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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모 / 축축한 대지의 회임(懷妊) 가능성에 대한 질문들-팬데믹 시대의 스산한 풍경

윤진섭


축축한 대지의 회임(懷妊) 가능성에 대한 질문들-팬데믹 시대의 스산한 풍경

       
윤 진 섭(미술평론가)

Ⅰ.
 정수모는 1976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기간이 무려 45년에 이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갖은 풍상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신산한 삶을 산 작가로서 어찌 가슴 밑바닥에 일말의 한(恨)이 없겠는가?

 검정색 일색으로 풀어낸 드로잉 작품을 대하니, 문득 그 유장한 인생살이의 마디마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전시의 백미인 길이 5미터의 대작 <기억의 소리>(2021)가 그러하다. 먹과 아크릴 칼라로 그린 이 작품은 추상적 형식을 취했으되 그 내용은 삶의 구체성을 암시하고 있다. 삶은 구체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기억 속에서 서로 엉켜 추상적 형태로 존재하듯이, 다 제하고 앙금만 남은 추억은 회상의 형식을 띠고 나타난다. 그 회상의 첫 단추를 풀어내는 것이 이 그림의 화자(話者)에 해당하는 작가 자신이다. 그림의 맨 오른쪽 윗부분에 튀어나와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이 바로 자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가로로 긴 이 그림은 마치 한 남자가 나지막한 언덕에 서서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 되겠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인물들, 가령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 주변의 인물들 등등과의 관계를 회상하면서 머리칼처럼 예리한 선들로 얼굴이나 젖가슴과 같은 인체의 부분들을 추상적인 형태로 남겨놓고 있다. 그러한 형상들은 아주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인식하기 어려우나 자세히 응시하면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것들은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형상들이어서 우리가 흔히 만나는 벽지 위의 얼룩에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비록 삶의 내용은 각자 다르나 공감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작가가 관객에게 뭔가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그림이 아니라, 감상의 단초를 열어줌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매개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관객은 그림 속에서 소의 얼굴을 발견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관객은 매의 매서운 눈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물들은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줌으로써 관객들이 잠시나마 회상에 젖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정수모의 예술이 지닌 훌륭한 기능과 역할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정수모의 그림이 품고 있는 대지성(大地性)이다. 어머니로 대변되는 대지는 여성이면서 풍성한 수확의 상징물이다. 그것은 회임(懷妊)이 의미하는 것처럼 자손을 번식하는 동시에 먹을 것을 낳는 비옥한 땅으로 은유된다. 정수모는 그러한 대지의 왕성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거칠고 뻣뻣한 수풀을 검은 먹을 사용하여 세필로 정밀하게 묘사한다. 


Ⅱ.
 정수모의 그림들은 대체로 검다. 새벽의 박명(薄明)처럼 어둡고 때로는 축축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계곡의 소리>처럼 건강한 성(性)의 에너지와 원시성을 머금고 있다. <계곡의 소리>는 말 그대로 주름지고 험상궂어 보이는 계곡의 아래에 위치한 샘에서 물이 흐르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풍화돼서 곧 바스라질 것처럼 주름진 바위들은 궂이 비유하자면 늙은 여인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명수와도 같은 샘물이 흐른다니 그 역설의 비유가 놀랍다. 죽어가면서 생명을 잉태하는 이 역설은 자연의 이법(理法)이기도 하다. 썩고 늙은 나무는 버섯을 낳아 키운다. 늙어가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나오는 법이니 죽음과 탄생이 둘이 아니요,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이 궁극으로는 하나이다. 


Ⅲ.
 정수모는 80년대에 이미 벽돌과 나뭇가지, 천으로 만든 설치작업을 통해 대지와 거주지의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 바 있다. 정수모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만큼 오래된 주제이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의 변모가 있었다. 모래성을 쌓고 허물던 유년시절의 추억에 기반을 둔 이 작품은 오랜 변모의 시기를 거쳤다. 정수모의 오브제와 설치작업을 초창기부터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첫 번 째 시기는 흙 작업이다. 점토로 작은 벽돌을 만들어 주거지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테라코타의 시기이다. 점토로 만든 오브제를 가마에서 저온으로 소성시킨 작업들이다. 세 번째가 도조작업이다. 대략 1천도에 이르는 고열로 구어낸 작품들이다. 정수모는 가마에서 구워낸 오브제들을 땅에 묻었다가 몇 개월 후에 다시 파내는, 고고학적 발굴을 연상시키는 행위를 한다. 이러한 작업은 정수모의 작품이 회고에 뿌리를 둔 지극히 과정 중심의 예술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Ⅳ.
 어떤 경우든 예술가는 삶의 체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아름다운 명주실을 자아내듯, 예술가는 추억과 체험을 먹고 예술작품을 산출한다. 그런 연유로 정수모의 작업은 그가 직접 보고, 관찰하고, 경험하고, 느낀, 삶의 분비물이다. 그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선을 긋고 색을 칠한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들을 위해 정수모는 유독 ‘소리’라는 단어를 넣어 제목을 지었다. <기억의 소리>, <밤의 소리>는 ‘풍경’이나 ‘폐허’라는 단어가 붙은 제목들이 암시하는 작품의 풍경보다 더욱 광포(狂暴)하고 원시적이다. 그것들이 작가 자신의 스산한 내면의 풍경임을 우리가 알아차리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암시하는 바도. 

 이번 개인전을 통해 선을 보이는 정수모의 드로잉은 ‘코로나 19(Covid 19)’로 인해 장기간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저주받은 팬데믹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은 인류가 바야흐로 이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될 ‘대지’에 대해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터전인 지구, 그 생명의 모태에 대한 정수모의 유장한 발언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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