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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구’: 발칸-오키나와-코리아

이영철

후렴구: 발칸-오키나와-코리아







이 프로젝트는 본인이 2000년 류블리아나를 방문하여 받았던 그 도시의 인상과 유고의 비극적인 현대사, 그리고 2004년 1월 이스탄불에 위치한 보루산(터키 최대 철강회사) 아트 센터에서 초청되어 기획했던 전시, '멋진 여행사 (Wonderful Travel Agency)' 를 계기로 해서 두번째 대화를 가지게 되었던 이스탄불 거주 평론가이자 전시 기획자인 알리 아카이(51세, 이스탄불 미리암 시안 대학 사회학 교수)와 발칸과 관련하여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성사된 전시 프로젝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카셀시 미술관 관장인 르네 블록, 독립기획자 하랄드 제만, 그리고 제 10회 카셀도큐멘터를 총기획했던 카트린 다비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시기획자들에 의해 대규모의 발칸 현대미술전들이 개최된 바 있다. 블록은 프레디시아눔 미술관 전시를 포함하여 발칸 여러 도시에서 전시를 개최했고, 제만은 세르비아 비엔날레의 시작을 열었다. 이 전시는 규모가 작지만 그런 전시의 일부 혹은 반복이 아니라 다른 맥락을 부여하면서 발칸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고 했다.
본인이 알리 아카이와 공동으로 기획했던 이 프로젝트는 세계화의 이면으로서의 발칸화(Balkanization)를 발칸 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두개의 반도(발칸과 한국)와 하나의 열도(오키나와)를 연결시켜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그 이유는 세 지역 간에 내재한 공통성 때문이다. 그것은,


(1) 한때 치열한 전쟁이 있었거나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점
(2) 언어, 문화, 종교, 관습이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라는 점
(3) 현대사에서 식민화의 경험이 있고, 냉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새로운 제국의 지배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려는 저항 운동이 강하게 잠복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이 전시에서는 1차적으로 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인과 알리 아카이는 들뢰지안(Deleuzean)으로서 예술이 처음 생겨나게 되는 연원으로서 소리의 역할에 주목하였고(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중에 리토르넬로 장 참고), 이 전시 프로젝트 안에는 구술, 노래, 기타 사운드 등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전시가 열리는 토탈미술관은 땅 밑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면서 넓어지는 동굴 형태의 미로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리의 상호 방해 보다는 소리의 상호 공명 효과를 역으로 이용하였다.
새가 반복해서 노래하는 이유는 영토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인간의 활동(전쟁, 일상, 노동, 예술)도 자신의 영토적 앗상블라주를 만드는 행위이다. 따라서 후렴구는 지역적, 지방적, 장소적 근거를 갖고 있다.

그것을 알리 교수는 율리시스(오딧세이의 로마식 표기)를 앞세워 전시의 화두로 삼기를 원했고, 나는 역사 보다는 생성, 망각에 저항하는 활성적인 기억 행위를 후렴구로 개념화하길 원했다. 고난의 현대사 속에서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 행위는 개인들 각자에게 속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지-인간-우주의 카오스모스를 드러내는 행위, 그것은 오로지 예술적 창작 행위 안에서 가능한 리듬의 반복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실제로 큐레이터들이 정한 작품들 속에 전쟁과 그 이후 상황에 대한 시각적, 의미론적 접근 보다는 신화, 방언, 드라마(영화), 노래, 서사(epic), 제례 등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은 역사, 정치적 이슈와 미학적 가치 사이에 균형점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로서, 전시를 과거에 대한 정보 전달, 재평가, 역사적 의미 부여에서 벗어나 사라져 가는 공적인 기억들, 대지-우주-나의 지극히 구체적이고 비가시적인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지각하고 명상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발칸, 오키나와, 코리아 - 이 세 지역들은 지정학적, 문화적으로 날카로운 모서리(cutting edge)에 놓여 있다. 두 반도와 하나의 열도. 발칸을 한국에 연결하고, 태평양의 코너스톤으로 불리는 오키나와까지 연장하는 끈은 무엇인가? 이 지역들은 오랜 역사와 문화, 다양한 종교와 언어들을 갖고 있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극심한 전쟁을 치렀고, 냉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불안정한 장소들이다.

