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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기무사 터에 새롭게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하계훈

산업사회를 지나 후기산업사회와 정보화사회로 이행해가는 우리들의 공간 환경은 도시 안의 몇몇 시설을 더 이상 그 자리에 위치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그대로 용도 폐기되거나 확장된 도시의 외곽으로 이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가 종교적 열정이 최고도로 이르렀던 시절에 많이 조성되었던 종교 관련 시설, 근대사회의 대량 운송시설인 철도교통과 관련된 시설, 소음과 공해물질을 발생시키는 화력 발전시설이나 공업생산 시설, 그리고 이러한 공간과 연관된 저장 시설 등이다. 각 나라마다 이러한 시설은 문화적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이러한 공간을 적절한 문화시설로 바꾸는데 있어서 기존의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기능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시설을 철거하고 새롭게 공간을 조성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절대적인 정답은 없지만 해당 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할 경우에는 당연히 리노베이션을 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는 역사적 인물의 생가 터나 역사적 사건을 증언하는 기념관 등을 들 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덕수궁에서 경기도 과천의 산기슭으로 이전한 뒤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온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 옆 소격동 국군기무사 터에 새롭게 공간을 마련하여 곧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 장소의 역사를 찾아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왕권정치의 독주를 방지하고 통치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기관인 사간원, 학문과 정치의 중심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의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그리고 그 후에는 국왕의 친인척 사무를 관장하는 종친부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수도육군병원과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으로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특무부대, 방첩부대 등의 초기 명칭에서부터 국군보안사령부를 거쳐 1991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국군기무사령부가 이 공간을 사용해왔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국군내 군사 보안 및 방첩, 범죄 수사를 맡는 기구로서 소격동에는 1971년부터 2008년까지 37년간 자리해 왔는데, 이러한 공간은 명칭이나 기능에서 미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시대적으로도 위압적인 느낌이나 감시, 구금 등의 단어들이 연상되고 실제로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는 한 울타리 안에 인접한 군병원에서 현직 대통령이 머리에 총을 맞은 상태에서 주검으로 그곳에 안치되기도 했던 우울한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이곳에 함께 있었던 국군서울지구병원은 인접한 청와대의 대통령에 대한 건강과 안전을 담보해야 된다는 이유로 기무사가 이전한 후에도 2010년 말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소격동에 신설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신축과 리모델링이 혼합되어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두 가지 방법 가운데에는 신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본관으로 볼 수 있는, 대로에 인접한 붉은색 벽돌 건물은 리모델링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건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들은 옛 국군기무사 부지의 이런저런 시설들을 허물고 새롭게 지은 건물들인데 미술관의 기본 기능이나 공간의 크기 등을 비교해 볼 때에도 이렇게 새로 지은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의 구서울역 역사나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와는 다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부지 전체를 놓고 볼 때 국군기무사령부라는 공간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재사용된다는 의미에서 공간의 재활용 혹은 공간적인 리노베이션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징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된 공간 가운데에는 우리의 기무사터처럼 비문화적이거나 우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새롭게 문화공간으로 탄생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예로서 국내적으로는 서대문형무소박물관을 들 수 있고 외국의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태인 대량학살의 현장을 기념관으로 바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전세계 20여개 홀로코스트추모관들, 그리고 군의 요새와 포로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1986년 국가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관광자원화된, 샌프란시스코 만에 자리한 알카트라즈 섬(Alcatraz Island) 등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술관의 관점에서 볼 때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신축과 리모델링이다. 