로 그 끝을 예측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장기적인 플랜을 세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일본이 오랫동안 준비한 올림픽을 연기한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긴급사태가 지속하는 한 올림픽을 비롯하여 월드컵, 각종 엑스포 등등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하는 인류의 큰 행사나 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미술의 경우에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 등등 많은 국내외 미술행사들이 줄줄이 연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다행히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열린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 하다. 2012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아 일해본 적이 있는 나로선 이런 지구적 차원의 환란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강행하는 주최 측의 결기와 각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 이유는 환란을 무조건 피해갈 것이 아니라 대결하는 가운데 새로움을 모색해보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위기(危機 / crisis)라는 낱말 속에는 기회(機會)의 뜻이 담겨 있다. 이를 자연의 운행과정에 비유해보면 죽음으로 은유되는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움트는 봄(생명, 소생)이 오듯이, 위기 속에는 또 하나의 생명, 즉 기회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이며 여기에 어떻게 생명을 부여할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자연을 대상으로 한 비엔날레로서는 지구촌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행사이기 때문에 그 의의는 더욱 클 것이다.   
 
Ⅱ. 
 어쩌다 지하철을 탈 때면 내가 지금 무슨 별나라에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들곤 한다. 지하철에 탄 승객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은 마치 초현실주의 화풍의 그림 속 한 장면 같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의 자료 화면과 비슷한 광경이 뉴욕, 런던, 파리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 건물의 을씨년스런 그림자만이 도로에 드리워진 황량한 풍경은 형이상학파 화가 기리코(Giorgio de Chirico)의 그림 속 한 장면 그대로이다. 나는 이 광경을 연상하며 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예술가들의 예민한 촉수는 미래에 인류에게 도래할 이 가공할 팬데믹 사태를 미리 감지하고 그런 그림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예술이 지닌 신비한 힘이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의 경지에 오른 기리코의 혜안과 영감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감춰져있는 불안과 공포를 상징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증발돼 버린 거리는 곧 닥칠 전대미문의 인류의 대재앙을 예고하는 것 같다. 인간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수많은 인파로 들끓던 광장 중앙에는 우뚝 솟은 동상만 홀로 남아 텅 빈 거리를 굽어보고 있지 않은가? 마치 자신은 인간의 교만과 위선, 그리고 이기심이 낳은 파국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서울아트가이드, 2020년 5월호-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3월 22일부터 나는 매일 아침 남산 둘레길을 산책하며 스케치북에 주변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새로운 습관은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매우 유익한 체험이었다. 만일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처럼 지속적으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처럼 매일 자연스럽게 자연을 접하다 보니 미세한 변화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난생 처음 겪는 좋은 경험이었다. 3월 22일이면 이제 막 목련이 흰 꽃잎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그린 자연의 모습을 얼책(facebook)에 올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림을 잘 그렸던 못 그렸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했고 그 속에서 어떤 접점을 찾고자 했다. 그런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나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나는 그 사이에 상당한 양의 자연 스케치를 했으며 자연을 소재로 한 그 그림들은 일정한 기간 동안(2020년 3월-8월) 내가 보고 느낀 자연 변화의 동향 보고가 될 것이다. 물론 나의 자연 스케치 활동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지만 이 세미나를 위해 그 동안 그린 약간의 그림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그러면 일종의 생활일기에 해당하는 이 풍경 스케치 그리기 퍼포먼스 또한 소박한 형태의 ‘자연미술’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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