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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쏴라

편집부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쏴라
Float like a Bee, sting like a Butterfly


윤진섭 | RT1)

Ⅰ.
 유원지나 공원, 유람선 등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예인들이 있다. ‘품바(Pumba)’가 그것이다. 
 행위예술, 즉 퍼포먼스계의 원로 성능경(成能慶:1944- )을 이야기하면서 ‘품바’를 거론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어떻게 감히 시장(市場)에서 벌어지는 재담과 성(聖)스러운(?) 고급 전위예술을 비교할 수 있냐고? 
 그러나 흥분하지 마시라. 성(聖)은 성(性)과 통하고, 성(性)은 성(城)과 통하며, 성(城)은 또 성(誠)과 통하니, 이 모두는 서로 소통하여 다 성(成)하고 성(盛)하니 성능경 선생의 요즘 모습과 딱 일치한다. 
 
Ⅱ.
 나이 팔십에 대운이 들었으니 이제는 세계로 뻗어 나갈 일만 남았다. 어디로? 구겐하임(Guggenheim)으로....뻗어라! 뻗어라! 이왕이면 모마(MoMA)까지! 내후년에는 거기서 한판 품바를 벌이는 거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으로! 그래서 성능경의 품바가 보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하는 거다. 까짓 못 할 거 없지 않은가? 

Ⅲ. 
 나는 그 싹을 지난번 백아트갤러리 퍼포먼스에서 봤다. 성능경은 그때 아주 빨간, 그래서 매우 섹시하게 보이는 버선을 신고 등장했다. 그 위, 그러니까 아랫도리에는 성능경이 퍼포먼스 할 때면 늘 입고 나오는 화려한 ‘민혁이 바지’2)가 행위를 할 때마다 펄럭이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때 성능경 예술의 세계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바로 저거다!!! 나는 무릎을 쳤다. 아직 크게 안 알려져서 그렇지, 알려지기만 하면 세계가 떠들썩 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고상하고 난해한 고급예술의 성지(聖地), 그 이름도 거룩한 구겐하임(GUGGENHEIM)에 드디어 입성했는데, 같은 동네에 있는 모마(MoMA)에 못 갈 건 또 무언가? 이웃집 아닌가? 이웃집에 놀러가듯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못 들어가게 한다고? 그럼 하면 된다.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쏴라!3)

Ⅳ. 
 삶이 다 그런 거다. 일부러 하려고 하면 안 되지만, 그저 무심코 놀 듯이 하면 되는 것이다. 황금을 돌같이 보면 그 돌이 나중에 황금이 된다. 그 철리(哲理)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성능경의 예술적 삶과 요즘의 행보가 아닌가? 요즘의 그의 모습을 보면 성(誠)이 극에 달하니 성(成)하게 되고, 성(成)하니 성(盛)하여 드디어 성(城)에 도달하는, 예술가의 숙명적인 고난의 길을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했던가? 살아 생전에 품위있는 삶을 누리는 것 또한 지극한 복락이 아니던가? 

Ⅴ. 
 “성능경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세속적인 표현을 빌리면 ‘꼴통(Ggoltong)’4)이다. 꼴통이되, 끊임없는 독서와 사유로 형성된 지성을 바탕으로 때로 비수처럼 튀어나오는 비판과 풍자를 겸비한 전위적인 ‘꼴통’인 것이다. 팔십이 된 어르신에게 이런 호칭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러나 자신의 미학에 투철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으며, 끊임없이 신조어를 생산하는 언어능력5)과 근엄한 척하는 기성문화에 날리는 촌철살인적인 경구(驚句)의 가격(加擊)은 가히 ‘꼴통’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자칫 저속(低俗)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이런 세속어를 구사하면서까지 성능경의 세계를 묘사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기성의 관념에 절어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주류문화와 주류사회에 가하는 그의 통렬한 풍자이다. 그러한 풍자는 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온 그의 독자적인 퍼포먼스 스타일을 통해 표출된다. 그 특유의 퍼포먼스에 내가 붙인 ‘품바(Pumba)’는 원래 장터를 돌아다니며 벌이는 예인들의 공연을 가리키는 말인데,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며 독자적인 형태의 ‘한국형’ 퍼포먼스이다.” 6)

