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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노마드]다시, 자연을 향하여

윤진섭


다시, 자연을 향하여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드디어 몽골에 왔다! 지난 9월 8일부터 23일까지 장장 2주간에 걸친 ‘글로벌 노마딕 아트 프로젝트(Global Nomadic Art Project/GNAP, 이하 ‘GNAP’로 표기)’에 참가한 나는 첫날의 기록을 이 문장으로 시작했다. 사실 불과 3년 전에 중국의 내몽고를 방문한 적이 있는 내게 몽골 풍경이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곳은 알타이 문명의 발상지가 아닌가? 

 어렸을 적 엉덩이에 난 몽고반점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이번 몽골 여행은 그러한 연유로 고향 방문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음식.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양을 비롯하여 염소 등 다양한 육류를 즐겼지만, 설사는커녕 마치 고향 음식을 먹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이 먼저 안다는 게 아닐까? 이런 느낌은 십수년 전 터키의 노천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Pamukale)에 갔을 때도 비슷했다. 관광을 마치고 저녁해가 어슴푸레해질 무렵 동네의 정자에 모인 터키 시골 할머니들에게서 얼핏 어렸을 적 고향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2001년 2월 6일, KBS 1TV는 8부작 대하 다큐멘터리 ‘몽골리안 루트’의 첫 방송을 시작했다. 이 다큐는 “1만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민족의 뿌리인 ‘몽골리안’의 이동과 확산 경로를 추적하고, 잊혀진 몽골리안 문명에 대한 영상적 복원을 시도”(경향신문)한 것으로 나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뿌리가 다름 아닌 알타이산맥이다. <알타이 인문연구>를 쓴 고(故) 박시인 교수에 의하면, 몽골리안 루트는 총 다섯 개로 전파됐는데, 거기에 속하는 지역이 터키, 남북미, 중국-한국-일본, 동유럽, 인도차이나반도 등등이다. 그렇다면 내가 폴란드의 한 도시에서 맛본 어떤 음식은 마치 우리의 얼큰한 찌개를 연상시켰는데, 그것의 원류가 혹시 몽골의 알타이는 아닐는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문화의 뿌리가 지닌 DNA의 강한 힘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Ⅱ.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번 물어보자. ‘몽골(Mogolia)’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 19’라고 하는, 예기치 못한 팬데믹 상태에 놓인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열엿새 동안 이어진 여행 기간 내내 이러한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몽골은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나라다. 시리도록 푸른 밤하늘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 마치 우산 밑에 있는 것처럼 하늘이 가깝게 다가왔다. 비가 갠 뒤 홀연히 산등성이에 걸린 무지개, 몽골인들이 한국을 가리켜 부르는 ‘솔롱고스(Solongos)’가 바로 이 무지개다. 
 이것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주마간산식으로 대륙을 훓어본 나의 소감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 반복되는 야트막한 구릉들, 그 위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양들과 그 주변에 점점이 흰색으로 빛나는 천막집들(Ger). 그런 인상을 뒤로 8개국 24명이 모인 GNAP의 몽골 일정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GNAP란 과연 무엇인가? 본격적인 GNAP 몽골 프로젝트의 소개에 앞서 이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GNAP의 연원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야투(野投)’1)란 이름의 단체가 결성돼 매년 사계절 워크숍을 실천에 옮겼는데, 이 노마드 정신이 국제적으로 확산된 것이 바로 ‘GNAP’인 것이다. GNAP는 2011년 ‘Yatoo-i’를 통해 국제적 네트워크를 확장한 뒤, 2013년 공주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제1회 국제자연미술기획자대회(13개국 19명 참가)에서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된 고승현2) 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이 본부이며 2014년 이후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 남아프리카, 이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독일, 프랑스, 리투아니아, 터키, 영국, 멕시코, 이탈리아, 몽골, 중국 등 16개국이 참여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각 참가국에서 독자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뒤 결과전을 현지에서 연 다음, 아카이브 자료를 공주의 자연미술센터와 공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국가별로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GNAP는 자연물과 자연환경을 이용한 자연미술 특유의 간단한 행위(performance)로 이루어진다. 행위 후에 남겨진 돌, 흙, 풀잎, 나무, 물 등등 자연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는데, 이것이 ‘자연미술(Jayeonmisul/Nature Art)’의 근본정신이다. 즉, 반(反)문명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연이 지닌 영성(靈性)을 회복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교감을 꾀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자연 속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날 때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노마드의 삶”3)을 구가하자는 것이다. 


