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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마음

윤진섭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마음

윤진섭 | 크리큐라티스트 cricuratist


 2009년은 나의 삶에서 새로운 분기점이 된 해이다. 당시 나는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의 특별전인 [국제도자퍼포먼스(Ceramic Fashion)](2009.4.25.-5.5)의 커미셔너에 위촉돼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내외에서 27명의 행위예술가들이 참가한 매우 큰 쇼였다. 

 이 국제 퍼포먼스 쇼에 나 역시 왕치(Wangzie)라는 예명으로 참여했다. 그 무렵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에 깊이 빠져있던 나는 추사 선생의 엄청난 명호(名號)의 숫자에 놀랐다. 추사의 전적을 샅샅이 살펴 추사가 생전에 쓴 명호가 무려 334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 낸 옥과미술관 관장 최준호 박사의 <추사, 명호처럼 살다>를 읽고 알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탁 쳤다. 오오, 드디어 깨달음이 왔도다! 선가(禪家)의 표현을 빌리면 “한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열 아홉 살 까지는 이름을 쓰고, 스무 살부터는 본인이 짓든 남이 지어주든 여러 개의 호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동양 선비문화의 전통이다. 반면에 서양에는 그런 전통이 없어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아무리 천재라도 오로지 본명 하나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마르셀 뒤샹인데, 로즈 셀라비(Rrose Sélavy)가 그의 유일한 예명이다.  

 하루는 행사준비를 하러 이천에 가기 위해 지하철 신당역 복도를 지나가는데 한구석에서 오토바이 장난감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하나만 팔아주세요, 네? 경비원을 피해 다니느라 한 시간 동안이나 헤맸어요. 아직 마수도 못했어요.” 아주머니의 간절한 눈길에 이끌려 장난감을 보니 노랑머리의 서양 젊은 남녀 한 쌍이 탄 두 대의 오토바이가 “왱, 왱, 왱, 왱” 요란한 경적소리를 내며 원형으로 돌고 있었다. 옳커니,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기 보이는 뒷자리의 저 작은 검정색 트렁크에 깃발을 꽂자. 마침 거기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때 퍼포먼스 쇼에서 발표한 <예술과 정치(Art & Politics)>는 2007년에 발표한 <무선전화-김백기와의 대화:전화하시겠어요?>(클럽 씨어터 벨벳바나나)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나의 퍼포먼스 발표의 첫 출발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작가명도 실명이 아닌 다양한 예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왕치(王治)로 시작한 예명의 행렬은 HanQ를 거쳐 Very Funny G.P.S, SoSo 등등 현재 100여 개에 달한다. 나의 작명 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서 이제는 우연히 눈에 띄는 단어를 차용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가령 오더(Order)는 내가 전시를 준비하는 어떤 모임에서 얻은 것인데, 커피를 내주는 카페의 창구 위에 ‘ORDER’라고 검정색 매직으로 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의 소치다. 만일 내가 장난감을 파는 상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술과 정치>는 아마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 카페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멋진 ‘Order’는 나의 예명 목록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사고와 행태는 ‘예술과 일상의 혼융’이라는 테마를 낳았다. 예술은 멀리 떨어진 저 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바로 여기에 있다. 

 행위예술가 성능경은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라고 외치며 특유의 난장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처럼, 예술은 도처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의 놀이 삼아 나의 분장 퍼포먼스를 즐기며 그 결과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전시한다.

 오이, 방울토마토, 배추, 파, 버섯, 키위, 당근 등등 각종 채소를 얼굴에 노끈으로 감싼 사진은 먹거리가 분장의 도구로 사용된 예이다. 나는 길을 가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는데, 관심을 끄는 오브제를 찾기 위해서다. <부러진 삽(Broken Shop)>(2011)과 <이불뭉치>(2019)는 모두 길에서 구한 것들이다. <부러진 삽>은 어느 날 문래동 로타리를 지나가던 내가 우연히 길가 꽃밭에서 발견한 부러진 삽자루인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여섯 차례 전시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서귀포 길가 축대 틈에서 발견한 보습을 만나 결혼을 했으며, 얼책(facebook) 사이트에 세계 각지의 친구들이 맺어준 아내까지 합해 10여 명의 배우자가 있다. 이 어찌 신나는 인생이 아니랴!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라! 2020년, 드디어 ‘코로나 19’로 대변되는 팬데믹 시대가 찾아왔다. 내몽고에서 퍼포먼스 발표를 하고 귀국한 1월 초엽부터다.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를 써야 하는 단절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 고난의 시기가 현재까지 무려 2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2020년 3월 21일, 혈당 조절을 위해 남산길을 돌며 마스크를 쓴 채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불붙은 나의 드로잉에 대한 열정은 내면세계의 표출로 옮아갔다. 안방 벽 하나를 온통 차지한 흰색 장롱은 사진 촬영을 위한 배경막이며, 장롱과 침대 사이의 직경 약 1미터 정도 되는 곳이 나의 드로잉 공간이다. 나의 ‘예술 아닌 예술’은 이 작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침대는 방독면, 각종 색안경, 스카프, 칼, 장난감 총 등등 분장을 위한 도구를 펼쳐놓는 공간이다. 나는 빠른 순발력으로 소도구를 골라 얼굴에 쓰고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2020년 3월 21일 이후 그렇게 해서 그린 크고 작은 드로잉이 1만 2천 점에 달하는데 그 중 자화상 드로잉이 5백여 점이며, 각종 셀카 자화상 사진 역시 5백여 점이다. 이 작품들로 <자화상>전을 꾸미면, 볼만 할 것이다. 표현방법이나 재료 또한 다양하여 특히 어린이들의 미술교육이나 창의력 개발에 좋다. 제목은 가칭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마음’이 어울릴 듯 하다. 어디 마땅한 공간 없소? 

월간사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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