발칸은 폭력, 파괴, 대학살, 그리고 새로운 군사적 테크놀로지가 시험되는 전쟁터를 떠올린다. 한때, 칸트는 발칸의 평화를 위해 '우주적 정치관'(cosmopolitisme)을 구상하며 새로운 국제 질서를 위해 국제 기구를 만드는 기발한 착상을 했었다. 그것은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그 실천들은 오늘날 동화주의와 제국주의로 드러났다. 동화주의와 제국주의는 오늘날 세계화라고 하는 보다 복잡한 변화 속에 흡수된 상태이다.

본 전시는 이런 의문들 속에서 발칸-한국-오키나와라는 지역의 지정학적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역사와 기억 간의 갈등과 교차, 공적인 기억과 사적인 기억의 관계, 미학적 가치와 문화 정치적 이슈들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탐구한다.

그러한 일치는 양자 간에 어떤 취사 선택의 위치에 머물거나 그것을 요구하는 방식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망각의 힘에 저항하는 의지력과 영리함으로 삶의 난관을 돌파한 채, 자신의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온 이타카의 왕 율리시스의 시선을 전시 안으로 불러들인다.

위험에 처한 율리시스에게는 미디어와 소통의 신인 헤르메스가 항상 그를 지켜보며 길을 인도한다. 헤르메스는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예술의 신이기도 하다. 한국과 오키나와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율리시스가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영원히 갈라놓아, 인간은 더 이상 신들과 접속할 수 없게 되었지만, 동아시아의 신화에서는 인간과 신의 경계를 갈라놓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율리시스처럼 바다에서 새로운 길을 찾건, 숲과 전원에서 아직 남아 있는 대지의 혼을 불러내건, 대중들의 분노와 희망의 노래에서건, 전시의 주제인 후렴구(refrain)는 문화적 풍경에 대한 감성을 강렬하게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동일한 기원으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화되지 않은 생득의 의미를 생각하고, 집단적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각성과 예술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해준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유형의 강제 속에서 발카니제이션은 성애적이고, 직업적이고, 사회적이고, 제례적이고 대지-인간-우주의 부딪히는 힘들 안에서 작동한다. 우리는 그렇게 접근할 필요성을 느낀다.

발카니제이션의 긍정적 가능성을 후렴구에서 찾고자 하는 이 전시는 벌겨 벗겨진 인간의 천박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 인간(homo homo)라는 새로운 차원, 혹은 새로운 야만이 드러내는 차이의 긍정성을 반복해서 노래하는 예술의 힘을 담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저장된 기억의 보관소에 의지하는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 안에 억눌린 마법적인 시간들을 풀어내고 활성적인 기억을 강화하는 정치적, 미학적 실험이다.



아타나시아 키리아카코스_소금과 하늘_2004

전시장 입구의 바깥은 「소금과 하늘」이라는 작품이 있다. 오프닝 날에는 마당이 좁아 설치하지 않았다. 소금은 사각형 면(가로 세로 각 1.5 미터, 두께 2센티)으로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하늘은 무한하다. 한정은 거리, 영역을 나타내며 최초의 한정은 어둠 속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와 움직임에서 기원했다. 소금의 결정(結晶)들은 바다의 소리, 노동과 땀을 담고 있다. 소금은 모든 것의 성질을 변화시키며 신체 노동의 결과이자, 바다의 연장이며, 고대 그리스에서는 돈을 뜻했다. 하나의 하늘과 소유와 전쟁의 경계 표시로서의 소금 사이에 인간이 있다.


세자 파커_Exercise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5:20_2003

이 전시의 첫 작품이다. 호머의 음유 시인들은 출중한 모험가이며 영민한 영웅인 율리시스를 노래하며 찬미했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율리시스가 이미 죽었다고 여겨서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망각해 버렸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우여곡절 끝에 알아낸 최초의 모험가이자 망명자였음을 상기시킨다. 이 작품은 우르소나트 드 커트 슈위트르에게 헌정된, 검의 노래 라는 음악을 연습하는 입 모양을 연속해서 보여준 것이다. 세자 파커는 슈위트르가 지은 가사 일부분과 현대의 일본 랩 그룹의 전쟁에 반대하는 일본 가사를 섞었다. 기억해 내는 것과 전쟁에 반대하는 노래의 반복 동작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현재의 것으로 재연되는 양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드리톤 하즈레디니_Abramovic Syndrome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4:30_2004