Ⅲ.
 2022년 9월 8일 오전 12경,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시(市) 외곽에 있는 징기스칸 국제공항에 내리니 몽골의 작가 세 사람이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공항 문을 나서니 누런 초원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완만한 곡선이 인상적이었다. 몽골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USV 차량 두 대에 분승하여 고승현, 고요한, 이종협, 곽문상, 필자 등 우리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로 향했다. 약 30분 정도 달리니 저만치 울란바토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희뿌연 먼지 때문인지 시내는 칙칙해 보였는데, 현대식 아파트가 즐비한 시가(市街)가 인상적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의 한편으로는 목초지가 펼쳐져 있고 털이 복슬복슬한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이 양 떼는 약 2주간에 걸친 노마드 프로젝트 기간동안 신물이 나도록 보게 됐는데 몽골의 시골 어디를 가든지 양, 소, 말, 염소, 야크 등등 가축의 무리와 함께 들판에 질펀하게 깔린 동물의 똥과 그 옆에 놓인 동물의 뼈들이 자연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인상 깊었다. 한국에 17년을 살아 우리 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몽골 작가 바다4)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약 25년전만해도 몽골에서 사람이 죽으면 마차에 싣고 초원을 달리다 시신이 땅에 떨어지면 그대로 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티벳 지역의 조장(鳥葬) 풍습과 함께 죽음을 자연에로의 회귀 현상으로 보는 몽골의 독특한 생사관(生死觀)이 아닐 수 없다. 즉, 죽음마저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생각할수록 심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가지만 몽골의 초원에도 화장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생활 공간인 게르(Ger)에서 1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화장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르칸가이(Arkhangai) 지역을 답사하다 야크를 키우는 한 작은 목장에 들른 적이 있다.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목제로 된 이동식 간이 화장실! 팔걸이가 달린 의자의 좌석에는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 아래에는 구덩이가 파여있었다. 짐작하건대 이동이 간편하도록 깊이 파지 않은 것 같았다. 가림막조차 없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동네가 보이고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유유히 지나간다. 대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볼일을 보는 이 여유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여담이지만, 몽골의 초원에 있는 화장실은 대부분 나무판자로 지었는데, 옛날 우리의 시골에서 본 것처럼 두 개의 나무판자를 놓아 용변을 보도록 했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이가 2미터는 족히 돼 보이지 않는가!
  

Ⅳ. 
 몽골을 상징하는 전통음식 허르헉을 처음 맛본 것은 울란바토르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불간 지역의 바얀 누르(Bayan Nuur)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몽골식 가옥에서 였다. 이 집은 바다의 부인인 자연미술 작가 투브신자르갈 첸드아유시(Tuvshiniargal Tsend-Ayush)의 이모네가 살던 집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이 빈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날 저녁에 덩치가 산(山)만한, 마치 씨름 선수를 연상시키는 바다의 남자 친척이 연로한 이모와 함께 허르헉 요리를 하러 우정 멀리서 찾아왔다. 그는 말을 방목하는데 며칠 후 우리는 그곳을 방문하여 일 년에 한 차례 말의 등에 인장을 찍는 진귀한 모습을 구경하고 말도 탔으며, 원형의 천막에서 마유주와 치즈 등 전통음식을 대접받았다. 

 그날. 허르헉 요리를 하는 과정을 두 시간 동안 진지하게 지켜봤다. 염소의 머리를 잘라 내장과 고기를 꺼내고 그 안에 잘 다져진 고기를 뜨겁게 달군 자갈(초토)과 함께 다시 집어넣은 후 토치로 털을 태웠다. 바다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초원에서는 장작에 초토(돌)를 달궜으나 지금은 그 대용으로 토치를 사용한다고 한다. 허르헉은 끈기가 필요한 요리다. 털을 태우고 커다란 칼로 면도를 하는 단순 동작을 셀 수 없이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허르헉의 배를 가르면 그 안에서 나오는 잘 익은 고기들. 몽골인들은 우리네 시루떡 두께만큼이나 희고 얇은 가죽 부위를 좋아한다며, 몽골 자연미술 단체의 대표인 아마르(Amarsaikhan Namsraijav)가 내게 한 점을 권하지 않는가? 나는 한 점을 받아 입에 넣었는데, 지방질이 많아 기름진 그것은 뜻밖에도 담백하고 씹을수록 고소했다. 그다음에 맛본 갈비는 내가 삼 년 전 내몽고에서 먹은 맛과 비숫했다. 몽골인들은 작은 주머니칼로 뼈에서 고기를 발라 먹는데 갈비를 들고 서서 이야기하며 먹는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다.  


