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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의 체계적인 관리방안

하계훈


수장고의 체계적인 관리방안

하계훈


박물관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과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그 것을 연구하여 전시나 교육에 활용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삼는다. 이러한 박물관의 기능과 임무는 국가마다의 박물관문화 성장 수준이나 박물관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관점에서 시기적으로 보면 과거의 박물관이 유물과 자료를 보존하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면 현대의 박물관들은 이러한 보존을 염두에 두면서도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교육이나 홍보, 관람객들의 여가문화에 활용하는 쪽으로 그 방향이 선회하고 있는 것이 최근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박물관 수장고와 연관된 두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보호(protection)와 보존(preservation)일 것이다. 박물관의 수장고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그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여 유물의 수명을 최대화함으로써 해당 유물로부터 창출되는 문화적 가치와 혜택이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 다가올 그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박물관 관계자들은 수장고의 안전과 최적 환경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하는 수장고 공간에는 결국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 때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학예연구적 측면을 강조하는 측과 교육이나 홍보 마케팅을 강조하는 측, 보안과 안전을 최우선의 임무로 하는 측, 그리고 경영적 관점에서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고려하는 측 등에서는 각자의 업무와 입장에 따라서 수장고의 운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박물관 운영에서 경영적인 측면이 중요한 관심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면서 박물관 공간은 수익성이 있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경우 수장고는 후자에 속하게 되며 전시장이나 교육시설 등과 같이 박물관 관람객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는 공간의 특성 때문에 공간의 중요성이나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경영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박물관에서 수장고의 비중이 크다거나 그 안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의 양이 많다는 것은 곧 수장고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서 해당 박물관의 재정지출이 많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일반 가정에서 오래되어 낡은 물건이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쉽게 버릴 수 있는 것과 달리 박물관의 자료들은 낡을수록 더 조심스럽게 관리하면서 보관하여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최근 일부 박물관들은 소장 자료를 수장고에 보관하기보다 상설전시나 기획전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거나 대여, 그리고 처분에 대해서 적극적인 검토를 실시하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 자료를 처분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해당 자료가 박물관에서 취득한 것이 아니라 기증이나 기부를 받은 것일 경우 기증, 기부자와의 기증, 기부조건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역사가 오래된 박물관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료의 양이 증가함으로써 수장 공간의 증가가 수반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British Museum의 경우에는 박물관 안의 수장고 시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의 포화 상태에 이름에 따라 현재 박물관 외부 두 곳에 수장고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한 박물관의 수장고가 분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의 양쪽 의견이 있다. 찬성 의견 가운데에는 유사시 자료의 전부를 잃지 않아도 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반대 의견으로는 운영의 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새로 증설되는 수장고는 시간적으로 최근에 설치됨으로써 이전의 수장고 시설에서 미처 갖추지 못한 시설이나 이전 시설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바로잡는 기회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수장고에 인접하여 연구 공간이 병설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박물관 소장품과 관련된 전문연구자들이 수장고에 보관된 자료를 보다 쉽고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영국의 National Gallery의 경우에는 지하 층에 Gallery A라는 공간을 마련하여 지상의 전시장에 전시되지 않는 700점 정도의 작품들을 전시실과 다르게 촘촘하게 벽에 걸어놓은 채 보관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수요일 오후에 한하여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일종의 열린 수장고 개념으로 이 공간에 보관된다. 이곳에 전시, 보관되는 작품 가운데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도 섞여있다. 일부 작품들은 보존 상태가 불량하거나 작가를 밝히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미술관 측에서 보존과 복원을 위한 후원을 유도하는데 이용되기도 하고 작품의 제작자를 밝히기 위하여 여러 사람에게 개방됨으로써 보다 심층적인 관심을 유도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소장 자료가 수장공간을 넘치는 상황에서 일부 박물관들은 국내외 유사기관과의 협력 사업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에르미타쥬미술관의 경우에는 2009년부터 암스테르담에 에르미타쥬-암스테르담센터(Hermitage-Amsterdam centre)라는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에르미타쥬미술관 소장 작품 가운데 일부를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 경우 에르미타쥬미술관의 입장에서는 수장고 공간에 보관하고 있었을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공간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되는 단순한 이득 뿐 아니라 암스테르담이 가진 관광자원을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관광객 홍보효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쥬미술관을 찾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수장고가 설치되어 있다. 박물관, 미술관의 수장고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24시간 모니터되며 출입기록이 상세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2008년 주경의 드로잉이 분실되는 사고를 겪은 국립현대미술관은 2011년 문화관광부 감사 지적사항을 바탕으로 수장고의 보안을 강화하였다. 2011년 5월 3일자 Korea Herald의 보도에 의하면 미술관측은 수장고 진입 단계를 3중으로 강화하고 보안장치를 설치했으며 수장고 출입자의 기록을 수기와 함께 디지털 기록으로 이중 관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수장고의 출입이 보안 측면에서 철저하게 설계되는 것과 함께 유사시에 유물과 인력이 안전하게 대피,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장고와 관련된 법령은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시행령 제 10조의 박물관및미술관의 등록에 관한 시설에 수장고를 의무적으로 갖추게 되어있으며 화재․도난방지시설, 온․습도조절장치 역시 의무적으로 갖추게 되어 있다. 국공립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우에는 대부분 설계 단계에서부터 수장고를 마련하고 있으며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우에는 상당수의 기관들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볼 때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규모의 박물관 미술관에서는 공간 활용의 제한이 있으므로 공간 설계를 할 때 전시장과 사무실 등의 필수공간을 할당한 이후 자투리 공간에 수장고를 설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지양되어야 하며 ICOM에서는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장고의 설치는 지하실이나 다락방에 설치하는 것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외국의 중요한 박물관, 미술관의 경우에는 수장고 관리에 있어서 책임자를 선정하여 의무와 권한을 명시하고 수장고 운영에 관한 매뉴얼을 작성하여 세세한 사항에 대해서도 유사시에 대응 조치하는 절차와 방법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라한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교육과 실습을 실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미술관 협회의 보안위원회에서 채택한 권고안에 따르면 관장이나 VIP 인물이 갑작스럽게 수장고의 개방을 요구할 때의 대응방법이나 수장고 안에서 외부의 관련 전공자들의 교육이 실시될 때의 보안 전문가의 입회 방법, 심지어 수장고의 보안을 위하여 제작되는 출입 신분증의 사진의 크기까지 명시되어 있기도하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수장고 시설의 유지에 있어서 미흡한 만큼이나 수장고 관리의 세부적인 규칙이나 이러한 규칙을 관련자들에게 숙지시키고 유사시에 대응하는 훈련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포함하여 공립과 사립 박물관, 미술관에 있어서 수장고의 체계적인 관리와 운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박물관, 미술관 담당자들에 대하여 수장고의 중요성과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세워질 수 있도록 그들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정립을 바탕으로 수장고의 시설과 운영이 정상화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수장고 운영에 관련된 인력의 전문적인 훈련과 교육, 그리고 직무와 관련된 윤리의식의 강화 등의 프로그램이 지속적이고 항상 새롭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관람객들이 더욱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표현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증과 기탁 행위가 증가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전시공간이나 수장 공간의 증설이 필요하게 된다. 

수장고의 관리와 운영은 기술적인 측면과 안전의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이 부문에 대한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관련자들에 대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수장고의 시설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운영 매뉴얼의 최적화에도 항상 노력하여야 하며, 관람객들로부터 격리되어있는 공간인 만큼 출판물이나 보고서 등의 자료를 통하여 간접적이나마 수장고의 존재와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관람객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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