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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는 전도성(Conductive) 오브제의 소통과 치유

하계훈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는 전도성(Conductive) 오브제의 소통과 치유


하계훈(미술평론가)



예술가들은 대부분 감수성이 풍부하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지나치는 대상이나 상황을 놓치지 않고 거기서 작품의 모티브를 이끌어내며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것을 감지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속성은 창작의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지나친 상상이나 조울증으로 작가의 일생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결국 훌륭한 작가로 남는다는 것은 그 작가가 가진 감수성을 어떻게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주현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보통의 작가들보다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주현은 작업을 통해 감각의 교류와 경험의 공유,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체간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이주현은 자신이 다루는 작품의 재료가 작가와 관람자들에게 접촉되고 촉각적으로 감지되는 과정을 통해 감각을 공유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호 공감과 교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을 중요시한다.


스스로 공예 분야의 작가임을 밝히지만 이주현의 작품은 장르를 한정하기 어려운 측면을 보여준다. 이주현의 작품들은 형식적 완성도나 숙련성과 함께 주제면에 있어서 개념적이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적인 설치미술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작가가 다루는 재료는 돌에서부터 금속과 나무, 고무 등 매우 다양하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를 다듬어 인체의 손이나 발, 가슴 등의 부위에 접촉되는 오브제를 만들어내는데 이 때 완성된 작품들은 단순한 조형성을 지님으로써 객체화된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가 인체와 접촉하여 체온을 전달하고 작품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감각 가운데 미술작품에 적용되는 주된 감각이 시각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이주현은 시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작품의 속성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보조적 수단이자 시각적 한계성의 대안으로서 촉각을 제시한다. 작가에 의하면 시각으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의 외피의 조형성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주현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조형성을 넘어서기 때문에 시각적 수용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작가는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의 해석과 수용을 위해서 시각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촉각의 동원을 제시한다. 


돌이나 나무를 깎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 명상의 과정을 겪어 나아간다. 작가는 손수 돌과 나무를 깎아 나아가는 과정에서 재료 안에 작가의 에네지와 기를 불어넣는다는 상상을 심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다시 인체에 밀착되어 적당한 촉각과 오브제의 무게감을 통해 작품과 우리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이끌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작품이 인체에 부과하는 적절한 무게에서 발생하는 압박과 두 이질적인 물체의 밀착에서 발생하는 열전도 현상을 주목한다. 작가로부터 작품으로, 다시 작품에 밀착된 인체를 통해 전달되는 온도와 에너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보이지 않는 양자간의 교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주현의 작품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서의 조형성을 넘어서는 치유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주현의 브로치 작품들도 대부분 금속공예 작품들이 추구하는 조형미나 의상과의 상관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인체와의 접촉과 감정적 교류가 우선적으로 고려된 작품들이다. 이주현의 브로치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은 대보거나 손가락을 맞춰보도록 홈을 파낸 듯한 형대로 다듬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작품들 역시 장식성보다는 접촉을 유도하고 감정의 교류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주현은 1층 전시공간을 관람객들과의 감각적 교류를 이끌어내는 기존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2층 공간의 입구에는 라텍스로 좁은 입구를 설치하여 공간에 들어서는 관객들이 자신의 어깨에 닿으며 적당한 압력을 가해주는 물질의 촉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새로운 재료의 실험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기에는 세콰이어 통나무로 제작된 받침대 위에 검은색 대리석으로 깎은 <Emotive Anchors:18'>과 같은 작품이 놓여있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눕거나 앉아서 작품을 체험해볼 수 있다.


아프리카 부두족 사회에서는 주술사가 다루는 도구를 아무나 함부로 만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주술사가 사용하는 도구를 단순한 오브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기가 담겨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도구를 만드는 일 자체도 신성시하여 제작자를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비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주현의 작품에서도 그것은 단순한 작품으로서의 시각적 오브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정에서의 작가의 명상과 치유의 희망,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통해 인체와 교감하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등이 마치 부두족의 주술도구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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