그렇다. 다시 반복하자면, 성능경의 퍼포먼스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며 독자적인 형태의 ‘한국형’ 퍼포먼스이다. 그것을 일러 ‘성능경의 품바 퍼포먼스’라고 명명하자. 그럼 그것은 이제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품바이긴 하되, 시장의 예인들이 벌이는 품바가 레퍼토리와 재담 하나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에 비해 성능경의 품바 퍼포먼스는 크게 봐서는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미세한 변화가 포착되며 끊임없이 레퍼토리가 추가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미세한 변화란, 이를테면 탁구공에 쓴 문장을 읽은 뒤 이를 새총에 장전하여 관객을 향해 쏘는 행위는 오랜 세월 반복돼 왔지만 그 내용은 늘 다르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성능경이 공력을 들이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성능경 예술의 토양은 일상생활인데 여기서 대부분의 발상과 제작이 이루어진다. 그는 동아일보의 사십 년 독자이다. <그날 그날 영어(Everyday English)>는 동명의 동아일보 기사를 매일 공부한 흔적을 모은 작품들로 무려 4천여 점에 가깝다. 다음은 성능경의 언어 퍼포먼스(verbal performance)와 관련한 대목이다.

 ”성능경 특유의 언어 퍼포먼스(verbal performance)는 신문이나 잡지, 광고 전단지 등에서 채집한 문장이나 문구 등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편집 혹은 뒤튼 것들이 대부분이다. 성능경은 이 문장이나 문구들을 탁구공에 적는 행위로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그것들은 일상을 통해 이루어지며, 정작 퍼포먼스에서 발현되는 것은 탁구공에 적힌 경구들을 낭독할 때이다. 성능경은 탁구공에 적힌 촌철살인의 경구들을 읽은 뒤 새총에 장전하고 관객들을 향해 날린다. 관객들에게 날리기는 했지만, 정작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다름 아닌 ‘사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능경은 평범한 대중 혹은 문자 그대로의 ‘꼴통들’에게 역으로 도발적인 똥물을 끼얹는 것이다. 해학과 풍자의 이름으로 말이다.7) 

 성능경의 퍼포먼스는 그림으로 치면 양식화(樣式化)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90년대 초반이래 품바형 퍼포먼스가 등장했는데, 성능경은 지금도 이 양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성능경의 퍼포먼스가 매번 그렇고 그런, 비슷한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양식화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다. 진정한 고수들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법이다. 물오리의 평온한 자태 밑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이 존재한다. 실로 성능경이 그러하다. 그가 품바 퍼포먼스에서 쏠 탁구공에 적을 한 마디의 경구를 쓰기 위해서는 부단히 신문과 잡지, 광고 전단지를 뒤적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90년대 초반 이후 경구의 변천사를 써야 할 만큼 성능경의 품바 퍼포먼스는 30년의 대하(大河)를 이룬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채나 탁구공에 적힌 내용이나 그 자신의 어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8월 13일 성능경’이라고 서명이 된 한 탁구공에는 “....춥지만, 우리/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채소 파는 아줌마에게/이렇게 물어보기/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시인 김강태 : 돌아오는 길” 8)

 퍼포먼스를 시작할 때, 성능경은 한 손에 타원형의 부채를 들고 입장한다. 몸에는 권투선수가 입는 것 같은 붉은색의 가운이 걸쳐져 있다. 9) 그는 왼손으로 은색 여행용 가방을 끄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연신 부채질하면서 천연덕스럽게 관객들을 좌우로 쳐다본다. 이때 짙은 검정색 동그란 안경을 쓴 성능경은 주변을 천천히 관찰하듯 둘러보는데, 여기에는 그 특유의 교묘한 시선의 정치학과 처음부터 관객을 압도하려는 카리스마가 깔려 있다.10)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성능경은 부채에 적힌 제문/시축문을 낭독한다. “‘유세차(維歲次)’를 낭송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제문은 당일 행사의 내용을 압축한 것으로 축원문 형식으로 돼 있으며, 내용은 그때마다 다르다. 제문을 다 읽은 성능경은 부채의 맨 위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손으로 살살 부치면서11)  관객석을 천천히 돌아다닌다. 성능경이 들고 입장한 여행용 가방 속에는 퍼포먼스에 쓸 다양한 소품들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족히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를만한 것들이다. 퍼포먼스를 하러 걸어 들어 올 때 성능경이 쓴 갈색 모자는 비행사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 그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어서 마치 성능경의 트레이트 마크처럼 돼 버렸다. 그가 늘상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새총을 비롯하여 탁구공, 훌라후프, 트위스트 목베개 등등으로 이루어진 ‘종합선물셋트’는 퍼포먼스에 필요한 소품들의 비유적 총칭이다.”12)   