이 작품은 마리나 아브라모빅(전 유고슬라비아의 대표 작가)의 퍼포먼스를 촬영하고 그것을 참여 작가 드리톤이 비디오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마리나와 드리튼은 르네 블록이 기획한 독일의 카셀에서의 발칸 반도 관련한 심포지움 때에 함께 참석해 있었는데, 그녀는 거기서 자신과 발칸에 관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발표 대신에 즉흥적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그녀는 그냥 서서 옛날 세르비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드리톤의 비디오 작품은 그녀의 예전 작업들을 배경으로 빠르게 흘러가도록 편집했다. 개인 카메라를 가지고 그 장면을 촬영한 사람이 드리톤 한 사람뿐이어서 몇 달 뒤에 그는 그것을 가지고 비디오 작업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그 때에 드리톤은 아브라모빅 신드롬이라는 병을 앓게 되었다. 아브라모빅 신드롬은 다른 장소로 이주하게 된 아티스트만을 공격하는 병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는 작가들은 흔히 정신적 위기와 아이디어의 부재를 겪게 되는데 드리톤은 그것을 신드롬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모빅 신드롬인가? 마리나가 어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하였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새 작업을 위해 에너지와 그 밖의 필요한 것들을 모으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말은 드리톤에게 작가들이 가지는 창작의 고통, 누구나 역시 가지고 있는 그런 고통을 연상시켰고 그것이 이 작업의 모티브가 되어 준 아티스트들의 직업병 아브라모빅 신드롬이 된 것이다.


히가 토요미츠_나나무이 초신가(招神歌) part 1_01:19:00_2003 / 촬영_히가 토요미츠 / 편집_타나카 아이코 / 제작 류큐섬 역사협회

이 작품은 동경을 제외하고 아직 일본 바깥에서 전시되어본 적이 없는 필름의 스틸 이미지이다. 총 6시간이며, 현재 두개의 DVD로 편집되었다. (각각은 1시간 15분 분량) 미야코 섬 히라라 시(市), 니슈뮤라의 유하루주 유타키에서는 그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수호신을 숭배하는 의식이 매년40회가 넘게 열린다. 1회에 3일이 걸리는 이 제례식은 100년 이상 된 이 마을에서 그 이전부터 행해져 왔다. 이 촬영을 위해 작가는 4년을 공들여 섬 지역 주민들과 가까워졌고,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이 초혼제는 1백년간 전승되어 왔고 이방인이나 남성은 촬영은 물론이고 출입이 일체 금해졌다고 한다. 히가 토요미츠는 현대미술 작품을 의식하고 이 필름을 만든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인류학적 기록물로서 만든 것도 아니다. 현대미술의 아포리아적 국면 속에서 그의 존재는 오키나와가 아니라 일본 미술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탐욕스럽게 광경을 흡수하려고 하지만, 히가 토요미츠의 카메라는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나무 사이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양손으로 받으려고 하는 몸짓과 닮아있다.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진에는 제례를 찍은 사진이지만, 종교색이 전혀 없다. 생각컨대 그것은 이 기록이 사진가를 위한 것도 출판계를 위한 것도 인류학을 위한 것도 아닌, 무엇보다도 먼저 제례를 여기서 돌아볼 필요는 없으나 기록되는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라는 스탠스로 촬영된 작품은 극히 적은 수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압도적 다수는 기록자 자신을 위해, 관객을 위해, 혹은 예술과 과학을 위한 것이다. 빛나는 나나무이의 신들의 촬영은 이 점에서 인류학에서 말하는 참여 관찰이라는 개념 등으로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어떠한 과격함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영상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후각과 미각과 촉각마저도 포함한 전감각적인 것이다. 모든 접점들은 미세하며 어떤 알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히가 토요미츠.무라야마 토모에_쿠부타 섬 전쟁 체험 이야기<6부작>_단채널 비디오 영상_06:00:00_2003 / 촬영_히가 토요미츠, 무라야마 토모에 / 편집_무라야마 토모에

