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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퍼포먼스와 사이버 예술

윤진섭



팬데믹 시대의 퍼포먼스와 사이버 예술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생을 탐하지 말라. 다만 가능의 영역을 파고들라.” 
-핀다로스 <아폴론 축전>(퓌티아) 찬가Ⅲ-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위의 잠언은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가 <해변의 묘지>란 유명한 시의 첫머리에 인용한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니 천만년 살 것처럼 유난 떨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나 찾아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시의 끝 연에서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절규한다. 

 퍼블릭아트 9월호에서 다룰 특집은 ‘퍼포먼스(performance art)’다. 우리말로 행위예술 혹은 행위미술이라고 부르는 예술의 매체다. 장르가 아니다. 흔히 퍼포먼스가 회화나 조각과 같은 미술의 장르인 것처럼 착각하나 유사할 뿐 실은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퍼포먼스의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처럼 유연해서 시대에 맞춰 변신을 잘 한다.  
 예를 들어보자. 90년대 후반 한 강연에서 나는 200 명의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한 적이 있다. “여러분, 지금부터 눈을 감고 머리 속에서 빨간 점 하나를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그만’ 할 때까지 그걸로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시는 겁니다. 아시겠죠?” 

 이 사건(event)은 미술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그 후 비슷한 시도가 서너 차례 더 있었지만 청중들이 수십 초에 불과한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적이 없는 퍼포먼스! 그렇다면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이 ‘비물질화’된 드로잉의 금전적 가치는 얼마일까? 과연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이 퍼포먼스의 제안자인 나는 그 점이 궁금하다.
 
 그런데 최근 이와 유사한 사례가 미술계에서 일어났다. 암호화폐를 사용하여 디지털 미술작품을 구입,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는 원화(原畫)가 아니라 디지털 가상 이미지를 사고파는 데 필요한 기술(NFT)의 발달에 따른 결과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을 뜻하는 NFT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상자산이 지닌 ‘희소성’과 ‘유일성’ 때문이다.1) 미술에서의 오리지낼리티(orginality), 즉 원본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유일성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회화를 회화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예컨대, <모나리자>의 ‘오리지낼리티’는 루브르미술관에 걸려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단 한 점에 유일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사진과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지구상에는 수많은 모나리자의 복제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 잘 알려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L.H.O.O.Q>(1919)는 이러한 상황을 비튼 것이다.

 아무튼 복제 이미지는 작품의 원본에 비해 ‘아우라(aura)’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치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진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오리지널 작품이 지닌 ‘이곳 그리고 지금(das Hier und Jetzt)’, 즉 “작품이 존재하는 그곳에서의 일회적 현존”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벤야민에 의하면 오리지널 작품의 진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 ‘이곳 그리고 지금’, 즉 일회적 현존의 개념이다. 예컨대 청동 제품에 대한 화학적 분석은 진품의 규명에 따른 진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의 개념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와 같은 NFT나 메타버스의 플랫폼에서 디지털 복제 이미지가 원본으로 높은 대접을 받으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3) 다음의 인용문은 예술 분야에 나타난 NFT의 양상에 대한 현저한 예이다.   

 “NFT는 가상자산에 희소성과 유일성이란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디지털 예술품, 온라인 스포츠, 게임 아이템 거래 분야 등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이 만든 10초짜리 비디오 클립은 온라인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시청할 수 있지만, 2021년 2월 NFT 거래소에서 660만 달러(74억 원)에 판매됐다. 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의 아내이자 가수인 그라임스는 2021년 3월 NFT기술이 적용된 ‘워 님프’라는 제목의 디지털 그림 컬렉션 10점을 온라인 경매에 부쳤는데 20분 만에 580만 달러(65억 원)에 낙찰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Ⅱ. 
 2018년, 대구미술관이 주최한 [한국 행위미술 50년 : 1967-2017/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전의 협력 큐레이터인 나는 전시도록에서 ‘행위예술의 뿌리줄기 개념도(Rhizomatous Map of Performance Art)’를 제시한 바 있다.(도1 참조) 이 도형을 유심히 살펴보면 퍼포먼스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 보다 현재의 양상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전망이다. 맨 외곽을 주목재 보자.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용어들이 적혀 있다. 사이보그,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살, 로봇공학, Humanoid, 사회적 관계망, 인공지능 등이다. 여기에는 지금 논의하는 NFT와 메타버스(Metaverse / Meta + Universe) 등이 누락됐는데, 그 이유는 이 개념도를 구상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용어들이 대체로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대변되는 팬데믹 상황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에서 새로운 퍼포먼스의 양상을 낳았다. 아바타가 그것이다. 인간의 몸을 대신한 이 아바타는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아의 분신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게다가 요즘 들어 유행하는 본캐(본캐릭터)와 부캐(부캐릭터)의 개념은 이 아바타와 더불어 자아 확장의 추세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몰아가고 있다.   

 마치 장주(莊周)의 ‘호접몽(胡蝶夢)’이 살아 숨쉬는 듯한 현재의 디지털 기반 퍼포먼스는 폭넓은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4) 그것은 현실과 가상을 왕래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관객참여, 즉 게임에서 아바타를 키우거나 새로운 환경을 설정하는 일 등등 사용자(참여자)의 창의력이 발휘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모든 문화에는 놀이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파악한 것처럼, 웹상에서 전개되는 디지털 퍼포먼스는 각종 게임에서 보듯이 무엇보다 놀이적인 측면이 강하다.  


