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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과 제언

윤진섭



수묵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과 제언



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전남의 예향으로 알려진 목포와 진도 일원에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났다. 2017년, [전남국제수묵프레비엔날레](10.13-11.12)가 목포 문화예술회관에서 역사적인 출범을 알린 이래,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지난 5년에 걸쳐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수묵 교류의 장’을 표방하며 성장해 왔다. 1) 

 그러나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것은 그 이듬해인 2018년에 들어서 였다. 1년간의 실험기인 ‘프레(pre)’의 접두어를 떼고 본격적인 ‘수묵비엔날레’의 출범을 알리게 된 것이다. 

 제1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2018. 9. 1-10. 31/총감독 : 김상철)는 “오늘의 수묵-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라는 주제로 목포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갓바위문화타운과 진도 운림산방 일원을 중심으로 열렸다. 이 행사는 2개의 역점사업을 표방했는데, 목포는 ‘현대수묵의 재창조’, 진도는 ‘전통수묵의 재발견’이었다. 

 이건수가 총감독을 맡은 제2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오채찬란 모노크롬’을 주제로 원래 2020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Covid19)’의 영향으로 인해 1년이 연기돼 2021년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목포와 진도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렇다면 전라남도가 왜 유독 ‘수묵(水墨/Sumuk)’을 거론하며 비엔날레라는 국제행사를 계획하게 되었을까? 그 까닭은 뿌리 깊은 역사성 때문이다. 목포시의 홈페이지에는 2018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홍보를 위한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전라남도는 대한민국 남종화의 화맥이 시작된 곳이자 수묵화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온 고장입니다. 공재 윤두서, 소치 허련, 남농 허건 등 수묵화 거장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수묵화를 널리 알리고, 세계의 문화컨텐츠로 키워나가려 합니다.”

 말하자면 공재 윤두서, 소치 허련, 의재 허백년, 남농 허건으로 대표되는 남종화의 화맥을 오늘에 되살려 스러져가는 수묵화의 전통을 되살리고 이의 세계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라남도는 수묵비엔날레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열린 축제’로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개방성을 드높이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Ⅱ.
 이상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볼 때, 전남이 수묵비엔날레를 통해 도모하고자 하는 목표를 뚜렷이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수묵의 세계화’이다. 수묵을 세계적인 ‘문화 컨텐츠’로 육성하여 현재 세계를 휩쓸고 있는 BTS 등의 K-POP과 같은 한류의 한 아이템으로 성장시켜 가자는 것이 아닐까?  

 지난 2000년 이후 ‘단색화(Dansaekhwa)’의 세계화 과정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수묵의 세계화’에 즈음하여 우려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우려는 무엇보다도 흔히 관(官) 주도의 정책이 지니기 쉬운 경직성과 구호 내지는 성과 위주의 시행이 지닌 한계에 기인한다. 즉, 무릇 문화와 예술은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동감 있게 전개돼 나갈 때 그 실효가 있는 것이지, 관에서 제시한 목표에 맞춰 일정한 틀에 갇힐 때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성은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만 하면 비엔날레와 같은 모멘트가 문화예술의 어떤 특정한 분야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1995년에 출범한 광주비엔날레가 25년의 성상을 거치면서 세계 5대 비엔날레의 서열에 들게 된 사례를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는 수많은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 미술 담론의 생산기지이자 실험 미술의 산실로 성장해 왔다. 국제 미술계 현장에서 광주비엔날레가 지닌 인지도와 문화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다. 일반적인 대중예술이나 민속 축제가 아니라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미술에 기반을 둔 비엔날레가 그처럼 높은 인지도와 가치를 지니게 된 이면에는 광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고자 애쓴 광주시민들의 노력과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라남도가 세계적 문화 컨텐츠로 육성하고자 하는 수묵비엔날레의 경우는 과연 어떠한가?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낮은 인지도이다. 이제 탄생한 지 5년밖에 안 된 신생 비엔날레인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국제미술계에서 비교적 성공한 편인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에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보이고 있다. 2)

 그러나 수묵비엔날레 측은 신생비엔날레의 한계인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외전을 모색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2018년에 홍콩과 상하이에서 개최한 [수묵, 동방수묵의 꿈(水墨, 東方水墨之夢)]전이다. 2018년 5월 19일부터 6월 16일까지 주상하이한국문화원,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주홍콩한국문화원에서 각각 열린 이 전시회에 한국의 중견과 중진, 원로들을 망라한 한국화 작가들 3) 이 대거 초청됐다.  

