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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도전, 그리고 예술에의 끊임없는 열정: | 신진식의 <아이디어 아트> 출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실험과 도전, 그리고 예술에의 끊임없는 열정      
신진식의 <아이디어 아트> 출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 미술평론가
 

Ⅰ.
 신진식이란 누구인가? 이 방대한 양의 책 출판에 앞서 우리는 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1980년대 초반 이후 그가 해온 다양한 예술의 종류와 분야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기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는 물론 작가 신진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겨냥한 말이지만, 초점을 예술가들에게 맞춰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행위미술’이란 말처럼 미술이 전공인 대다수의 행위예술가들에게 있어서조차 ‘신진식’이란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존재는 생소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비밀은 신진식의 과거 행적에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유진규(마임이스트, 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의 글에도 소상히 나와 있는 것처럼 신진식은 무려 8년간이나 <춘천마임축제>에 참가, 각종 자문은 물론 다양한 퍼포먼스 작업을 펼쳤지만 그것은 공연 분야에 한정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967년의 해프닝 이후 이 땅에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져 일련의 역사적 궤적을 그려왔지만, 이른바 공연예술과 미술 간의 간극은 교류나 왕래가 뜸한 만큼 크고도 넓은데 신진식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원예술가 신진식의 성가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신진식이야말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타고난 예술적 ‘끼’로 한국의 예술계에 출몰해 숨겨진 재능을 발산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2년에 열린 [한국실험예술제]에서 벌어진 <300초 릴레이 퍼포먼스>에서 영예의 1등상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경력을 들 수 있다. 퍼포먼스의 경우, 주로 연출에 치중해 왔기 때문에 신진식이 무대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5명의 여성 행위자가 남이 벗어놓은 옷을 번갈아 입는 과정을 300초란 제한된 시간 안에 보여준 수작(秀作)이었다.  

Ⅱ. 
 신진식의 다양한 예술적 정체성에 대해 이원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신진식 작가는 1980년대부터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품을 비롯하여 퍼포먼스, 공연, 비디오 아트, 언어 실험, 실험영화 등등 실로 다양한 매체와 방식의 작업을 발표했다. 그의 예술 활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포함하고 있기에 포괄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종합예술가’이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경력은 전체 예술(total art), 혹은 총체 예술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총체예술이란 용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total’ 아트란 말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가 미분화되기 이전의 원시 집단체제에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소부족 단위로 생활을 영위하던 신석기 시대에는 소통이 원활했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특히 산업혁명 이후에는 사회가 미분화되면서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그만큼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신진식이 말한 “극과 극은 통한다.”는 언명이나 그가 예술을 통해 지향하는 상호작용, 상호소통은 바로 이러한 이상적인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Ⅲ. 
 한국의 작가 중에 신진식만큼 다양한 삶의 이력을 지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특히 그가 대학을 다닌 1979년에서 82년간은 격동기라고 할 만큼 큰 정치적 사건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1979년 10월 26일)을 시작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을 거쳐 ‘서울의 봄’, 이어진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에 예비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풍부한 대학 시절을 보낸 것이다. 

 범화단적으로 보자면 이 시기만큼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등 진영에 따라 상이한 이념과 형식, 내용이 화단을 양분한 선례도 드물다. 이른바 단색화로 대변되는 성기(盛期) 모더니즘과 이에 반발해 나타난 ‘현실과 발언’으로 대표되는 민중미술의 등장은 화단을 양분시켰다. 심지어는 대학동기 사이임에도 서로 상대편 전시회의 개막식에 참석하기를 꺼렸던 이 시기의 화단 풍경은 ‘소통’이 아닌 ‘불통’의 극명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언젠가 행위예술가 성능경이 ‘소통의 불통’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서로 소통하는 듯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통하지 않는 이율배반이 이 시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신진식의 화단경력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국제전에 파견하기 위한 작가 선정을 명분으로 삼은 미협 주최의 [앙데팡당]전과 80년대 중반 민중미술의 집결장인 [삶의 미술]전에 참가한 이력이 그것이다. 얼핏보면 양다리 걸치기 작전처럼 보이는 이 특이한 이력은 기실 알고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 시절에 무세중의 퍼포먼스극 <反 그리고 통‧막‧살>에 행위자로 참가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독일에서 막 귀국한 무세중은 본래 민중적인 입장의 마당극을 실천한 이력을 지닌 인사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삶의 신산을 겪지 않은 예술가가 어디 있겠는가. 신진식은 젊은 시절에 한쪽에서는 미술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다른 한쪽에서는 민중지향적인 소통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면서 이 양자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 나갔다. 

