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교준 / 분할과 확장

윤진섭




분할과 확장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이교준은 누구인가? 1955년 생, 대구 출신으로 한국화단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내가 지금 새삼스럽게 그를 거론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되돌아보는 일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왜 그런가? 

 이교준은 전후(戰後) 한국사회에서 경제부흥을 기치로 내건 제3공화국이 과실을 따던 1970년대 말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7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현대미술제’의 포문을 연 [대구현대미술제]의 마지막 전시에 참가했다. 1974년에 창립된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역들은 서울화단에 앞서 현대미술제를 구상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는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하려고 했던 1973년의 [서울현대미술제](1975년 창립)가 불발에 그친 다음 해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현대미술에 관한 한, 대구가 그만큼 성숙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찍이 섬유산업이 발달한 대구는 그만큼 상권이 좋았으며, 이는 대구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화랑계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적 조건이 돼 주었다. 오늘날 대구가 서울에 이어 미술시장이 활발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이교준은 이강소, 이명미, 박현기, 황현욱, 이현재, 최병소, 김영진 등으로 대표되는 70년대 대구화단의 막내 세대에 해당한다. 그런 까닭에 [현대작가초대전](1973)과 [한국실험작가전]1) (1974), [대구현대미술제](1974)의 창설과정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해서 70년대 후반 이후 이교준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TARA> 그룹을 비롯하여 <에꼴드서울>, <상식, 감수성, 예감> 등등 서울 기반의 전시를 통해 전국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갈 수 있었다. 

 또한 20대의 젊은 나이에 [대구현대미술제]를 비롯한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감각을 익힌 이교준은 1982년에 전국 규모의 [현장에서의 논리적 Vision]전을 기획하는 등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Ⅱ. 
 이교준의 개인전 경력을 살펴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다. 단색화를 비롯하여 주로 ‘미니멀’한 화풍의 작가들 개인전이 열린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진 사실이다. 1982년 수화랑의 전시를 필두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공갤러리, 신라갤러리(이상 대구), 서화갤러리, 박여숙 화랑, BIBI Space(대전), 리안갤러리, 더페이지갤러리, 피비갤러리(이상 서울) 등등 자신의 회화적 성격에 부합하는 갤러리들에서 전시를 열어 본인의 성격에 맞는 이미지를 구축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교준은 오늘날 ‘미니멀’한 기하 추상 화풍의 2) 작가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이교준의 화풍이 그렇게 형성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가 70년대의 개념미술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이번 대구미술관 주최의 [지역미술연구-다티스트/DArtist]전 도입부에 소개된 것처럼, 이교준은 70년대 후반에 사진을 매체로 삼아 사물과 자신의 신체를 공간 해석에 필요한 도구로 삼았다. 그 중심에 ‘프레임’의 개념이 있었다. 즉, 필름(카메라의 뷰파인더)의 사각 프레임에 갇힌 신체와 사물의 한계를 탐색하는 일이 훗날 캔버스의 프레임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실내에 똑바로 선 채 마치 앞에 투명한 유리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양손을 펴서 앞으로 쭉 뻗거나, 천정을 향해 한 손을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 등등은 모두 사각 프레임을 의식한 작업들이다(<Untitled>, Black and white photography, 60x50cm, 1981). 이러한 방법론은 같은 해에 발표한 동일 제목의 작품에서 신체 대신 각목으로 대치되고 있는데, 이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 시각적 트릭을 이용한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서 파생되는 허상(illusion)의 문제에 관한 탐구에 해당한다. 그 결정판은 1982년에 강정에서 발표한 <무제(Untitled)>인 바, 여기서는 검정색 장방형의 프레임 속에 갇힌 각목을 통해 사진이 아닌, 현장(모래밭) 속의 실재를 통해 입증하였다. 