 “수묵이 아시아를 하나로 잇는 공통의 문화이자 예술언어로 다시 작동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4)  홍콩, 상하이 해외 순회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전시가 지닌 의의는 수묵의 발상지인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으로 대변되는 동아시아에서 수묵화의 의의를 현대적인 맥락에서 재발견하고 이의 세계적 전파를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 있다. 비록 갈 길은 멀지만 ‘먼 길도 첫 걸음부터’라는 심정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1998년에 창설된 중국의 심천수묵화비엔날레(深玔國際水墨畵雙年展)에 이어 동아시아권에서 두 번째로 창설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이제 원대한 꿈을 가지고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Ⅲ.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수묵(水墨/Sumuk)’을 국제화할 것인가?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흔히 수묵의 번역어인 영어의 ‘ink’를 ‘Sumuk’으로 부르는 일인데,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초기부터 ‘Sumuk Biennale’로 명칭을 표기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신적 산물인 예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있어서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를 때, 노랑머리의 서양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청중들이 인종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혼연일체가 돼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입증한다. 미술에서 보자면 단색화의 경우, 우리 스스로 ‘모노크롬’이라고 불렀을 때 세계의 미술인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Dansaekhwa’라는 고유 명사를 쓴 이후 독자성을 인정하게 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처럼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어느 특정한 문화권의 우산 아래, 즉 음지에 있을 때 보다 독자성을 가지고 햇볕 아래 환하게 노출될 때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서 세계 각 나라의 문화예술이 한 화단(花壇)에 모여 각기 독자적인 자태를 뽐낼 때 세계는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장차 ‘수묵’이란 독자적인 꽃을 세계 화단(畫壇)에 심어야 할 줄 믿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엔날레 본부 안에 수묵에 관한 세계적인 담론기지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아니, 너무 회자돼 이젠 식상해버린 ‘세계적’이란 말은 빼도록 하자. 그냥 담론기지 역할을 할 센터, 즉 수묵에 관한 문헌의 집합장 격인 도서관 혹은 문헌관을 갖추고 그에 걸맞는 이론가들을 불러모아 연구를 하게 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10여 개에 달하는 국내의 대부분 비엔날레들이 생산성이 결여된 채 공회전만 거듭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 담론의 부재에 있다. 담론이 세계와 소통하는 소중한 매체라는 신념을 가지고 수묵이론가의 양성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아울러 차기 비엔날레부터는 이름에서 ‘국제(International)’라는 용어를 뺄 것을 제안한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외국의 유명한 비엔날레들과 국내의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에서 보듯이, 세계적인 추세는 ‘국제’를 강조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전남수묵비엔날레(Jeonnam Sumuk Biennale)’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수묵과 일상성이다. 수묵은 비엔날레만을 위한 수묵이 돼서는 안 되고 생활 속에서 실천돼야 한다. 이의 대표적인 경우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파리동양미술학교이다. 고암은 1964년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르누시미술관 안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해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사군자 등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문화 전파에 힘쓴 선구적인 교육자였다. 