우선 첫 번째로는 애초부터 미술관 용도로 빈터에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에는 완공 후의 건물의 사용 용도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모든 시설과 구조를 그 용도에 맞게 설계함으로써 공간 효율을 최적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처음부터 빈 땅에 미술관을 짓는 것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기존의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것보다 설립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인 리모델링 방법이 언제나 더 좋은 것도 아닌 것이 이러한 공간은 원래의 사용 목적에 맞게 지어졌으므로 미술관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공간 환경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루브르박물관과 같은 궁전을 미술관으로 용도변경한 경우에는 천정의 높이라든지, 전시실 내부의 화려한 장식 등이 미술관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공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소격동에 새로 문을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건물 가운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바라 볼 때 우측에 있는 본관 건물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기인 1929년에 건축가 박길룡에 의해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으로 설계되어 해방 후 서울의대 제2부속 병원 등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이다. 이 건물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 375호로 지정되어 건물 외관을 비롯한 내부 인테리어의 상당부분을 현상태로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의 공간 가운데 제한된 부분만 리모델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술관 부지 안의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에는 기존의 시설을 철거하고 미술관 공간의 기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는 이번에 개관하는 공간의 특징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고 있다. 첫 번째 ‘무형의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이 미술관 공간이 주변의 역사적 공간들과의 충돌을 방지하고 경복궁과 북촌이라는 역사적 장소 속에서 공간적 맥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랜드마크적인 건물로 탄생하는 것을 버렸다는 점이다. 최근에 신축되는 국내외의 미술관들이 대부분의 경우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건축가에게 설계가 의뢰되고 있으며 그로부터 미술관의 기본 기능이나 성격보다는 설계자의 특성을 드러내는 건물 그 자체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추세에 비하면 이번 소격동 미술관은 그러한 추세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참신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필자가 답사해 본 소격동 미술관 공간은 강한 인상을 주는 특별한 공간은 별로 없었지만 차분하게 미술관의 본 역할에 동원될 수 있게 잘 설계되어 있으며 관람자의 편의를 고려한 시설과 공간의 배치도 눈에 띠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간과되지 말아야 할 점은 국내외의 미술관들 가운데 무형의 미술관이라고 표현되는 수수한 외관을 극복하고 관람객들로부터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미술관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내실있는 운영과 수준 높은 소장품들, 그리고 전문성에 기반을 둔 훌륭한 전시에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표방하는 소격동 미술관의 성격은 ‘열린 미술관’이다. 이것은 세 번째로 표방하는 ‘군도형 미술관’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미술관 울타리 안에 하나의 건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실과 교육실, 자료실, 그리고 영상이나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공간 등으로 각각의 건물들이 마치 여러 개의 섬처럼 구성되어 있으면서 지하공간이나 건물 시아의 브릿지를 통하여 상호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미술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열린 공간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열린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접근이 허락된다는 민주적인 의미를 갖는다. 각각의 공간의 특성에 따라 관람객의 필요에 맞춰 개방되는 공간은 근대 미술관의 탄생에 내포된 미술관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구현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열린 미술관은 고도의 보안과 관리의 기술이요구되며 이에 수반되는 예산이나 인력 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우범지역에 가깝게 악화되거나 도시의 새로운 슬럼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개관할 소격동 미술관은 경복궁에서 덕수궁을 거쳐 과천으로 이전해가며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반세기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기관으로서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모멘텀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격동 미술관은 과천에 위치해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에서 드러난 단점을 보완하고 국민문화 향유와 현대미술의 발전 뿐 아니라 관광산업의 주요한 자원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이 적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새롭게 개관되는 미술관이 국제적인 수준에 걸맞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운영 조직과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확장된 미술관의 운영 규모에 걸맞은 예산과 업무처리 절차의 전문성과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은 우리 미술계에 또 하나의 짐덩어리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1981년 기무사 부지 안에 테니스장을 설치하는 공사 때 종친부 건물이 이웃한 정독도서관으로 이전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격동 부지 안에 있는 다른 공간들과의 맥락적 연계성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종친부 건물들은 미술관 경내의 시설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종친부와 같은 문화재의 관리 소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업무 소관 정부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문화재청이므로 앞으로 관할권이나 책임문제가 애매한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해결방법을 쉽게 찾지 못하고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이 있어서 이에 대한 적절한 사전 정리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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