Ⅴ.
 우리 일행은 대형버스에 몸을 싣고 무려 1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을 보냈다. 나중에 울란바토르에 있는 아트센터에서 결과보고전을 연 삼일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을 초원지대에서 지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 요리사는 여행 기간 내내 맛있는 몽골 요리를 제공해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했다. 그런데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끝까지 육류 음식을 즐긴 나와는 달리, 시골 여행이 일주일째 접어들자, 한국작가들 중 일부가 탈이 나기 시작했다. 설사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미술은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의식이 유럽을 비롯하여 아프리카, 중국, 인도차이나반도 등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번 노마드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도착한 초원에서 구한 자연물들을 이용해 간단한 작업을 펼쳤는데, 가령 동물의 뼈를 비롯하여 나뭇가지, 돌, 흙 등 주변에서 구한 자연 오브제로 비교적 단순하고 간단한 설치를 했다. 행사기간 동안 모두 일곱 차례의 자연미술 워크샵이 펼쳐졌는데, 거기에는 비단 초원뿐만이 아니라 사막지대도 포함돼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지역이건 초원에 널려있는 동물의 뼈는 단골 메뉴였다. 그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돌과 나뭇가지, 풀잎 등등 일체의 인공을 배제한 자연 오브제들이 사용되었다. 작업을 마친 작가들은 공들여 만든 작품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는 작금의 상업주의를 생각하면 이는 분명 반(反) 자본주의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즉 묵언(默言)의 행위를 통하여 자본주의 폐해를 재고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모래의 경사면에 글을 쓰는 것처럼, 씀과 동시에 모래가 흘러내려 글자가 지워지는 데서 오는 무상함에 대한 유비(analogy)가 아닌가?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랄까, 뭔가를 버리는 행위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이 국가를 초월한 자연미술 작가들에게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Ⅵ. 
 Y자형의 나무 사이에 주변의 돌을 주워 채워 넣은 몽골작가 아마르(Amarsaikhan Namsraijav), 초원에 산재해 있는 동물의 뼈들을 주워 원형의 방사상 도형을 만든 고요한, 초원에 장작더미로 ‘그러할 연(然)’자를 쓴 뒤, 컴컴함 밤중에 불을 붙여 장관을 연출한 이종협, 빈 플라스틱 통에 모래를 가득 집어넣고 나무에 걸어놓아 마치 해시계처럼 모래가 조금씩 빠져나오게 한 곽문상, 말라붙은 개천의 돌들을 옆의 밭으로 무수히 던지거나 옮겨 여신(女神)의 눈 모양을 만든 이야(Enkhjargal Gambat) 등등은 다 같이 천연의 재료를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몽골작가 투브신자르길 첸드아유시(Tuvshinjargal Tsend-Ayush)는 모래언덕(沙丘)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래결을 따라 작은 돌들을 늘어놓아 리드미컬한 형태를 연출하였다. 이처럼 8개국에서 모인 참여작가들은 자연친화적인 작업을 하였으며, 완성된 작품들을 돌아보며 이전전심으로 자연미술에 대한 공감대를 이룩해 나갔다. 
 
 그렇다면 자연미술의 공통적인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자연미술가들은 자연을 매개로 자연에 동화되는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는 가운데(자연존중사상) 각자 개성이 있는 예술적 행위를 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공통적 특징을 보인다. 첫째, 서사(narrative)와 스토리의 배제(반(反)연극성(anti-theatricality), 둘째, 자연물을 통한 간단한 상징과 기호의 제시 및 이를 통한 소통의 의지표출, 셋째, 문명적 물질의 거부(반(反)문명), 넷째, 몸을 통한 행위의 원초성 표출, 다섯째, 주거지에로의 회귀 의지, 여섯째, 자연물을 이용한 최소한의 행위지향, 일곱째, 가공되지 않은 생짜의 자연물을 주재료로 사용 등등이다.” 5)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둘러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 너른 초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간과 문명:인간이 문명을 일으켰지만, 자연은 침묵한다. 초원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문명의 부산물들, 관목에 걸려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부터 플라스틱 통, 각종 금속제품의 잔재들에 이르기까지 현대문명의 부산물들이 자연을 침범하고 있지만, 정작 지구의 주인인 자연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 저 자연이 포효하면서 분노할 그 날은 대체 언제인가? 

