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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대구의 중요성

편집부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대구의 중요성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구는 일찍부터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1974년에 창설된 [대구현대미술제]가 그 중심 역할을 했다. 이제 수성아트피아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을 함으로써, 대구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다시 세우고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한 웅비를 시작하려 한다. 다 함께 축하할 일이다.  

 수성아트피아는 그 첫 사업으로 [수성아트피아 재개관 기념 특별전-현대미술·빛을 찾아서]전을 세상에 내놓는다. 대구 출신의 작가 곽훈, 남춘모, 이명미, 이배, 최병소 등 이번 특별전에 초대된 60대 이상의 중진·원로 작가들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대구 미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미술을 견인해 온 개척자들이다. 

 이들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번 재개관전을 통해 되돌아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나날이 깊어 가는 국제화 시대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대구가 다시 한국미술의 ‘메카’로 재부상하느냐 하는 시대적 과제에 두어진다. 말하자면 현대미술의 발신 기지로서 대구의 위상과 역할을 점검 내지는 재정비함으로써, 한국은 물론 세계에 대구의 우수한 미술 인재들을 송출하는 중차대한 소임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는 단기적 전략을 수립하여 일로(一路)매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수성아트피아의 주관처인 수성구에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는 문화예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이다. 무릇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겉으로 보면 다른 분야에 비해 가시적 성과가 가장 느리게 나타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관례로 볼 때 행정의 입장에서는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은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돌파한 오늘날 가장 부가가치가 큰 분야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배부르고 나면 자연스럽게 찾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인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의 의식과 행태가 과연 그러한가 하고 의문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고로 문화예술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잦아들어 내면화되려면, 시민 스스로가 양질의 문화적 욕구를 생활 속에서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따라서 수성아트피아가 주민들에게 능동적으로 접근하여 잠재된 예술 향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현대 시민사회에서 요구되는 교양과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성구는 선진적인 행정을 펼쳐나가야 할 줄 믿는다. 이것이 바로 수성아트피아에 거는 기대이다.
 
 둘째는 우수한 전문인력의 확보이다.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사고를 지닌 전시기획 분야의 전문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점점 더 심화되는 문화예술의 시대에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 정책을 꾸준히 펼쳐나갈 것을 당부한다. 우수한 인재가 확보되고 안정감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학예와 전시는 기존의 행정 시스템이나 제도, 즉 임기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 확보됐다고 하더라도 가령 2.2.1 같은 현행 임기제 아래서는 유능한 관장이나 학예직 인력이 견뎌내기 어렵다. 소위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치적 상황을 말함인데,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 바라며, 합리적이며 실제적인 대안 모색이 요구된다.  
  
셋째는 충분한 전시기획 예산의 배정이다. 아무리 전투에 능한 훈련된 군사라도 실탄이 없으면 현대전에서는 무력하다. 따라서 대구가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전진기지로서 수성아트피아가 자리 잡아가길 원한다면 그에 따른 충분한 기획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거기에 부응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게 경제적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Ⅱ.
 이번 전시에 초대된 5인의 작가들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중추이면서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다. 곽훈, 남춘모, 이명미, 이배, 최병소 등 5인은 1974년에 창설돼 79년까지 지속된 [대구현대미술제]에 직접 참여했거나 겪은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모든 문화예술이 서울에 집중된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현대미술사상 최초로 지역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내기 시작한 ‘문화게릴라들’이었다.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1974.10.13.-19)에는 70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는데, 50주년을 앞둔 현재의 화단 상황으로 볼 때 이들 중 많은 수가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전시는 자칫하면 한국미술협회가 기획한 1973년의 [서울현대미술제]에 선두 자리를 빼앗길뻔 하였으나, 이 전시가 신문에 보도까지 됐지만 불발되는 바람에 현대미술사상 첫 ‘현대미술제’로 등재되는 행운을 잡았다. 

 [대구현대미술제]는 최초의 전국단위 현대미술제였다. 이 무렵이면 1972년에 창설된 [앙데팡당]전을 비롯하여 1975년의 [서울현대미술제]와 [에꼴드서울] 등 서울 주도의 현대미술제가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그 사이에 해당하는 1974년 대구미술인들에 의해 자생적이며 자발적인 [대구현대미술제]가 창설되었다. 김기동, 김영진, 김재운, 김종호, 이강소,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이 발기하여 전국적인 작가 선정이 이루어졌다. 참여작가 수가 약 70여 명에 달하며 <ST>와 <신체제> 등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미 역사화된 그룹이 초대되었다.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원로, 중진작가들로 간주되는 중심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름은 생략하거니와, 대구 현대미술제는 한국 현대미술이 서울 주도에서 지역으로 옮겨지는데 견인차적 역할을 했다. 

