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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고 여기’를 향해 열린 해석학

윤진섭



 ‘지금 그리고 여기’를 향해 열린 해석학

윤진섭 | 미술평론가



드넓은 우주와 현실계를 오가는 화가가 있다면 믿겠는가? 실로 한만영이 그러하다. 그의 근작들은 화면의 깊이가 점차 엷어지는 가운데 우주와 이제 한창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계 사이의 거리를 바짝 좁혀놓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우주와 현실계라니? 게다가 거리가 좁혀진다니? 사실이 그렇다. 회화가 표상하는 상징계 안에 존재하는 우주. 한만영의 그림 속에서 그것은 대체로 푸른색으로 표상된다. 그 안에 공존하는 무수한 풍경들과 인물들, 그리고 실제의 존재물인 다양한 오브제들. 그리고 또 있다. 한만영이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파렛트로서의 캔버스. 이건 또 무슨 말인가?한만영은 최근 들어서 파렛트에서 물감을 섞거나 개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바로 그 캔버스를 파렛트로 삼는다. 캔버스의 아래 일정한 부분을 파렛트로 설정한 후 거기에서 필요한 물감을 개거나 섞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물질적 존재로서의 아크릴 물감 덩어리 역시 일종의 오브제로 캔버스에 남김은 물론, 그 안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그 물감에서 기인하고 또한 그것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1970년대 이후 명화를 차용해 그려 온 자신의 작업에서 개념적인 성격이 매우, 그리고 여전히 중요함을 암시하는 일종의 회화적 ‘장치’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한만영과, 그와 엇비슷한 나이의 세대가 지닌 미술사적 의의(意義)는 그림을 ‘사유’와 ‘개념적 논리’의 장(場)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사유는 대체로 70년대를 풍미한 ‘단색화’1)를 점유했으며, 개념적 논리는 ‘이벤트(event)’를 비롯하여 하이퍼리얼리즘, 개념미술, 오브제, 설치미술 등등 소위 70년대 다원주의(Pluralism)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술평론가 정병관이 일찍이 한만영을 가리켜 ‘구상세대의 선배화가로서 지성을 갖춘 화가’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 개념적 사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는 70년대의 한국 화단을 풍미한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미술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전근대적 의미의 ‘화가(환쟁이)’에서 근대적 의미의 ‘작가(artist)’로의 전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서양의 고전 명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하여 ‘자기화’하는 ‘인용(appropriation)’의 전략을 70년대 후반2)에 구사하기 시작한 한만영은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년에 걸쳐 오직 한 길을 걸으며 이 세계를 천착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연장으로써 이전보다 한층 더 심화된 세계를 보여줌은 물론, 다루는 세계의 진폭 또한 더욱 크고 넓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색채의 슬림화 현상을 들 수 있다. 가령 하늘 내지는 우주를 상징하는 푸른색 또는 회색이 점차 ‘영도(zero)’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3)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의 70년대 초기작들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그림들의 배경을 이루는 푸른색과 회색이 얼마나 진하고 강했는가를. 그러니까 색채는 그가 의식을 했든 안 했든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엷어졌으며, 동시에 물감은 거기에 맞춰 얇아지면서 점점 더 깔끔하고 섬세해진 것이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 시기의 시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한만영이 겪는 일상적 경험은 그 자체 작품의 소재와 모티브가 된다. 그는 외국을 포함,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따라서 여행이나 혹은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선택한 오브제들(found objet)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의 일부로 편입된다.

70년대의 명화 이미지의 차용 시기를 거쳐, 80년대 초반의 <시간의 복제> 연작에 이르러 비롯된 상자와 오브제의 등장은 이후 ‘오브제’와 이미지 간의 공존과 소외효과, 길항(拮抗)의 관계를 묻는 전략의 물꼬를 텄다. 기존의 비평에서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이 ‘소외효과와 길항’의 관계를 ‘환치(데페이즈망)'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한만영의 작품세계는 초현실주의나 극사실주의와는 별 관계가 없다. 세계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그보다는 오히려 주제나 소재의 고갈 이후에 명화의 차용(appropriation)이 관행적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추상과 구상 등 성격을 달리 하는 화면이 하나의 작품에 공존하는 현상 등등 80년대 이후의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이 깊다. 한만영의 작업을 미술사적 측면에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한만영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기존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서양 고전의 명화들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이 축소되거나(파이프를 문 반 고흐의 초상, 뭉크의 <절규>, 르네 마그리뜨의 모자 등등) 변형 및 각색이 이루어지는(마네의 <올랭피아>,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등등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휴대폰을 이용하여 직접 찍은 풍경과 꽃, 마릴린 먼로의 초상 등등을 섬세하면서도 깔끔하게 그린 그림에 포도, 대나무, 목욕하는 장면(혜원) 등등 이와는 이질적인 조선시대의 명화를 병치한 작품들도 있다.

