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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대 / 단색에서 다색으로의 변화

윤진섭




단색에서 다색으로의 변화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김형대의 경력을 살펴보면 1960년부터 61년까지 <벽> 동인 전시에 세 번 참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한국현대미술사에서 ‘탈(脫)’ 전시장을 도모하여 한 획을 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이 <벽>전(1960. 10. 1-15)은 서울미대 출신의 작가들 1) 이 중심이 된 전시였는데, 경기여고에서 법원(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정동고개의 덕수궁 돌담 벽에 약 40여 점의 대형 작품들이 걸렸다. 
 이 혁신적인 전시가 개막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서울미대 출신의 작가들 2) 이 모여 결성한 <60년미협>전이 덕수궁 북쪽 담에서 열렸는데, 수백 호에서 1천 호에 이르는 대작들이 출품되었다. 3)

 1936년 생인 김형대의 나이를 고려할 때, <벽> 동인들과 이들보다 약간 위의 학번인 <60년미협>의 회원들은 다 같이 1957년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4) 회원들의 후배들이었다. 연령적으로 볼 때, <현대미술가협회>의 회원들보다 5-7년 정도 후배인 <벽>전 회원들은 그 당시 화단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국전에 저항, 덕수궁 돌담 벽에 작품을 내걸어 과감한 전위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벽> 동인과 <60년미협>의 이처럼 과감한 행동은 그들보다 선배인 <현대미술가협회>의 반(反) 국전적 태도와 같은 선상에 선 것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사 속에서 초기 전위미술 세력의 등장에 해당한다.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이 구상 중심의 구태의연한 화풍에 반발하여 비정형(앵포르멜) 화풍을 시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순수 추상회화의 토착화를 시도한 이들은 그 후 약 10여 년간 비정형 회화를 지속하였다. 비정형 회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현대미술가협회>의 위상은 비정형 회화 출범의 주도권과 관련된다. <벽> 동인과 <60년미협>은 다 같이 국전에 저항하면서 투쟁했지만, 선배들의 미학에 도전,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내세우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공헌은 전시장을 벗어난 일상공간에서 직접 대중을 상대로 작품을 전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전만이 작가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당시의 화단 상황을 살펴볼 때, 제도에 대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전위적인 태도를 띤 것이었다.


Ⅱ.
 김형대의 1961년 작인 <환원 B>(162 x 112cm, oil on canvas)는 제10회 국전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당시에는 대통령이란 직제가 없었으니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김형대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그가 상당히 이른 시기에 단색화를 둘러싼 실험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붉은 색조로 이루어진 <환원 B>를 필두로 김형대는 <작품>, <씨족>, <화음>, <생성>, <생성시대> 연작(이상, 1963-68)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단색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나갔다. 특히 1963년 무렵의 <작품> 연작에서 김형대는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찐득하게 갠 유성물감을 횡으로 길게 반복적으로 그어 물질감이 두드러지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물론 약 5년간에 걸친 이 시기의 작품들이 다 단색의 경향을 띤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단색화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 중에서 특히 1963년에 제작한 <작품>은 어떤 사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일체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10년 뒤인 7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게 되는 단색화의 선구적 맹아를 보여준다. 그림을 보면 걸쭉한 유성물감의 물질감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유성물감을 나이프와 붓으로 밀고 나갈 때의 반복적인 행위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김형대는 그 이후에 전개된 작품들에서는 곡선과 직선이 결합된 형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한국의 전통가옥에 대한 탐구에 기인한 듯 싶다. 그의 발언에 의하면 절의 처마에서 보이는 공포(拱抱), 특히 그 가운데서도 소의 혀를 닮은 쇠서형(牛舌形) 목조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으며, 이를 작품제작에 반영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리듬과 절단, 반복과 교착에서 스며 나오는 전통미감”(김형대/작업노트)의 현재화를 화두로 작업을 펼쳐나간 것인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연상시킴으로써, 그보다 앞선 <작품>(1963)이 성취한 비표상적 세계에서 벗어나 표상적 세계로 다시 후퇴하는 것이다. 


Ⅲ.
 이 짧은 글에서 무려 60년에 걸친 김형대 회화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김형대의 회화는 색의 측면에서는 단색과 다색 사이를, 형태의 측면에서는 유기적 형태에서 직선을 위주로 한 기하학적 형태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한 중심적인 개념은 행위의 반복이다. 

 초기작이나 중기, 그리고 후기를 거쳐 근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핵심은 전기 단색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촉각성이다. 그것은 김형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 60년대의 소위 유기적인 형태가 빚은, 붓이나 나이프의 자취가 남긴 물질감이나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반복적인 빗질 행위의 잔여물인, 캔버스 표면에 군데군데 뭉쳐 있는 특유의 텍스처들이 대표적이다(후광 연작).  

 미술에서 이른바 근대성(modernity)의 가장 명확한 지표인 평면성에 대한 인식이 한창 비정형 회화가 무르익어가던 60년대 초반에 김형대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은 일견 경이에 가깝다. 그는 어떤 계기로 그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우연일까? 내가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형대가 비표상적 세계에서 다시 표상적 세계로 후퇴 5) 하게 된 까닭도 어쩌면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6) 이미지적 요소가 완전히 사상(捨象)되는 가운데 영(zero)의 지점에 도달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완전히 순수한 캔버스의 평면에 도달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근대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근대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 1967년 무렵이니까 김형대의 인식은 그에 비해 다소 빠르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김형대는 본격적으로 평면성의 문제를 추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과정을 여기서 소상히 살피는 것은 지면 관계상 어렵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하거니와, 근작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단색에서 다색으로의 복귀로 요약할 수 있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은 은은하여 무지개떡을 연상시킨다. 

 캔버스 평면을 횡으로 가른 띠는 전에 비해 두꺼워졌으며, 빗금의 잔여물들은 물질감이 약해져 더욱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화면분할의 징후가 뚜렷이 감지되는 것이 근래의 변화다. 그것은 과연 다음에 다가올 어떤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가?  


1차 출처: 미술과 비평,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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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여작가는 다음과 같다. 김익수,김정현, 김형대, 박병욱, 박상은,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등. 

2) 1960년 10월 5일에 개막한 이 전시의 참여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대우, 유영렬, 김봉태, 최관도, 이주영, 김응찬, 박재곤, 김기동, 손찬성, 윤명로, 김종학, 송대현 등.

3) 윤진섭,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재원사, 2000, 44-45쪽.  

4) 참여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서봉, 김영환, 김창열, 김청관, 김충선, 나병재, 이명의, 이양로, 이수헌, 박서보, 안재후, 장성순, 전상수, 정건모, 조동훈, 하인두 등. 

5)  내가 여기서 굳이 이 말을 쓴 것은 선형적 구조를 지닌 서구 미적 근대성의 관점에 기댄 것이다.  

6)  김형대가 완전히 백색의 단색화에 도달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백의민족>(162 x 130cm, oil on canvas)은 색에서는 단색의 평면성을 성취하였지만, 형태는 전통적인 공포 형식에 기반을 둔 유기적인 패턴에 머물고 있다. 이는 과도기적인 단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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