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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희/삶의 환희, 그리고 기억의 소환

윤진섭



삶의 환희, 그리고 기억의 소환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오명희는 대작을 주로 제작하는 작가이다. 화면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드물긴 하지만 똑같은 크기의 캔버스를 3-5개 붙여 1천 호에 육박하는 작품들도 있다. 그래서 그림이 매우 스펙타클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따뜻한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들이 즐비한 정원을 걸을 때의 그 아득하면서도 화사한 느낌. 여기저기 나무들 사이로 나비가 날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숲을 거닐 때, 말할 수 없는 환희가 가슴에 밀려오지 않겠는가. 

 이렇듯 오명희는 봄날의 애틋한 정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작가다. 그러자니 자연스럽게 싱그러운 봄날을 소재로 즐겨 다룬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화창한 대낮,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들판을 어디선가 날아온 꽃무늬 스카프가 한들거리며 휘날린다. 벚꽃과 나비, 새에 화려한 스카프가 더해져 오명희의 화면은 더욱 화려하고 풍성해진다.  
 그런데 대체 스카프란 무엇인가? 왜 그것이 그토록 오래, 그리고 빈번히 등장하여 오명희하면 곧 ‘스카프’의 작가라고 할 만큼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 것일까? 대체 그 연유는 무엇일까? 

 오명희의 그림에서 스카프가 모티브로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 작업실의 창밖을 보니 어디선가 검정색 비닐봉지가 하나 날아와 휘날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는 아이들 셋을 기르며 어렵게 작품활동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마치 방황하는 비닐봉지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부터 오명희는 스카프를 다룰 때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모습으로 그렸다. 작가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곧 ‘자화상’을 의미하며 또한 ‘자유’를 뜻한다고 한다. 그 의미를 좀 더 부연하면 육아와 주부의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에 보다 열정적으로 투신하기 위한 일종의 정신적 결의 내지는 다짐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새가 들판을 거침없이 날듯이, 혹은 가볍고 화사한 스카프가 바람에 펄럭이듯이, 예술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십여 년 전, 오명희가 분채와 석채를 사용하여 그린 채색화를 접했을 때, 나는 그녀의 그림들에서 약간의 일본적인 느낌을 감지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진술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조부에서 부친에 이르는 일본과의 연관 때문에 ‘일본적인 것이 좋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마냥 깔끔하기만 한 일본적인 미감보다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한국의 토속적인 느낌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것이 오명희의 근작에 깔려 있는 미적 정서다.” 
2009년 개인전 서문 중에서
 
 그 일본적인 느낌이란 무엇인가? 천지가 밝아진 듯 화사하게 핀 벚꽃이 절정에 도달하여 한 순간 질 때의 그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애상감이 아니겠는가? 오명희는 봄날의 그 찬란한 절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절정의 순간을 가장 단순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일본의 하이쿠(俳句)처럼, 화면에 순간의 미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기에 회화적 형식을 빌어 그 감흥을 화면에 새기고자 한다. 


Ⅱ. 
 오명희는 매체나 재료면에서 확산을 꾀하는 작가에 속한다. 비록 동양화가 전공이지만 현재 그녀의 작품에서 동양화 고유의 특성을 찾기는 어렵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분채나 석채 등 채색화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작품의 형태에 따라 아크릴과 유화를 비롯하여 자개, 계란껍질, 금박, 은박, 동판,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3D 영상을 포함, 미디어아트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화면에 사진을 전사하는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영상과 함께 오명희의 작업이 일대 변신을 꾀한 전기(轉機)가 되었다. 

 그렇다면 영상의 내용이란 과연 무엇인가? 오명희는 2009년부터 3D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주소재인 스카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계절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가령,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야생화, 가을에는 갈대, 겨울에는 설중매가 등장하는 가운데 스카프가 허공을 나는 것이다.

4계절이 순환한 후 다시 봄이 찾아오는 것으로 ‘삶의 작은 찬가(A Little Song of Life)’라 이름 붙은 이 5부작은 끝난다. 
 그 다음은 ‘한 여름밤의 꿈(A Dream of One Summer Night)’이란 제목의 영상 작품인데, 이 작품은 새벽부터 밤까지 강원도 소재 알펜시아 휴양지의 야생화 꽃밭이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가운데 무지개가 뜨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어느 것이든 영상 작품은 허공을 나는 스카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작가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Ⅲ.
 오명희의 작업에서 또 하나 들 수 있는 특징은 이른바 오브제와 설치작업이다. 바로 이 점이 앞에서 그녀의 작품 경향을 확장형으로 특칭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오명희는 기성의 사물(found objet)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여 장인에게 맡기는 방식을 취한다. 가령 원형이나 사각 형태의 동으로 된 기물을 특수 제작하여 거기에 자개로 된 매화나 동판으로 만든 포도넝쿨을 부착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또는 전통적인 3층장의 모양을 똑같은 형태로 주문 제작한 후, 그 위에 옻칠을 하고 겉에는 벚꽃 형태의 자개를 붙였는데, 맨 윗칸에는 꽃밭에 스카프가 나는 장면이 나오는 작은 티브이 모니터가 장착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캔버스에 전사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작가가 유년시절에 본 적산가옥의 모습을 비롯하여 시댁의 역사적 기록물인 사진들 혹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근현대기의 잘 알려진 이미지들이다. 가령, 일제강점기에 여권을 위해 투쟁한 나혜석을 화면의 왼쪽에 배치하고 중앙에는 시어머니의 초상을, 그리고 오른쪽에 마릴린 먼로의 초상을 위치시킨 대형 작품은 얼핏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한두 작품에서만 엿보여 페미니즘이나 여권의 문제는 그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오명희는 그보다는 오히려 확대된 사진의 이미지들이 존재하는 화면을 가득 덮고 있는 자개로 된 능수버들이나 벚꽃의 선에 관심이 더 많다. 그녀는 정치보다는 그러한 기념사진들이 가져다 주는 촉촉한 회상의 느낌을 더욱 선호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의 이면에는 옛날 유년시절에 겪었던 적산가옥에 대한 향수가 깊이 깔려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모님의 생의 이력과 시부모님의 일제강점기의 생활이 스민 빛바랜 사진을 통해 작가의 기억이 오늘에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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