Ⅵ.
 성능경의 ‘품바’ 퍼포먼스는 촌스러운 듯 화려한(?) 의상과 조악한 소도구, 값싼 장난감 등등 서민적이며 생활적인 물품들과 그 특유의 행위가 결합돼 발산된다. 중요한 것은 성능경의 이 ‘품바 퍼포먼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독자적이며 창의적이다. 
 이제 성능경은 7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온 오랜 고난과 고행의 시대를 접고 세계의 무대를 향한 ‘진군(進軍)’13) 을 시작했다. 그 끝이 어디일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그가 보여준 기세로 봐서 분명히 깃발을 꽂긴 꼽을 것 같다. 다 같이 기대해 봄 직하지 않은가? 


ㅡㅡㅡㅡㅡ
1)  ‘Red Tongue’의 약자. ‘붉은 혀’를 뜻하는 윤진섭의 최근 예명 가운데 하나. 

2)  화가 이민혁은 재기발랄하며 머리 속에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50대 초반의 작가다. 어린애같은 데가 있어서 천진난만하고 노는 데 거침이 잆다. 한 십년 전에 이민혁은 개인전 오프닝에서 시장에서 파는, 무늬가 화려한 아줌마 바지를 잔뜩 껴입고 나타나 관객들에게 하나씩 벗어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이때부터 나는 가볍고 촌스러운 이 바지를 개인적으로 ‘민혁이 바지’라고 부르며, 즐겨 애용한다. 값싸고 질감이 부드러운 ‘민혁이 바지’! 정말 굿이다.   

3)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1964년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무하마드 알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성능경의 퍼포먼스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튀틀어 사용한다. 아이러니는 상식을 뒤엎는 성능경 퍼포먼스의 필살기이다. 

4)  ‘꼴통’을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은 씨도 안 먹혀 골치 깨나 썩이게 하는 사람”이란 뜻의 신조어라고 나온다.  

5)  이러한 능력은 어렸을 적부터 따른 사촌형 성찬경(시인 : 1930-2013)의 영향과 교육에 힙입었다. 서울대 영문과 출신인 성찬경 시인은 문사철은 물론이고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성능경의 회고에 의하면, 자신이 커서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화가가 된 것은 유년시절(6.25 전쟁시기)에 자신이 그린 탱크 그림을 본 사촌형이 감탄을 하며 “너 앞으로 그림 해라”는 말에 연유한다. 이 두 사람이 예술적으로 한 무대에 선 적이 있는데, 1988년 6월 27일 오후 7시 30분 한국행위예술협회가 주최한 문화행사기획 성능경의 행위예술 발표회에서 였다. 시인(성찬경)과 퍼포머(성능경)의 만남으로 <시와 미술을 위한 2인의 작업>에서 였다. 이 행사에서 성능경은 단독으로 세 개의 행위작업을 발표했는데, 이때 발표한 <작품Ⅰ 팽창과 수축>(1976), <작품Ⅱ 위치>(1976), <작품Ⅲ 신문읽기>(1976)는 70년대 중반 작품의 재연이었다.    

6)  윤진섭, <아무 것도 아닌 듯’ 그러나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 백아트갤러리 성능경초대전 도록 서문 중에서 

7)  윤진섭 , 앞의 글에서 인용. 

8)  필자가 성능경의 퍼포먼스 현장에서 주은 탁구공에 적혀있는 내용임. 

9) 나는 붉은 기미가 도는 갈색의 비행사용 모자에 물안경을 척 얹은 상태에서 검정색 팬티 바람에 흰색의 보자기를 둘러쓰고 등장하는 성능경의 모습을 보면 왠지 <놈, 놈, 놈> 영화에 나오는 송강호의 익살스런 자태가 연상돼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성능경의 퍼포먼스는 대중화될 소지가 크며 그것은 또한 전위예술의 대중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10)  그것은 또한 검정색 안경 너머로 상대를 관찰하는 기관원을 상징할 수도 있고, 권력자를 암시할 수도 있다.  

11) 불이 붙은 부채를 살살 부쳐 바람을 일으키는 이 행위는 결과적으로 불을 더욱 가속화하게 되는데, 여기에 성능경 특유의 반어법(反語法)이 담겨 있으며, 그러한 반어법은 그가 만든 조어인 ‘소통의 불통’에 이르러 특유의 예술론으로 발전한다. 

12)  윤진섭, 앞의 글 중에서 

13)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척후조’를 의미하는 군사용어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하라.  




1차 출처: 자하미술관 주최 성능경전 학술세미나 원고,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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