 따라서 이교준의 작업에서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상징하는 사각의 프레임이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으로 전이된 것은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는 이교준이 실험을 한 70-80년대의 개념미술과 사진 작업, 그리고 신체 퍼포먼스가 공간분할을 기본으로 하는 캔버스 작업으로 확산됨은 물론, 보다 정치(精緻)한 시각적 탐구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교준은 자신이 작업이 점, 선, 면 등 회화의 기본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3) 모래밭이나 실내와 같은 특정한 공간에서 캔버스라고 하는, 실재하나 개념과 사유의 매체이기도 한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이교준은 매우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된다. 그러할 때 점, 선, 면은 직접적인 사유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교준이 청년시절에 건축회사에 근무, 설계도면을 그린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는 반투명한 성질의 트레이싱 페퍼에 도면을 그리면서 종이의 뒷면에 대상이 어렴풋이 비치는 현상에 주목했다. 또한 건축의 설계도면이 일정한 사각의 모듈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사각의 프레임을 기반으로 좌우, 상하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확장성의 개념4)은 그렇게 해서 이교준의 작업에 들어오게 됐으며, 그 이후 비단 캔버스뿐만이 아니라 각목, 합판, 알루미늄, 납 등등의 이질적인 재료가 들어오면서 풍성한 회화의 지평을 열어갔다. 그 시기가 대략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른다.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작업은 ‘보는 것’ 즉 지각에 대한 실험과 맞물려 있다. 이른바 근대 회화(modernist painting)의 요체인 ‘평면성’과 ‘공간분할’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무제(Untitled)> 연작이 평면을 둘러싼 화면 분할의 실험기를 대변한다면, 이어서 이어진 <Window> 연작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각형 모듈을 이용한 다양한 시각적 허상의 문제를 5) 탐구하였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합판과 각목을 이용한 두꺼운 입체물을 통해 허상의 문제를 제기한 작업(<Void> 연작)에 다시 몰두하게 된다. 이른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를 작품을 통해 탐구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것(일)의 주체가 관객이라고 할 때, 내가 보는 저것, 즉 보이는 저 것(혹은 현상)이 과연 실재란 말인가?”하는 현상학적 질문의 제기가 바로 이 시기에 품었던 이교준의 생각이었던 듯 싶다. 이는 오성을 기반으로 하는 경험론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현상 자체에 ‘즉(卽)’해서 보면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지각현상학적인 질문이다. ‘몸’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이 단계에 이르러서이거니와, 우리는 하나의 두꺼운 입체물을 사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면을 기반으로 한 2차원 매체인 회화의 시각적 허상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이교준의 작업은, 평면성을 확인하는 여러 방법을 통해 6) 그 트릭의 허구성을 검증한 연후에 사각의 입체구조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 작가가 40여 년을 훨씬 상회하는 기간을 하나의 화두에 집중하여 작업을 펼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교준은 대구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제 전국적인 위상에서 조명되고 있다. 대구미술관의 이번 회고전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있는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아트인컬쳐 2022년 10월호



1)  대구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전시다. 박현기,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완호, 이향미, 최병소, 황현욱 등이 참여했으며,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이 발기한 전시이다. (고충환, 대구현대미술제-대구현대미술의 에포크(Epoch), 대구미술 다시보기-대구현대미술제 ‘74-‘79,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전시 도록, 12쪽. 

2)  이교준을 후기 단색화 작가로 규정짓기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점,선,면을 바탕으로 모듈에 근거한 합리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의 관점에서 보면 일정 부분 후기 단색화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본다.  

3)  이교준, 대구미술관 주최, <2022 다티스트 이교준의 라티오(Ratio) 작가> 인터뷰. 2022.6.22

4)  이는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60-70년대 도널드 저드를 비롯하여 솔 르윗, 댄 플래빈이 주도한 미국 미니멀 아트의 기본개념이기도 하다. 

5)  청, 황, 록 등의 화려한 색채가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6)  가령 사각형의 선을 긋거나 점을 찍는 행위들을 가리킴. 이와 유사한 행위들이 60-70년대의 서구 미니멀 아트에서 집중적으로 실험되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