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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한국 목판화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시도

윤진섭



선택과 집중, 한국 목판화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시도




윤진섭 미술평론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각인刻印-한국근현대목판화100년]전은 공립미술관이 주최하는 전시에 걸맞게 목판화의 역사적 전개에 초점을 맞춘 보기 드문 규모의 큰 전시다. 이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은 목판화와 관련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와 각 시대별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목판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는 데 있다. 이는 이 전시를 관람한 관객들이 남긴 다수의 블로그 글에서도 확인되는데, 사이버상에 나타난 감상 후기들을 종합할 때 가장 두드러진 인상은, 주전시실에 걸린 대표작가 작품들의 압도적인 크기와 목판기법의 다양성 등등으로 요약된다. 

 제1전시실의 김억, 정비파, 류연복, 안정민, 김준권, 유대수와 제3전시실의 강경구, 정원철, 이윤엽, 서상환, 주정이, 윤여걸 등 12명은 한국 목판화계의 중진 내지는 원로작가들로서 미술계에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말하자면 평생을 목판화에 몰입해 각자 독자적인 일가를 이룬 작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시를 본 관객들이 작품을 보며 느낀 감동을 블로그에 적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작품에서 느끼는 작가의 독특한 개성과 함께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 및 다양한 기법과 설치방식에서 오는 강렬한 인상에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즉, 목판화 하면 곧 책의 표지화나 삽화를 연상할 만큼 미미하다는 선입견을 지닌 대중에게 이처럼 큰 규모의 작품들이 준 충격은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폭넓은 문화적 지평에서 볼 때, 목판화의 중흥은 목판화에 대한 대중의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전시처럼 작가의 혼과 열정이 담긴 대작들이 대중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낼 때 목판화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 충격은 단발에 그쳐서는 안 되고 목판화와 관련된 개인전이나 그룹전, 혹은 이번처럼 공립미술관에서 여는 기획전을 통해 자주 촉발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국내외 학술행사가 논문집 발간과 함께 빈번히 이루어져 목판화에 대한 풍성한 담론이 창출돼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중의 목판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게 되며, 목판화는 장차 단색화처럼 한국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단색화를 비롯하여 한지작업, 전위미술, 자연미술과 함께 장차 목판화가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게 되리라고 본다. 그러한 전망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 전시의 안내책자에 실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눈여겨 본다. 다소 길지만 인용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세기를 온몸으로 거쳐 온 중진, 원로작가들이 오랜 시간 인생을 걸고 도전한 작업을 바탕으로 기획했다. 현대미술과 화단 중심부로부터 소외된 장르인 목판화에 수십 년 이상 천착해 온 작가들이 남긴 결과물이다. 60대 중진작가의 초대형 목판화와 70대 후반에 이른 원로작가의 밀도높은 소형 목판화가 상호 조응하는 콜라보 전시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이번 전시의 담당 큐레이터인 김재환과 협력해 전시를 도출한 전시감독 김진하의 목판화에 대한 오랜 경륜과 연구에 따른 전문가적 식견을 주목한다. 사실 이번 전시는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6년 [한국현대목판화 1970-2006 : 木印千江之曲]전에 가 닿는다. 

 그 사이에 여러 굵직한 목판화 관련 전시들이 있었다. 2007년에 제비울미술관에서 열린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목판화, 1883-2007-나무거울]전을 비롯하여 [2020년 광주항쟁 40주년 기념 <1980년대 목판화-항쟁의 기억, 저항의 기록>]전, [신비로운 블록버스터 판화의 세계 나무, 그림이 되다 LAND • HUMAN • LIFE]전(2021, 예술의 전당 서예관) 등등이 그것이다.  

  지난 15년간에 걸쳐 김진하가 기획한 이 일련의 전시들이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한국 목판화 전시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판화에 관한 한, 1980년대 중반 한강미술관이 기획한 일련의 목판화 기획전들이 그 초석이 됐는데, 당시 한강미술관이 표방한 ‘형상미술’은 이념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민중미술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목판화와 연관시켜 볼 때, 김진하, 이섭, 이상호 등이 직접 포스터의 판각을 주도한 한강미술관은 80년대 중후반에 걸쳐 [한강목판화전], [뜨거운 눈빛-한국의 목판화]전(1989. 11. 6-12. 8) 등등을 열어 목판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렇다면 경남도립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취한 전시공학은 과연 무엇인가? 특히 ‘한국근현대목판화100년전’이라는 타이틀과 연관시켜 볼 때, 다소 균형이 특정한 경향으로 기울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전시는 기획자의 관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는 것이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다른 입장과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근현대목판화100년’이라고 시기를 못박았을 때, 해당 기간의 범주에 드는 목판화의 다양한 경향을 어떻게 고르게 반영하여 보여주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번 전시기획의 초점을 연대기적 서술에 의한, 즉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추이에 맞추지 않고 12인의 특정한 대표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부각시키는 데 맞추다 보니까 전체 전시의 흐름으로 볼 때 민중작가들에 비해 소위 모더니즘 작가들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빚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기획자의 관점이라면 그 역시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만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렇다면 이 전시가 지닌 의의라면 과연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기획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내린 목판화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그 적용이다. 즉 형평성을 유지한 연대기적 서술에 연연하지 않고 동시대의 목판화에 대한 확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장 활발하게 작업을 펼쳐왔다고 판단되는 12명의 작가를 선정, 집중적으로 소개한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다. 즉, 많은 작가들을 연대순에 따라 나열하지 않고 소수 정예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강조하여 부각시키는 전시공학을 취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1전시실에는 국토와 산수 등 소위 ‘땅’의 문제를 다룬 김억, 정비파, 류연복, 안정민, 김준권, 유대수 등을 배치하였으며, 제3전시실에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강경구, 정원철, 이윤엽, 서상환, 주정이, 윤여걸 등 총 12인의 작가들을 배치하였다. 지면 관계상 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나 서술은 생략하거니와, 아무튼 작품들의 규모가 크고 모두 대표작들로 꾸며져 관객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였다고 본다. 

 사실, 이 전시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능화판을 비롯하여 목판화가 잡지나 각종 서적의 표지화나 신문의 삽화로 쓰인 전거들을 시기별로 진열한 아카이브 섹션이다. 이 섹션을 통해 관객들은 한국 목판화의 역사가 매우 뿌리가 깊고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서적과 목판화의 관계는 민중미술이 대두된 80년대 이후에 긴밀하게 엮어졌는데, 이 시기에 들어서 책의 표지화를 비롯하여 삽화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1958년 한국판화가협회가 결성된 이후, 한국의 목판화는 1960년대 최영림으로 대변되는 토속적 정서의 시기를, 1970년대 송번수, 서승원, 윤명로, 김상구 등으로 대변되는 형식실험과 모더니즘의 시기를, 1980년대는 오윤 등 민중미술의 대두에 따른 민중목판화의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대학에 판화과가 생긴 이후에 판화 인구는 많이 늘었지만 날이 갈수록 위축되는 추세에 있다. 흔히 말하길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으면 마트에서 판화작품을 구입하는 광경을 흔히 본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의 환경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목판화에 대한 관심이 불었으면 한다. 

 판화는 복수성으로 인해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컬렉션으로서는 손색이 없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특화된 소장품으로 목판화를 선택하는 문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여러 판화 장르 중에서도 특히 목판화는 제작 시 목판과 조각도, 그리고 조각도를 쥔 손의 힘의 강약에 따라 재료와 신체 사이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분야이다. 첨단의 디지털기기들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로 ‘몸’의 현존성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목판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트인컬처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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