● 1층에서 전시되고 있는 히가의 작품 「나나무이」처럼, 이 인터뷰 작품 역시 기록하기 위함보다 우선 말하는 사람을 위함에 있다. 촬영자는 우리들의 눈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위하여 그곳에 있다. 섬 쿠투바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말은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언어 행위라는 것은 신체와 감각과 정(情), 동(動)이 기억과 연결되어 수행되는 복합적인 경험에 있는 것이다. 섬 쿠투바에 의해서만 말할 수 있는 기억은 그 말에 의해서만 정(情), 동(動)과 지성을 기억에 연결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보는 방법을 바꾸면, 말이 신체로서 감각과 정(情), 동(動)을 연계시켰을 때에만 가능해지는 현상이 각각의 목소리로 구현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작품 속에서 자신들의 전쟁 경험들을 류큐섬의 지방 언어들로 말한다. 이는 오키나와 전쟁에 대한 100명의 개인적 증언들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상영물이다. 히가 토요미츠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 미군이 주도하고 있는 『요미탄 마을의 역사』의 편집자로서의 경험 후에 쿠투바 섬에서 사람들의 전쟁시 기억을 다큐멘터리화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고장인 쿠투바 섬에서 전쟁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때, 그들은 마치 사건이 어제 발발한 듯 묘사하면서 고무되고 활력 넘치게 이야기 한다. 일본 표준어로 그들의 말들을 종이에 옮기는 것은 화자의 본래 음성을 파괴하는 듯 했다. 그들의 회상은 일련의 죽은 언어로 변한다. ● 이는 단지 구술과 문자 전승 간의 차이만은 아니다. 쿠투바 섬 언어로 말하는 것은 제국의 동화정책 하에서 반역 행동으로 금지되었다. 쿠투바 섬에서의 증언들은 일반적인 현대성의 도착, 그리고 독특한 역사적 특수성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오키나와 전쟁에 직면한다. 100개의 개인적 설명들이 전쟁지역의 고통과 어두움에 대한 순간 이행을 나타내면서, 이 영화는 지도에 없는 시공간적 영역을 표현하고 있다.


수잔 클라인버그_Blood Roll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37:32_2004

참여작가 중에는 예외적으로 미국의 여성 작가, 수잔 크라인버그의 신작을 공개한다. 이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발칸에 군대를 보낸 그 날 오후에 시작된 작업으로, 3/4 분량이 피로 채워진 유리구는 피가 튀기고 구르는 소리와 함께 중앙 받침대가 놓인 지렛대 위를 반복해서 구른다. 그리고 나서 360도 회전 한다. 이 작품의 이미지는 지하 맨 아래층의 큰 벽면(가로 7.8미터, 세로 5미터)을 가득 채우며 전시장 전체는 구르는 소리에 진동한다. 이 구의 움직임은 물리학과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도 하고 거역하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예측 불가하다. 빛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만약 누군가 감각과 의지의 사이에서 예술을 만든다면, 이 작품은 정치적/개인적 영역에서 움직이기를 희망하는 것이며 친밀하거나 드라마틱한 끊임 없는 움직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디지털로 생산되었고 사운드는 실제 사운드이다. 구슬에 비치는 영상은 그것이 구르면서 반영하는 구슬이 놓인 방의 늘어지거나 뒤틀린 이미지이다. 구 안의 피의 움직임은 피 자체의 생명을 보여준다. 색상은 피와 꿀을 상징하는 'BAL- CAN' 의 범위에서 움직인다.


엘리프 셀레비_Untitled_2004

작가는 오디세우스의 첫번째 신화적 지도에 따라 손으로 그린 다양한 동물들을 배치하였다. 원래의 고대 지도에서 세계는 국경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다. 단지 신화적 신들의 영역과 중요한 전쟁이 발발한 장소들이 표시될 뿐이다. 그것은 오늘날 권력의 신들에 의해 배치되는 정치적인 국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 나오는 동물 형상들을 10x15크기의 종이 조각에 그렸다. 오디세우스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반복들을 표현하기 위해 각 장에는 하나의 동물만을 그린다. 오디세우스에 처음 등장하는 동그란 형태의 세계지도에 동물 그림 조각들을 배치한다. 이야기에서 나오는 장소들을 따라서 지도에 동물들을 붙이고자 했고, 또한 초등학교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지리부도를 상기시키는 양식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려 하였다.


