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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 변신의 이미지와 개인의 서사

윤진섭




변신의 이미지와 개인의 서사

윤진섭 | 미술평론가



 2차원 평면으로 이루어진 캔버스 공간은 신비스럽기 짝이 없다. 수많은 사람이 그림을 그려도 무한한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에 도전하는 작가가 바로 박정혁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무한한 상상력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작가 자신이 ‘위장’이라고 부른 ‘이미지들의 무작위적 조합’(박정혁)인 것이다. 

 얼마 전, 아터테인에서 열린 박정혁 초대전 <신화, 그 시대의 재현>전은 그 자신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세 번의 작품의 변화 중 맨 끝에 해당한다. 박정혁에 의하면 첫 번째는 아카데믹한 재현 기법에 의한 캔버스 작업의 시기였고(2002-2013), 두 번째는 너무 경직된 캔버스 작업이 싫어서 일종의 탈출구로 모색한 은박비닐(은색 PET필름) 작업(2012- )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이번에 시도한 유화작업으로 자기 안의 서사를 신화의 세계를 바탕으로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박정혁은 작품을 통해 가히 ‘이미지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상(像)에 대해 끊임없이 이미지의 언설을 쏟아놓는다. 거기에는 은유적인 형태로 모습을 갖춘 박정혁의 비판의식이 담겨있다. 그 비판의 화살은 과연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가? 사회인가, 아니면 개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가? 그 어느 편이 됐든 박정혁은 신화를 해석, 자신의 독자적인 서사로 충실히 이야기를 건다. ‘변신’은 그 서사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읽고 작품을 위한 영감을 얻은 그는 작품을 통해 메타버스를 비롯하여 증강현실과 아바타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 있어서 ‘진정한 변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박정혁이 “아는 것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한 이유이다. 그리하여 아는 것의 한계를 벗어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탐구는 박정혁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변신이란 무엇인가? 개인일 경우는 자아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는 욕망의 구현이다. 아니면 ‘--이 되기’에 대한 강렬한 희구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인터넷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 변신의 신화는 이제 전설 속의 이야기 정도를 넘어 그 자체가 신화화(神話化)하고 있다. 박정혁은 이러한 변혁의 진원지로 인간의 보편적 욕구인 식욕, 성욕, 권력욕 등등에 주목한다. 그는 전략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투사된 포르노그라피를 비롯하여 광고나 영화에서 상투화된 이미지들을 인터넷에서 수집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해 포박된 이미지들을 화면 위에 배열하고 조합한다. 박정혁의 시선이 이미지들을 끈질기게 따라가면서 스토리를 마치 그물을 짜듯 치밀하게 써내려 간다. 그의 그림을 서사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회화의 강점이 드러난다. 영화나 연극이 스토리의 흐름, 즉 시간성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예술의 매체라면, 회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오로지 공간성이다. 거기에서 시간은 한 순간 박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은 어렵다. 2009년에 지금은 고인이 된 김기덕 감독은 자신에겐 그림이 아주 어렵다고 내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영화는 흐름을 따라 그냥 찍으면 되는데 그림 공간은 해석이 퍽 어렵다는 게 요지였다. 

 순간이 정지돼 있는 그림에 어떻게 하면 서사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 정지된 순간이 어떻게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천일야화는 말 그대로 천 일 동안 쏟아낸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다. 천 일의 시간이 두툼한 소설책에 담겨 있다. 독자는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렇다면 회화는 어떠한가? 2차원 평면에 이야기를 집어넣자면 특수한 방법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레고리와 메타포는 평면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데 매우 적합한 형식으로 일찍이 고안되었다. 박정혁의 그림에 유난히 알레고리 효과가 시선을 끄는 이유이다.  

1차 게재: 아트인컬처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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