 쓰레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폐비닐과 플라스틱은 완전히 분해되는데 20-400년이 걸린다는데, 인구밀도가 적은 몽골에서조차 이런 현대문명의 무차별 침공을 방임하고 있다니. 나는 망연자실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는 독수리가 하늘을 길게 선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Ⅶ.
 어느덧 글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가 다음과 같은 글귀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 글을 모두에서 제기한, 몽골과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을 연결시킨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자연에 대한 저항의 발길질은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서양에서는 근대성(modernity)의 개념이 발생한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연 정복과 자연 경시의 풍조가 점차 자리를 잡아나갔다. 반면에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 존중과 동화(同化)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러한 자연관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동양의 전통 산수화이다. 하나의 우주를 상징하는 동양의 산수화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이 작게 표현돼 있는데, 이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가 잘 드러난 사례이다. 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니 안분지족(安分知足)’과 같은 도교적 삶의 태도들은 다 같이 청빈을 삶의 실천윤리로 삼으면서 자연과의 동화(同和)를 꾀한 사례들이다.“ 6)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겸손한 태도는 인류가 새겨야 할 삶의 지표임에 분명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물을 이용하여 작품을 펼치고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자연미술가들의 행위는 겸손한 태도임에 분명하다. 그러한 행위의 이면에는 경외심을 품고 자연을 대하는 의식이 존재한다. 

 ‘야투’가 창립한 80년대 초반에는 생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명백히 자연에 대한 발길질이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인류 스스로가 초래한 생태계의 교란과 ‘코로나 19’처럼 되풀이되는 인류 대역병의 도래는 자연에 대한 발길질을 그칠 것을 경고한다.   

 몽골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오보(Ovoo/어워(몽골식 발음)’를 봤다. 우리의 서낭당에 해당하는 이 돌무더기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쌓아 올린 것이다. 청색과 흰색의 긴 천들이 나뭇가지 끝에서 펄럭이는 이 깃발을 바라보며, 몽골인들은 탱그리(天神)에게 안녕을 기원한다. 그 기원이 세상의 끝에 닿기라도 하려는 듯이.

1차 출처: 아트인컬처, 2022년 11월호
 
 주석

1) ‘자연에 몸을 던진다’는 의미를 지닌 ‘야투’의 창립 회원은 다음과 같다. 곽문상, 강희순, 고승현, 김영철, 김지숙, 나경자, 박수용, 신현태, 이동구, 이순구, 이응우, 임동식, 조충연, 정봉숙, 정영진, 지석철, 함상호, 허강, 허진권, 홍오봉

2) GNAP 운영위원장(2013- ), 이응우(협력 디렉터(co-director) 2015-2018), 전원길(Yatoo-i 감독(director) 2011-2021) 

3) 2021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2021-프랑스Ⅲ, 독일Ⅲ, 몽골Ⅱ, 중국, 한국Ⅴ, 2. 목적 및 기획의도, YATOO, 14쪽.

4)  국민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를 행사 기간 내내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바다는 징기스칸의 영화에 나오는 무사를 닮았다. 그의 본명은 밧사이칸 소욜사이칸(Batsaikhan Soyolsaikhan)이다. 참고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고승현, 고요한, 곽문상, 윤진섭, 이종협(이상 한국), Olivier Huet(올리비에 위에), 프랑스, Margrit Neuendorf(마그릿 노이엔도르프), 독일 / 프랑스, Balazs Zoltan (발라즈 졸탄),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Torkos Márk Erik (토르코스 마르크 에릭) ,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Jordi Navarro Navarrete (조르디 나바로 나바레테), 스페인, Wisnu Ajitama (위스누 아지타마), 인도네시아, Nomin Zezegmaa(노민 제그마아), 독일/ 몽골, Amarsaikhan Namsraijav (아마르사이칸 남스라이야브), Enkhbat Lantuu (엥크바트 란투우), Chinzorig Ryenchin-ochir (친조릭 렌친-오치르), Luvsandorj Ragchaa (루브산돌지 라그차), Enkhjargal Gambat(엔크자갈 감바트), Batsaikhan Soyolsaikhan (밧사이칸 소욜사이칸), Tuvshinjargal Tsend-Ayush (투브신자르갈 첸드아유시), Erdenesaikhan Ochirbat (에르데네사이칸 오키르바트), Munkhtuya Alyeksandr (뭉흐토야 알렉산드르), Munkhzul Mazin (뭉크졸 마진), Manaljav Badamjunai (마날자브 바담주나이), Shijirbaatar Jambalsuren (시지르바타르 잠발수렌)(이상 몽골)

5)  윤진섭, 앞의 책, 10쪽. 

6)  윤진섭,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통한 동화(同和) 의지>, 앞의 책,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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