 이처럼 문화예술의 전파는 구호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생활 속의 잔잔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질 때 장기적으로 보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국내외 홍보를 위한 홍보대사 위촉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 속에서 수묵의 확산을 도모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은 22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다문화 국가인데, 이들을 위한 수묵화교실을 상시 개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뉴욕이나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서구권 대도시에 수묵화교실을 개설, 수묵의 실질적인 전파에 힘쓰는 동시에 수묵비엔날레를 홍보한다면 시너지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Ⅳ. 
 수묵의 매제는 물이다. 물이 있어야 먹이 풀린다. 흔히 담묵(淡墨)이니 농묵(濃墨), 파묵(破墨) 등등 수묵과 관련된 용어는 모두 물(水)이 매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묵의 중심이 된 동양의 문화는 기름(油)이 매재인 서양화, 곧 유화(油畫)가 중심이 되는 서양의 문화와 대비된다. ‘물과 기름이 겉돌 듯이’ 동양과 서양은 이질적인 문화적 속성 탓에 서로 경원하거나 갈등을 겪어왔다. 서세동점(西勢東占)은 르네상스 이후 힘을 키운 서양의 세력이 동양을 점령한 역사적 현상을 가리킨다. 대략 19세기 초반 중국과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아편전쟁 이후이다. 동양에는 그 트라우마가 지울 수 없는 상흔처럼 남아있다. 견강부회일는지도 모르겠지만, 비엔날레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어 대부분의 아시아권 비엔날레들은 지금도 서양을 우대하고 같은 아시아를 홀대하는(존서비아(尊西卑亞) : 필자의 용어) 습성이 있다. 장차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기색이 농후하지만 아시아권의 비엔날레 초기인 20여 년 전만 해도 심했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주체성이 뚜렷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커지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커지면서 대세가 서서히 바뀌어 가는 중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대변되는 팬데믹 상황은 커다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나는 늘 국제관계에서의 평행관계를 주장해 왔다. 이제까지 높은 산으로 인식돼 온 서양의 산을 허물어 낮은 골짜기(동양)를 메운 상태, 즉 평탄작업을 거친 이후에야 진정한 의미의 동서간 대화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래야 세계라는 화단(花壇)에 백 가지 꽃이 핀다. 그러나 꽃을 속성 재배하면 자연스런 향기를 맡기 어렵듯이, 서둘러서 인위적으로 급조된 비엔날레에는 인간적인 내음이 적다. 비엔날레가 성공하려면 관(官)보다는 밑에서부터 서서히 불길이 타올라야 하는 이유이다. 그 불쏘시개 역할을 비엔날레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심포지엄 발제문, 2021>

1)  목포 문화예술회관과 노적봉예술공원 미술관을 비롯하여 진도의 남도전통미술관 등 3개 권역과 8개 전시공간에서 11개국 232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운데 수묵의 실험성과 확장가능성을 타진하는 전남수묵프레비엔날레가 열린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수묵 교류의 장인 이 비엔날레의 특별전에는 ‘수묵의 실험성과 확장가능성’을 주제로 국내외 13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2017년 10월 13일자 연합뉴스(손상원 기자) 

2)  전남수묵비엔날레 측이 적극적인 홍보의 일환으로 벌인 [상해 국제전통예술초청전]에의 참가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상해한인신문 2021년 6월 18일자 기사에 따르면 6월 10일부터 7월 11일까지 상해예술품박물관에서 열린 동 전시회에 참가, “‘남도 수묵의 미’를 주제로 남도 수묵작품을 홍보, 전시하고 있다. ‘예유심생(藝由心生)-예술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라는 주제로 상해예술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에는 전라남도를 비롯한 세계 24개국 150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자국의 대표 전통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비엔날레 사무국은 수묵화의 본고장인 중국 상해 현지에서 ‘남도 수묵의 미’를 알리기 위해 전남에서 활동하는 작가 14명을 비엔날레 개최 시군의 추천 등을 통해 선발했다. 출품작은 전통수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회화, 압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로 이뤄졌다.” 

3) 초대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대열, 김억, 김선두, 김선형, 김천일, 박문종, 박성우, 박종갑, 박태후, 박항환, 송수련, 신하순, 오숙환, 이인, 이구용, 이기영, 이민주, 이이남, 이창희, 이철주, 임만혁, 장현주, 정종해, 정하경, 조병연, 조환, 하성흡, 하철경, 허진, 홍순주 

4)  상해한인신문 2018년 5월 16일자 기사 중에서. 그러나 비엔날레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해외 홍보는 홍콩과 상하이 정도에 국한되었는 바, 그것도 한국문화원이란 장소적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비엔날레 측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체 홍보가 아직 유럽이나 미주를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8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멕시코 대사, 주광주중국 총영사 등 11개국 대사부부 등등 주한외교사절단 초청행사” 등 간접홍보에 그친 경우를 들 수 있다. 핸드메이커 최상혁 기자. 2018년 8월 2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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