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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개념의 재정의와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위한 시도

윤진섭

판화 개념의 재정의와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위한 시도

                                          윤 진 섭(미술평론가)
                                    
 대전은 예로부터 교육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충청문화권의 중심이 되는 대도시이다. 인구가 백 오십 만 명에 달하는 광역시로서 미술에 관한 한 일찍이 1970년대부터 현대미술이 태동돼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출발이 비교적 빠른 편이다. 최근에 갑자기 그 존재가 부상된 [19751225] 그룹은 당시 ‘이벤트(Event)’라 칭한 행위미술(performance)을 그룹 차원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등 전위미술이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대전은 그 외에도 [르뽀] 동인, [대전 78세대], [긍강현대미술제] 등 70년대 중후반에 태동돼 그 이후 대전 충남지역의 전위미술을 견인해 나간 많은 그룹들이 결성돼 전위미술(avant-garde)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활성화된 곳이다. 전위미술에 대한 대전 청년작가들의 강한 의지와 열망은 80년대 후반에 [대전트리엔날레]의 창설로 결집돼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아쉽게도 94년에 제3회 행사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후 1998년에 건립된 대전시립미술관은 과학과 예술 사이의 연계를 모색하는 [대전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등 현대미술 중심의 정체성을 모색해나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대전미술의 역사를 아카이브 구축 차원에서 재정리하는 등 대전 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 간력히 살펴본 것처럼 대전은 민관이 상호 협력해 나가는 가운데 대전 미술의 지평을 넓히려는 작업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사실은 일부 미술전문가나 관계자들에게만 알려져 있을 뿐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을 견인해 내기 위해서는 보다 주도면밀한 홍보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어느 행사든 간에 시의 주체인 시민들의 호응이 없이는 그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문화예술의 행사가 단명하게 된 이면에는 시민들의 무반응과 비협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 화단의 일각에서 일찍부터 판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판화의 진흥에 앞장서 온 단체가 있다는 사실은 일반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9월 3일부터 대전 시내 5개 화랑에서 열리는 [2020 KCJT 국제판화미술전(KCJT International Print Exhibition)]은 판화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진작시킴은 물론 대전의 판화 미술 발전에 큰 견인차가 될 전망이다. 이 행사는 2006년부터 시내의 주요 화랑에서 전시를 시작한 이래 해가 갈수록 점차 범위를 확대하여 한국, 중국, 일본, 태국의 판화작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전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상황에서 민간 차원에서 국제전 행사를 치를 때 어느 정도의 고충과 어려움이 따를까 하는 문제는 짐작이 가거니와, 아무튼 이 행사의 운영위원들은 그러한 난점들을 잘 극복하고 국제 판화 비엔날레로의 성장을 위해 전 역량을 결집시켜 온 것이다. 그 준비 기간이 2006년 이후 올해 기준으로 무려 14년에 달한다. 2008-9년에는 헝가리와 한국, 2012-16년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전시가 있었으며, 그 사이에 매년 한국국제판화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인적 교류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조용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성과들이 쌓여가는 문화예술 교류는 대전시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고 시민들의 문화 향수 기회와 역량을 향상시키는 주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야말로 대전시가 이러한 민간 차원의 자발적이며 창의적인 행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홍익대를 비롯하여 대학에 판화과가 설립될 정도로 판화에 대한 관심이 큰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일찍이 70년대 초반에 동아일보사가 창설한 [동아국제판화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공간사 주최의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가 있었으나, 이 쌍벽을 이루는 국제판화비엔날레들은 모두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현재 울산시가 주최하는 [울산목판화비엔날레]가 유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전시가 국제판화비엔날레의 창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행사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판화 분야에 대한 지원은 대전문화재단이 행사의 지속적인 안정감을 구축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는 바이다. 왜냐 하면 전국의 광역시 중에서도 특히 대전은 일찍부터 대전판화협회(1984년 창립) 등 판화 단체의 결성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중심으로 예컨대 1993년에 14개국의 판화작가들이 참여한[대전엑스포 국제판화전(1993. 8. 20-1993. 9. 3)]이 개최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1990년에 창립한 ‘46번가 판화전’은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면서 매년 판화전시회를 갖는 등 대전의 판화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 행사의 주최 측이 발표한 <판화 이후(Post Printmaking)>라는 선언에서도 나와 있듯이, 이들의 활동은 판화 영역의 확장과 신개념의 형성에 이바지할 전망이다. 

 “판화이후 선언- 다른 장르와 구별될 수 있는 판화만의 고유성은 무엇인가. 근래에 와서 이러한 물음은 장르적 특수성과 매체적 특수성에 천착해온 모더니즘의 예술 관념이 회의에 부쳐 지면서, 그 적절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러한 의심은 판화에 대한 고정된 형태의 정의가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유포시켰으며 따라서 보다 자유분방한 형식실험이 행해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판화는 이전에는 판화로 여겨지지 않던 경계를 넘보게 되었으며 외부로부터 주어진 정의를 스스로 재정의하고 갱신해가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판화이후> 선언문에서 일부 발췌한 이 글은 미술을 둘러싼 제반 상황이 변하고 있는 만큼 판화 역시 그러한 추세에 맞춰 스스로 변화해 가지 않으면 존립이 위태롭다는 현실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보다 광역화, 다변화해  가고 있는 동시대 판화의 정체성을 점검하고 새로운 개념의 정립을 위한 모색의 일환이다. 
 나날이 변모해 가는 문화예술적 환경 속에서 판화의 개념에 대한 재정의와 함께 새로운 판화의 정체성 수립을 위해 기울이는 이들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전국제판화제 서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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