장화진_중앙청 정면도_라인테이프_300×700cm_2004

현대 문명 사회에서 '기억술'은 아주 중요하다. 아시아건 유럽이건 고대의 기억술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공공장소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원리는 시간(天)-인간(人)-장소(地)의 세 가지 이미지의 계열과 공간배치의 문제였다. 생각 속의 공간은 가능한 한 분명한 자리를 표시하면서 많은 기억의 유입을 수용하고 다시 인출할 수 있게끔 배치되어야 한다. 일상적 삶의 영역 안에서 공공성과 기억의 관계는 지극히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우리는 점점 과거를 잊게 되고 앞으로의 세대는 그냥 모르는 채로 살아갈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건축물은 철거에 관한 찬반의 결과나 흑백논리가 될 수 없고 개인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하게 문화적 의미를 함축하는 담론의 대상으로 남아야 한다. 1996년 철거된 중앙청 건물의 부재가 남긴 잔상의 이미지를 사람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망각할 것이다. 회색 펠트 위의 은빛 선들의 중앙청 도면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가는 시간 이미지의 크리스탈적 잔상들의 분절적인 결합체이다. 밑에서부터 말려 올라가던지 또는 위에서 펼쳐져 내려오든지 간에 금속성의 빛나는 중앙청은 곧 망각되어 버릴 문화적 기억의 촉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장화진은 실체성이 없는 영상을 관객과 나누기 위한 방법적인 작업으로서 현대인의 삶과 강박관념, 역사의식 등을 표현하고 있다.


테이푼 에르도그무스_Aegean_비디오 영상설치_2004

이 작품은 작가가 2000년에서 2004년에 걸쳐 에게해를 여행하며 담은 영상 일기를 보여주는 프로젝션 이미지(펼쳐진 책처럼 두 면으로 이루어진 영상)와 테세우스와 미노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연상시키는 소라, 미궁과도 같은 소라에서 마치 인생의 비밀을 말해주는 신의 목소리처럼 들려오는 사운드, 그리고 항해에 사용되는 지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설치에 쓰인 하나 하나의 재료들을 통해 여러 층위에 걸친 다의적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 두 층위는 조개와 항해 지도와 같은 소품들로 교묘하고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섬세한 연결이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소라는 자신을 거역하고도 무사히 귀향한 율리시스에게 화가 난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을 의미하기도 하며, 나사처럼 생긴 모양이 미노스의 미궁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미궁과도 같은 우리들 인생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지도들은 율리시스나 테세우스와 같은 영웅들의 항해 지도인 동시에 작가 자신이 에게해를 여행할 때 쓰던 지도일 수도 있으며, 또는 우리들의 긴 인생 항해를 위한 지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항해, 여정, 미로와 같은 의미를 통해 현실과 신화를 연결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신화 이야기를 현실, 의식의 표면 위로 드러내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신화 속에 담긴 인생의 비밀, 그리고 그러한 비밀을 알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진지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테루야 유켄_성난 피자 박스_피자 박스에 프린트와 어린 학생들의 드로잉_2004

테루야 유켄의 모든 작품 안에는 오키나와가 들어 있다. 금년 8월에 미군 헬기가 오키나와의 국제 대학에 추락한 사건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작가는 사고 현장에서 어린 아이들의 사생대회가 열었고, 박스 안에 그림을 그려 넣도록 했다. 추락 사고 직후, 미군은 현장을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미군을 제외한 누구도, 현의 소속 경찰들 조차도 현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군 병사들의 주문을 받은 피자 배달 가게는 안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허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미군이 60년간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1개월 후, 작가는 미국 뉴욕타임즈에 실린 <피자 구린내가 나는 배달에 오키나와현 주민들이 화나다>라는 기사에 충격을 받아 이 작업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테루야 유켄는 오키나와의 자연 등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오키나와의 전통 염색물, 공예 수법의 기모노에 낙하산병을 그린 작품으로 미국 올드리지 현대미술관의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피해자 의식만으로는 안 된다>며 미래를 짊어진 어린아이들에게 사고현장을 보게 하기 위해서 사생대회를 만들고 이것으로 자신의 설치 작품을 제작하였다. 피자 박스에는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인쇄되어 그림과 함께 사건 메시지를 전달한다. <4일 동안 60명 이상이 사생대회에 와 주었다. 목탄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아이도 있는가 하면 나무의 부러진 가루로부터 새싹을 그린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테루야는 말한다. 다른 작품들과 더불어 이 피자 박스 작품의 전시는 토탈미술관과 동시에 동경 후나카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테루야 유켄_Notice-Forest_2004