 이른바 게릴라미술은 이의 극명한 예이다. 1984년 5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벌어진 신문 배포 퍼포먼스 <스티리트 페이퍼/흘러다니는 종이>와 거리 퍼포먼스인 <길굿> 등이 바로 그것이다1)
 ‘굿’이란 용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한국의 전통에 사유의 닻을 내린 신진식은 나중에 이른바 동서융합, 나아가서는 이에 기반한 융‧복합예술을 지향하게 되는데, 굿이 바로 노래(巫歌), 춤, 사설, 비나리 등등이 복합적으로 어울린 융‧복합예술의 원형인 것이다. 그러니까 신진식이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준 컴퓨터 아트, 게릴라 아트, 거리 및 실내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 실험영화, 언어 실험 등등 다양한 형식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체만 다를 뿐 굿의 원형성(archetype)을 지향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Ⅳ.
 오늘날 컴퓨터 아트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신진식의 내면에는 이처럼 한국적 문화예술의 뿌리 찾기에 대한 욕망이 흐르고 있다. 사실, 1970년대 후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한 이후 신진식이 걸어온 예술가로서 삶의 이력은 다름 아닌 제나라 문화에 대한 뿌리 찾기의 기나긴 항로(航路)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초기의 프랑스 유학과 이어진 미국 뉴욕에서의 삶, 그리고 2005년, 귀국과 더불어 시작된 건국대학교 교수부임 이후의 예술행적이 대변해 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뉴욕 시절에 만난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어려서부터 굿 문화에 익숙한 백남준은 홍콩과 일본을 비롯하여 독일(유럽), 미국 등 가히 세계를 무대로 활동의 반경을 넓혀온 범지구촌적 예술가로 유명한데, 그의 ‘비빔밥論’은 다름아닌 융‧복합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신진식이 지향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무렵 신진식의 행적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1993년, 신진식은 뉴욕으로 이주 후, 1994년 백남준이 기획한 [Seoul Nymax](뉴욕 엔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한동안 본격적인 작가 활동은 물론 TV 프로듀서와 광고 영상 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는데, 이는 훗날 미디어 아트는 물론, 단편 실험영화, 단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TV 프로그램 등 멀티(다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2)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2005년에 미국에서 귀국한 신진식은 건국대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는 일과 동시에 회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 단편 실험영화,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뉴미디어 아트 등등 예술의 표현 매체를 둘러싼 다양한 형식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이의 뿌리는 대학을 마친 이후에 행한 여러 실험들과 연계된 것이었다. 강미정과 장현경이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컴퓨터 아트 퍼포먼스>(1985)와 <신진식 컴퓨터 아트 퍼포먼스>(1985)를 필두로 <빛과 움직임>전(1989), 신진식 컴류터그래픽스연구소 설립(1990), <대화형 예술>(1992), <과학+예술>전(1992), 서울-뉴욕 멀티미디어 예술축제 <Seoul-Nymax>전(1994) 등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 실린 강미정과 장현경의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Ⅴ.
  40여 년에 걸친 신진식의 예술세계가 집대성된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컴퓨터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싱글 채널 비디오 등 다양한 전시로 뉴미디어 아트 분야를 개척한 작가의 자료집으로서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모두 40개에 달하는 평론 글과 300여 장의 도판, 6개의 언어실험극의 텍스트들이 실려 있으며, 책의 구성은 1. 제1부 뉴 미디어 아트, 2. 제2부 아이디어 아트, 3. 책 속의 책, 4. 제3부 퍼포먼스 아트, 5. 책 속의 극장, 6. 제4부 평면 발언, 7. 부록 등 도합 7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필진 구성도 화려한 편인데, 수록된 글들이 모두 앞에서 언급한 분야에 정통한 학자,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작가, 문화이론가, 저술가, 마임이스트, 연극연출가, 희곡작가 등등 삶의 도정에서 신진식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작가의 삶과 예술을 잘 아는 문화예술계와 학계의 인사들이 집필한 것이어서 신뢰도를 높여준다. 이 책에 실린 300여 장의 도판을 참고하여 수록된 글들을 읽으면 신진식의 ‘아이디어 아트’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Ⅵ.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돼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신진식의 예술세계는 만일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작가 신진식이 추구하는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예술은 오르테가(Ortega Y Gasset)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대중의 발길질’에 채일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위예술가는 이 분야의 권위있는 저서를 남긴 도널드 쿠스핏(Donald Kuspit)의 비유에 의하건대 ‘양떼를 이끄는 목자’임에 분명해 보이는데, 이들은 대중으로부터 처음에는 험한 꼴을 당하거나 무시되지만, 나중에는 미술사라는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는 보상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신진식의 예술활동을 지켜봐 온 한 사람으로서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가 이런 응분의 보상을 받을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        
 
 


ㅡㅡㅡㅡㅡ

1)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인 이 책에 실린 정규호의 <게릴라미술: <스트리트 페이퍼/흘러다니는 종이>와 <길굿>을 참고할 것. 

2) 윤진섭, <실(絲),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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