그 어느 것이 됐든 붓자국을 남기지 않고 가능한 한 섬세하고 깔끔하게 그리되 사진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한만영 작업의 특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만영은 사진으로 대변되는 기술복제의 시대에 역으로 ‘그린다’는 의미의 회화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으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횡 행하는 세상에서 사물의 현존(오브제)을 통해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쓰고 버린 작은 향수병을 비롯하여 휴대폰의 부품, 목거리, 시계 부품, 장난감 등등은 한만영의 캔버스 안에서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을 떠다니고 있을 우주선의 작은 파편들처럼 부유한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언어들은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뭔가를 환기시키며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해석에 몸을 맡긴다. 가령, 마네의 <올랭피아> 속 벌거벗은 여인은 그 옆에 있는 ‘슈퍼맨’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그것은 기존의 해석에 대한 또 다른 해석에 대해 열려 있다.4) 따라서 한만영 작품의 해석자는 관객들이며, 관객일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작품 속의 이미지들 대부분과 그가 실물로 제시하는 사물(오브제)들은 관객들도 똑같이 사용하는 극히 대중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각자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각기 다른 사건들을 연상시키거나 혹은 소환한다. 그리고 사건들이나 기억들이 소환되는 시점이나 장소는 관객들이 그의 그림을 보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장소’(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her and now)일 것이므로 언제나 ‘현재적’일 수 밖에 없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만영은 여전히 이미지와 오브제를 다룬다. 그것들은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부재5)라는 트라우마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과 이미지들을 통해 끊임없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생전에 보지 못한 어머니가 그의 몸6)을 통해 들려주는 우주와 세상에 관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1) 공식적인 의미에서 70년대 한국 단색화(Dansaekhwa)의 효시를 이루는 이동엽의 <상황> 연작과 허황의 <가변의식>이 발표된 해는 1972년으로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였다. 이 두 작가는 한만영과 동세대이다. 이와 관련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윤진섭, <한국의 단색화>전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발행, 2012)을 참고할 것.

2) 한만영이 이러한 화풍을 처음으로 시도한 때는 1972년이다. 외국 패션잡지에서 고른 여자 모델의 얼굴을 4단의 피라미드형 상자 이미지 속에 똑같은 모습으로 묘사한 <무제(Untitled)>(193.9x130.3cm, 캔버스 위에 유채)가 그것이다. 한만영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하여 앵그르, 페르미어(Vermeer) 등등의 유명한 서양 고전명화 이미지들을 본격적으로 차용하여 그림을 그린 시기는 1977년이다. 그는 1977년에 서울화랑에서 열린 오산개교70주년기념 동문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작품을 출품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는 한만영에 대한 기존의 미술사적 평가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을 참고할 것. 윤진섭, <한국의 팝아트>, 에이엡에이, 2009. 무역센터 현대미술관 발행, <창작과 인용>전 도록, 보다 상새한 내용은 1992. (www.neolook.com,에서검색할 것)

3)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의 배경은 검정 기미가 짙은 진한 회색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은 극히 지엽적이다. 여기서는 전반적인 추세와 흐름을 지칭한 것이다.

4) 즉 마네의 <올랭피아>에 등장하는 여인이 창녀라는 기존의 미술사적 시각에 남성의 힘을 상징하는 수퍼맨의 등장과 연관시켜 또 다른 해석을 낳을 가능성 따위. 여기서 작가로서의 한만영은 감상이란 ‘사건’의 중재자 혹은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그는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이미지나 오브제를 통해서 단지 ‘힌트’만을 줄 뿐이다.

5) 한만영에 의하면, 자신은 아주 어렸을 적에 모친과 사별했기 때문에 기억 속에 어머니는 부재한다. 남이 들려준 어머니의 모습은 ‘조립되고 개념화된 형상’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은 모친을 주관화, 즉 나의 상으로 만들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상은 (타인으로부터) 주어진 ‘객관적인 것’(오브제)일 뿐이다. 그런 견지에서 한만영의 작품세계는 나의 것이 부재한 상태에서 주어진 객관적인 것, 조립된 것, 제시한 것들의 조합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관객참여형’의 회화, 즉 관객이 마무리 짓는 회화이다. 한만영, <나의 의식구조와 미학과 감성을 통해서 본 명화의 재해석>, 공간, 1979년 6월호 참조.

6) 이야기꾼으로서의 화가 혹은 작가의 몸. 그것은 불가의 ‘연기설’에서 뜻하는 어머니와 작가를 이어주는 끈이며, 그 끈은 작가의 몸을 통해 관객들과 연결되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주와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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