테루야 유켄은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주는 종이 봉투에 두 개의 큰 구멍을 내어 찢어진 부분들을 안쪽에서 접어서 나무를 만들어낸다. 그 나무는 간신히 봉투에 붙어있다. 2차 세계 전쟁 당시에 오키나와 섬은 비행기의 집중 폭격을 받아 아이와 주민들은 모두 동굴로 들어가 숨었다. 동굴은 오키나와 말로 GAMA 라고 하며, 이에 관해 집단 자살, 생존자들의 진술 등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오키나와 출신의 이 젊은 작가는 전 세계 어느 곳이건 맥도널드 종이 봉투를 이용하여 그 안에 나무를 심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나무의 모델은 오키나와를 포함하여 세계 여러 곳에 있는 실제 나무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작가는 나무의 이미지 모델을 보고 매우 정교한 3차원의 나무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이번 전시를 위해 토탈미술관 사무실에서 7시간에 걸쳐 만들었다.


차도연_포옹_35mm 필름_00:13:00_2004

이 남자는 70년대 초반 베트남 전쟁의 말기에 파병군으로 베트남전을 겪었다. 그 역사적 사건이 그의 가족의 지금 모습을 결정하는 전환점이다. 베트남 파병군이었던 남자는 전장터에서 홀로 남게 된 후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난민으로 보트 피플에 영입되고 이후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살아온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를 전사자로 알고 지내던 딸은 어릴 적 미국 LA로 이민을 가고 그곳에서 백인 남자와 결혼해서 8살 혼혈 아들을 두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60세의 초로의 남자는 미국에 있는 딸의 소재지를 알게 되고 30여년 만에 자신의 생존 여부와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는 딸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증인으로서 하나뿐인 혈육인 자신의 딸을 채택하고 자신의 영상 편지를 보낸다. 재회에 대한 욕망도, 잃어버린 혈육이라는 감성적 집착도 떼어낸 지 이미 오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고 한국인이 뉴질랜드의 베트남 난민이 되어버린 지금의 사실이 그들 모두에게 큰 파장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덤덤하게 그들의 가족사는 현재 각자 지금 살고 있는 공간과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영상은 회화에서 초상화를 재현하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된다. 미술 작품 속의 초상화를 감상하듯 인물들은 그렇게 회화적인 공간 속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초상화 속 인물을 바라보며 상상하듯 인물은 초상화 속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삶의 단면 그 찰나를 얼려버린 듯한 회화적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홍성민_피린과 루싸 시퀀스_실험극 「잠자는 아름다움」에서 발췌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6:00_2004

이 영상작품은 같은 작가가 연출한 연극무대(잠자는 아름다움)를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30여년간 TV 광고를 통해감기 조심하세요 라는 감기약 캐릭터로 잘알려진 판피린걸과 제약회사의 우루사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픽션을 만들었다.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eeping Beauty 스코어를 백그라운드로 판피린걸은 연극행위 중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를 외치는데, 전쟁- 잠재적 기억 그리고 우루사곰-단군신화가 감기약-간장약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알레고리를 창출한다


드리톤 하즈레디니_To the Millionire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2:30_2003

우리의 삶 가운데는 돈이 중력의 법칙들을 따라야 하는 지구상의 다른 물질들과 같은 그냥 물질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다. 코소보에서의 전쟁 기간 동안 나는 독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코소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멀리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느 날 내 가족은 다른 수 만의 가족들처럼 코소보로부터 추방당하게 되었다. 코소보 경계를 지난 후에 그들은 마케도니아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거기서 저지 당하고 아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발라카라고 불리는 땅에 남겨지게 되었다. 어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이 거기서 수 만의 사람들은 며칠을 지내야만 했다.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코소보에 있던 나의 형은 일주일 만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살아있다고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긴 말이야, 금으로 된 동전을 입에 물고 있어도 죽을 수 있는 곳이야(돈이 있어도 아무 것도 살 것이 없는 허허 벌판이므로)'라고. 형의 이 말은 내 머리 속에 전쟁이 일어난 코소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하는 것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했고, 그럼으로써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야쿱 페리_DONT TELL ANYBODY (52.129)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12:00_2003

유고의 분열을 다룬 작품이다. 한 봉의 쌀이 세어지면서 유고 연방을 구성했던 소수 민족들의 국가들로 나뉘어졌다. 그는 말한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닫혀진 공간이 좋을 것이다. 며칠 동안 네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1킬로그램의 쌀 포대에서 쌀 알갱이를 세는 퍼포먼스를 한 후에 나는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모은다. 아마도 이 세는 과정 혹은 예배 후에 나는 내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될 것이다.'


