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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태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제안들

윤진섭



자연과 생태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제안들      



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2021년 10월 15일, 전남 여수시에 위치한 장도 예술섬에서 조용하면서도 알찬 미술축제가 벌어졌다. 나지막한 섬의 정상에 자리잡은 GS칼텍스 예울마루_장도전시관에서 열린 [2021블루아트페스타]전(2021.10.15.-10.19)이 그것이다. 주제를 “후빙기의 섬 : 생물감시(Island of Postglacial Stage : Biosurveillance)”라고 붙였다. 아마도 2년 가까이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염두에 두고 붙인 제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태계가 교란될 정도로 자연재해의 파고가 높은 요즈음,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음직한 시의적절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행사는 현대미술 작품 전시를 비롯하여 커뮤니티 아트,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 전시감독을 맡은 문재선은 이 행사의 추진배경에 대해 “전남지역의 특수한 문화적 자원을 적극 활용한 지역 현대미술의 확장을 도모하고, 유통, 보급, 그리고 네트워킹의 새로운 거점을 형성하면서 지역예술의 위상 제고를 도모하고자 마련”하였다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사실 전남지역은 한반도의 서남쪽으로 넓게 자리잡은 다도해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일찍이 조선시대 후기에 정약종이 <자산어보>라는 저서를 남길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정약종은 흑산도에 유배를 당해 오랜 관찰과 연구로 필생의 역작을 남겼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전남의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흩어져 있어 풍부한 자원을 배경으로 ‘1도 1 뮤지엄 아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신안군 출신의 유명 예술인들을 기리기 위한 뮤지엄 건립 계획이 발표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안좌도 출신의 유명한 작가 수화 김환기를 비롯하여 자운도 출신의 박은선, 임자도의 조희룡 미술관 등등이 그것이다. 
 

Ⅱ. 
 전남지역은 갯벌이 넓은 관계로 소금 생산을 비롯하여 풍부한 어종과 수산물로 유명한 곳이다. 최근에 한국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세계유산위원회는 ‘지구상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중요한 서식지’로 충남 서천갯벌, 전북 고창갯벌, 전남 신안갯벌, 보성-순천갯벌 등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1)
    

 한반도 서남단의 끝에 1897년에 개항한 목포와 1949년에 개항한 여수가 있다. 근대사에서는 여순사건(1948)으로 유명한 곳, 그러나 지금은 그처럼 민족적 한이 서린 슬픔을 극복하고 문화예술의 거점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이번에 장도예술섬에서 열린 [2021블루아트페스타]전은 미래의 비전을 살피기 위한 문화예술행사의 일환으로 손색이 없다. 

 
Ⅲ. 
 이번 주제전에는 모두 8인의 전남출신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박신애, 박설미, 박성우, 박일정, 이기일, 정기현, 정서연, 정위상무가 그들이다. 그러나 기획자의 요청에 따라 이들 중 박설미, 박신애, 정기현, 정서연의 작업이 지닌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남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한 박설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소재한  마란고니 스쿨(Instituto Marangoni School)에서 패션, 예술과 디자인 코스 (Fashion, Art & Design Course) 패션 과정을 수학하였으나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사진전문화랑인 갤러리 나우에서 개인전을 가진 박설미는 <바다, 그너머>(도서출판 하얀나무, 2018)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박설미는 사진을 통해 순수한 기억을 소환해낸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기억 속의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바다를 대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추억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그러나 정작 사진에 나타난 이미지는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푸른색의 단색조에 기하학적 추상의 형상을 띤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치 바다의 파도와 포말을 순수한 기하학적 요소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듯이 단색조의 섬세한 계조(gradation)가 화면을 덮고 있다. 그에 이르면 사진은 더 이상 재현이 아니며, 내밀한 마음의 정서를 표현하는 매체이다. 

 박신애의 <꽈리 이야기>는 어머니의 뱃 속에 있는 아기를 모티브로 만든 조각작품이다. 스텐레스스틸 판을 투각기법을 사용, 정교하게 오려낸 꽈리의 형태가 조형적으로 돋보인다. 박신애는 또한 직육면체의 대리석 안쪽을 거칠게 파 들어가 기하학적 구조를 드러낸 <나무이야기> 연작을 동시에 출품했는데, 이 연작은 앞에서 언급한 <꽈리 이야기>가 지닌 상징적 형상성과는 달리 순수한 기하학적 미니멀 추상이라는 점에서 서로 상반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꽈리 이야기>가 작품 자체 내에 재현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나무 이야기>는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로의 환원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이 네 작가들 중에서 이번 주제에 가장 잘 부합되는 작가는 아마도 정기현일 것이다. 그는 오브제와 설치작업을 통해 생태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기현은 살아있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수조와 숲이나 야외에서 채집한 각종 씨앗과 열매들, 과학실험실용 유리관 속에 든 다양한 액체들의 병렬 전시를 통해 생태 위기의 문제를 실물로 제시한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물이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이유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물을 통해 “자연현상 너머에서 벌어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탐구하고 궁극적으로 자기발전을 통해 아름다은 삶의 방식을 추구”(작가노트)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서연은 ‘꿈과 일상’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꿈과 일상의 사이, 문짝과 문짝의 사이(between) 등등 두 개의 사물이나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매개하는 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가령 정서연은 이불을 그리는데, 그 이불이란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사물이고, 그러한 사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꿈과 상상이 살아있는 곳이다. 작가는 그 상상의 세계에 거주하 는 주민으로서 이불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다. 

 이불이 접혀 만들어진 공간은 문을 닮았다. 정서연은 그것을 가리켜 ‘문(gate)’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말한다. ‘gate’는 자신의 동심 혹은 현실도피요, 즐거운 상상의 공간이라고. 



Ⅳ.
 이번 행사는 이처럼 다양한 세계를 지닌 작가들이 참여함으로써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이들의 작품세계가 지닌 함의(含意)는 매우 중층적이고 다면적이어서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더욱 풍성한 시각적 체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예술작품이 지닌 신비스러운 힘은 그것이 작가의 작업실을 떠나 전시장에 놓일 때 더욱 큰 진가를 발휘한다. 관객들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을 보고 공감을 하게 되며, 그러한 공감을 글로 쓰거나 아니면 구전을 통해 주변에 전파하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재해석된 원작품은 더욱 큰 의미와 파장을 지니게 되며, 그것들은 어떤 형태로는 사회를 바꿔놓는 촉매가 된다. 특히 요즘처럼 유튜브를 비롯하여 각종 SNS 매체가 발달한 문명적 상황에서는 관객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이번 전시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생태의 문제는 이제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의제(agenda)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배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40년 전만 해도 생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생수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였다. 수질오염은 대기오염에 못지않게 중요한 환경적 의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최근에 일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적 차원의 관심과 움직임은 모두 병든 지구를 살리기 위한 처방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 역시 그 의의가 더욱 중차대하다 하겠다.  


1)  한겨레신문, 2021년 7월 26일자, 노형석 기자

<[2021블루아트페스타]전 도록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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