 1974년에서 79년에 이르는 [대구현대미술제]는 총 5회에 이르는 동안 307명의 작가가 초대됐는데, 그 명단을 살펴보면 가위(可謂) 한국 현대미술을 대구로 옮겨다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위세가 막강했다. 물론 이때는 [현실과 발언](1979 창립)으로 대변되는 민중미술이 등장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개념미술을 비롯하여 입체, 설치, 비디오, 이벤트 등 모더니즘위주의 다양한 미술사조와 경향이 화단을 독점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구현대미술제] 전시기간 동안 강정(1977, 79)과 냉천(1978) 등 야외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벤트(Event)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중앙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해서 이 행사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언론이 있다.’는 속설이 입증하듯,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면서 성가를 높이게 된 것이다. 


Ⅲ.
 전국에 광역시가 여러 곳 있지만 대구만큼 현대미술에 대한 역사가 깊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은 드물다. 대구는 경북대를 비롯하여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대구카톨릭대, 대구예술대 등등 미술학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 많고, 섬유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콜렉터 층이 형성돼 화랑업이 번성했다. 현재 대구의 화랑은 약 70여 개에 달하며 대구화랑협회(회장: 전병화, 소속화랑 42개사) 가 결성돼 있을 정도로 세력이 막강하다. 미술대학이 이렇게 많다보니 여기서 배출된 미술인들이 많아 대구에는 연일 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이상은 대구미술 인프라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지표들이다. 거듭 이야기하거니와 이처럼 우수한 대구미술 인프라는 수성구의 입장에서 볼 때 관내에 있는 대구미술관과 함께 수성아트피아의 존재를 재인식하게 만든다. 이번에 1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새롭게 단장한 수성아트피아의 재개관은 정말 뜻이 깊은 경사다. 무릇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롭게 단장한 새 건물에서 첫 기획전을 여는 일이야말로 수성아트피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Ⅳ.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구와 강정을 비롯한 인근 지역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한국 실험미술 내지는 전위미술의 산실이며 요람이란 사실에 있다. 이 점은 [대구현대미술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려니와, 문제는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 이 부분이 본 세미나 발제의 결론이자 핵심이다. 토론을 통해 풍성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한가지 첨언(添言)하고 싶은 것은 [강정현대미술제]에 관한 것이다. 1977년과 7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대구현대미술제]에서의 강정 이벤트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최첨단의 매우 획기적인 행위예술이었다. 당시 참여작가 중 한 사람인 이강소의 다음과 같은 르포 기사는 
매우 현장감이 느껴져 여기에 인용한다. 

 “강정에서 작업들이 끝났을 때 그곳을 떠나는 관중들의 표정은 정말 흥미가 있었다. 야릇한 웃음기를 띤 얼굴들, 장난기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진지한 속을 버리지 않는 어정쩡하게 흥분된 얼굴들, 술 한잔 먹는 것, 밥 먹는 것, 취한 아낙네, 모든 것을 이벤트(?) 작업으로 연결시킨다.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던 것을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묘한 자기 해석을 해보려고 하는 짓거리가 얼마나 재미있고 흐뭇한지 이러한 작업들의 강점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행위작업을 하는 작가의 수가 열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고 보니 또 그 작업량이 적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1)  

 1970년대 중후반만 해도 이건용, 성능경, 김용민, 장석원, 강용대, 윤진섭 등등 <ST> 그룹 중심의 작가들에 의해서 이벤트가 행해졌으며, 대구 출신으로는 <신체제> 그룹의 이강소를 비롯하여 박현기, 황현욱, 김영진 등이 있다.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인 이강소는 전화인터뷰에서 “1979년 [대구현대미술제]가 5회로 끝나 아쉽던 차에 2012년에 달성군에서 재단을 만들고 [강정현대미술제]를 개최함으로써, [대구현대미술제]의 실험정신을 오늘날까지 잇게 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군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2) 고 말했다.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어떻게 하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문화와 예술을 중흥시켜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드느냐 하는 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수성아트피아의 역사적인 재개관을 맞이하여 대구 현대미술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오늘의 자리는 매우 긴요한 계기가 아닐 수 없다. 


ㅡㅡㅡㅡㅡ
1)  이강소, 공간 제147호, 1979년 9월호 73쪽. 
2)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 2023. 4. 21



1차 출처: 대구수성아트피아 재개관기념 학술세미나 발제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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