타카미네 고_운타마기루_컬러영화_02:00:00_1989

이 영화는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다성적인 내러티브와 판타지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타카미네 고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꿈과 현실, 이 세계와 초월 세계, 인간과 영혼들, 이 모두가 1972년 일본으로 반환되기 전에 오키나와 상황을 다루는 이 이야기 내에서 혼합된다. 이야기는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한 사토와 닉슨의 협정으로 시작하는 오키나와의 일인 희극 와타부 쇼(글자 그대로 '나는 뚱뚱한 배를 가졌다.')에 근거한다. 현재 상태로 남든가, 독립하든가 아니면 일본으로 복귀하든가 하는 것 사이에서 오키나와의 선택은 이루어져야 했다. 영화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어 야마토 시대가 도래하면서 끝난다. 마레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우두머리인 니시하라가 다이나마이트를 이용해서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은 잃어버린 꿈의 메타포이다. 기루가 머리에 창이 찔린 채 해변을 헤매일 때, 오키나와의 운명은 드러난다. 꿈을 훔친다/도둑맞다라는 순환적 내러티브를 사용하면서, 이 영화는 오키나와가 헤쳐나가야 했던 시대와 그 시대의 꿈이 서린 장소들을 탐사한다. 칼리가리 영화상과 베들린 영화제를 포함해서 일본 및 해외 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한 작품이다.


Private Images of Ryukyu: J. M.('Shiteki satu mugen Ryukyu: J?M')_00:54:00_1996

이 영화는 1996년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의 오키나와 방문에 의해 고무된 것이다. 독특한 카메라 웍은 오키나와의 메인 섬 북부 지역의 성 주변과 촌락을 지나, 해변을 따라 떠돌며 거니는 메카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촬영, 토론 장면과 sanshin(오키나와의 shamisen)과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메카스는 실제로 오키나와에서의 이러한 이미지에 의해 고무되었다. 리투아니아로 가는 여행의 흔적들과 오키나와 드림쇼는 같은 시공간에서 상영되었다. 메카스의 출국 이후에 타카미네는 오키나와에 머물렀고 영화작업을 계속하였다. 카메라는 유쾌하게 1996년 오키나와의 교차 지점들을 담는다- 타카미네 어머니의 집에서의 휴식, 그의 형제 자매와 함께하는 공동 묘지 방문, 이동하는 차에서 촬영된 도시 풍경, 카데카루 린조의 스튜디오 녹음, 거북이 형상을 한 오키나와 묘지 앞에서의 캐리비안 댄서의 춤과 노래, 그리고 철거되기 전에 류큐 입법부 빌딩 밖 계단 위에서 shanshin과 함께 손잡고 노래하는 흑인 음악가. 오키나와 드림 쇼의 동시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야쿱 페리_Three Virgins_단채널 비디오 영상_2003 ● 야쿱 페리_HELP ME, SAVE ME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10:00_2003

작가는 오노 요코와 존 레논 사이에 먼거리 통화 상황을 설정한 후, 둘 사이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가운데 개입해 들어가 존 레논의 위치에 자신을 놓고 오노 요코가 존하고 부르면 작가는 존의 위치가 되어 자신의 이름 제이콥을 반복적으로 답하며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제스처를 보인다. ● 언제나 내가 집착하는 몇 개의 질문들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미술은 누구에게 운명 지워진 것인가? 미술에서 나의 장소는 어디인가? 나는 대답을 위한 시간이 다가 올 때까지 사람들의 충고 대로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 나는 즉각적으로 도움과 대답을 찾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군가가 나의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나에게 주기를 희망하면서, 나는 나의 작품들과 사람들의 사진들을 캠코더 앞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박미나_Old City_15 man-made colors from Armenian Quarter, Christian Quarter, Jewish Quarter, and Moslem Quarter_디지털 프린트_63×63cm_2004