Ⅲ.
 2000년 초,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Covid19)’가 야기한 팬데믹 상황은 비대면을 강요함으로써 인류를 ‘웹(Web)’이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야기한 비대면 상황은 인간을 점차 현실세계에서 가상의 세계로 내몰고 있다. 인간의 자연 침범과 그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으로 대변되는 팬데믹 상황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낳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NFT나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도래할 문화적 변형의 양상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생태와 자연환경에 대한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어서 주목된다.

 둥근 지구본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색의 포도주를 마시는 김석환의 퍼포먼스는 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대한 은유이다. 그는 자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관객들에게도 마실 것을 권유한다. 관객들은 다 함께 동참하는 가운데 살기에 점점 척박해져 가는 지구환경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쓰고 있던 검정 우산의 천을 벗기고 우산대로 지구본 중심을 관통하여 참새구이를 하듯 빙빙 돌려 모닥불을 쬐는 행위는 아마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외계인과의 교신을 시도하는 퍼포먼스를 발표한 작가는 문재선이다. 파리를 의인화한 이 등장인물(문재선)은 팬티만 걸친 몸에 검정색 벨트를 감고 안테나를 비롯하여 양손에 든 탐지봉 등 교신에 필요한 장비들은 외계인과의 접촉의 상징물들이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문제선은 통신장비를 등에 지고 머리에 장착된 안테나와 손에 든 탐지봉으로 발표장소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교신을 시도하는 동작을 취한다. 물론 실제로 통신기능을 갖춘 장비는 아니지만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외계인과 접촉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경호의 퍼포먼스는 설치작업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아티스트이기도 한 그는 지구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2008년부터 생태 문제와 기후변화를 주제로 작업을 펼쳐왔다. 실생활에서도 전기차를 몰고 있는 그는 생태문제를 탐구하는 학술단체 ‘지구와 사람’에 동참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연구한다. 울산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서 발표한 <오병이어>가 대표작이다. 이경호는 또한 검정색 비닐봉지를 허공에 띄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작품을 국내외 여러 나라에서 펼친 바 있다. 카메라가 비닐봉지를 추적한 시선의 동선을 연결하면 마치 수묵화의 선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작업이다.  

 드로잉과 설치작업, 퍼포먼스를 병행하고 있는 Gena Son(손현주)는 최근 들어 다수의 대규모 대지미술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안면도의 바닷가와 안동의 오지에 위치한 밀밭에서 벌인 퍼포먼스는 자연을 캔버스 삼아 펼친 강렬한 시각적 데먼스트레이션이었다. 여성의 자궁을 상징화한 ㄷ자 형태의 기와를 이용한 설치작업은 파도에 쓸려 흐트려졌으며, 드넓은 밀밭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검정옷을 입은 다수의 행위자들이 검정색 연막탄을 터트려 자연 속에 강한 시각적 흔적을 남기는 쇼킹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최근 안면도 바닷가에서 국내외 작가들을 비롯한 관객들의 메시지가 담긴 1천개의 주황색 튜브를 바다에 띄운 대규모 설치작업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과도한 물질문명이 낳은 폐해는 이제 지구를 파국의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마스크를 쓴 채 2년째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 상황은 물질 대 정신의 싸움에서 물질의 우승으로 판가름나는 것 같다. 이 글의 서두에서 ‘영혼’을 언급한 이유이다. 물질의 상승은 NFT와 메타버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으로부터 나온다. 이 분야에서 사기가 운위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의 바람직한 기능과 소임이란 과연 무엇인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번쯤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그다지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퍼블릭아트 2021년 9월호>

ㅡㅡㅡㅡㅡ
1) NFT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 디지털 자산을 진품으로 증명하게 됨에 따라 예술작품이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를 통해 고가로 거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전통적인 경매사들도 이러한 사업에 합류하고 있으며, 메타버스 상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NFT, 가상화폐, 가상토지 등등의 개념은 퍼포먼스와 관련하여 볼 때 매우 흥미로운 국면을 제공한다. 예컨대 가상토지는 얼책(facebook)의 가상국가인 ‘Pajama Republic’의 가상토지를 메타버스를 통해 판매하는 경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앞에서 예로 든 상상 속의 드로잉 판매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2)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현대사회와 예술-발터 벤야민>, 차봉희 역, 문학과 지성사, 1980, 49.

3) 원본성의 측면에서 볼 때 디지털의 가장 큰 단점은 무한 복제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한 복제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NFT 기술을 이용하면 원본 파일에 소유자의 이름을 부여하여 소유권과 함께 작품의 가치가 파생된다. 하나의 디지털 이미지 작품이 거래되면 소유권의 이전은 물론 작품의 거래 이력이 낱낱이 명기되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로의 대체가 불가능(non-fungible)’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진품성의 증명이 작품의 신뢰도를 높이게 되고 따라서 금전적 가치가 발생하게 된다.

4) 이 문제를 다룬 필자의 글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윤진섭, ‘현실 혹은 가상? 소셜 네트 워킹(Social Networking)과 미디어 아트의 확장-최근의 페이스북(facebook) 활동을 중심으로’, <유럽문화예술학회 논문집>, 2010

윤진섭, ‘소셜네트워크와 대안적 사회교육의 가능성-나의 얼책(facebook) 활동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유럽문화예술학회 논문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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