예루살렘에 있는 고도 안에 4개의 구역들이 있는데, 그 곳은 종교의 근원지이며, 또 그 때문에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종교로 나누어진 4개의 quarters는 Armenian Quarter, Christian Quarter, Jewish Quarter, 와Moslem Quarter이다. 각각의 quarters에 팬톤(Pantone), 사진기, 수첩과 필기 도구를 가지고 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그 곳에 있는 색들을 팬톤과 비교하여 작성한다. 나무나, 하늘 등 자연색은 제외한 사람이 만든 것- 건물, 문, 표지판의 색등 -15개의 색들을 팬톤과 비교하여 적는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그렇게 채집한 색의 번호들을 가지고 프린트를 만드는데, 그 색을 가장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서 색 하나 하나를 별색으로 프린트 한 작업이다. 하나의 quarter가 15개의 색, 4개 quarters 합하여 60개와 글자는 silver, 61개인 별색으로 프린트 하였다. 각각 비슷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색을 가지고 있는 quarter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각각의 종교들과 비교하여 볼수 있다. 또 프린트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팬톤을 기준으로 사용하였다는 것과 프린트하는데 각각 별색으로 프린트하였다는 점이다.

예) Moslem Quarter
S1-9 C=0 M=0 Y=10 K=0
S9-9 C=5 M=3 Y=10 K=0
S11-8 C=5 M=5 Y=20 K=20
S22-6 C=0 M=15 Y=35 K=0
S22-7 C=0 M=10 Y=25 K=0
S22-8 C=0 M=5 Y=15 K=0
S36-6C=0 M=25 Y=40 K=0
S36-7C=0 M=20 Y=35 K=0
S36-9 C=0 M=10 Y=15 K=0
S56-8 C=0 M=20 Y=25 K=0
S97-8 C=0 M=30 Y=20 K=0


아타나시아 키리아카코스(Collaboration w/ 정희숙)_Invitation: Moons rising_혼합재료 설치_2004

서로 마주 보면서 떨어져 있으나 동시에 함께인 두개의 웨딩 드레스는 아주 천천히 순수함, 여성성, 잠재성 그리고 희망의 다른 상징들이 된다. 두 개의 드레스 모두 여성이 되려고 하는 작은 소녀의 꿈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변화의 시간 속에서 한 문화가 다른 문화가 되는 전통의 초상이자 한 문화의 영향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두 명의 작가가 서로 만나는 순간에 관한 것이며 끊임없이 분리되고 다시 지어지는 꿈과 같이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두 개의 웨딩 드레스. 하나는 서양으로부터, 하나는 동양으로부터의 드레스. 아름답고 화려하며 각 각의 드레스는 그들이 온 장소의 미학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드레스들은 라이프, 문화를 통해 시간 안에서의 여행에 관한 것이 된다.


세자 파커_Exit Music(For a film)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10:20_2003

이 작품은 전시의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제목은 '영화를 위한 음악 출구'이다. 아무런 말도, 서브 타이틀도, 음악도 나오지 않는 이미지들은 혼자 고립된 정적인 상태에서의 시간의 흐름, 지극히 정신적 이미지mental image를 시각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관객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단지 다른 곳에서 저명한 음악가인 브레드 멜드흐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한때 피아니스트였던 세자 파커의 파리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비디오 이미지와 함께 아름다운 영상이 기억의 지대로 우리를 초대한다. 슬라이드 이미지들은 20세기의 영웅, 로버트 발제가 정신 병동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판지로 만든 추상적인 기하학 형태들이다. 작가는 이 오브제들은 전쟁에서 뿐 아니라 창조자인 인간들에게 헌정된 것들이라 말한다.
로버트 발제는 정신과 병동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마이크로그램microgrammes'을 썼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옛날 지나간 시기의 독일 언어의 아름다움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호머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고립된 세계에 갇혀버린 율리시스처럼(그는 온갖 역경 속에서 집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울었다) 로버트 발제 역시 자신만의 세계에 오롯이 홀로 있다.

인간의 또 다른 비극, 그는 추방되었을 뿐 아니라 소통 불가능한 자신의 닫힌 세계 안에 혼자일 뿐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분간할 수 없음은 되기(과정)라고: 예술가와 작품이 인지할 수 없는 '되기'는 세계의 모든 지리적 상황이며 또한 분절된 발칸의 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계화된 모든 대중이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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