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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연 /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여성

하계훈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여성


하계훈(미술평론가)



정연연은 여성을 그린다. 동서양의 미술사를 훑어보면 신화에서부터 초상에 이르기까지 화가가 여성 모델을 그려 온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른다. 그러니 정연연의 작업은 그리 새로울 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묘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가는 여성의 관점으로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의 역사적, 사회적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여 그것을 시각화한다. 그녀의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은 사실적이기보다는 몽환적이고 관능적이며 때로는 도전적이기도 하다. 화면 밖으로 관람자를 응시하기도 하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몽환적이면서 도발적이기도 하며 자기 내부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감성에 몰입하는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다. 



정연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얼굴에 눈썹이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의 의도가 눈썹의 모양에 따라 형성되는 인물의 인상에서 오는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은 여성으로서의 보편적인 인간상일 뿐 개성을 지닌 인물로서의 개별적인 여성이 아닌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어쩌면 정연연의 여인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로 대표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는 불평등과 종속의 관계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근력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과 공격성을 요구하는 전쟁에 의존하는 고대사회나 그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어 온 근대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를 거쳐 오면서 남성에 비하여 왜소하고 힘이 모자라고 호전적이지 못한 여성이 사회의 주도적인 위치에서 배제되어 온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도 있을 수 있고, <제 2의 성>을 쓴 시몬느 드 보봐르의 견해처럼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길들여졌다는 견해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의 신화에서 중세의 전설과 근세의 문학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그 자체로서의 인간성을 발현하기보다는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름다운 존재나 지혜로운 존재, 또는 질투심 많은 존재나 남성의 의지와 믿음을 시험하는 존재 등으로 묘사되어져 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도 세 명의 여신들과 사이렌이라는 여성이 등장하고,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청년시절에 그의 가족에 의해 행해졌던 유혹의 실험 에피소드에도 여성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중세 유럽인들은 밤에 돌아다니는 여성이 무서운 괴물로 변한다는 소문이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마녀의 존재를 믿으며 여성을 부정적 존재와 결부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여성의 남성을 향한 태도는 어쩔 수 없이 반영적(reflective)이고 종속적일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정연연의 작품에서는 이렇게 역사를 살아 온 여성성을 담아내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는 여성의 특징을 부드러운 얼굴의 사실적인 표현과 화장기가 묻어나는 피부의 색감, 부드러운 목과 가슴, 그리고 팔과 하체 등의 신체부위가 만들어내는 곡선으로 표현한다. 인물의 얼굴과 손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에 바탕을 두고 표현된 반면에 모발과 의상부분은 평면적인 화면의 구획으로 표현되고, 그 구획 안에서는 단색조의 도안과 문양이 조밀하게 화면에 펼쳐지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사방으로 전개되는데 그 움직임 역시 기본적으로 곡선적인 궤적을 남긴다. 작품 속의 모발 부분은 단색의 펜 드로잉으로 화면에 조밀하게 식물이나 기하학적 이미지들이 표현되기도 하고 눈썹이 없는 여인의 작은 얼굴이 표현되거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타내는 글귀가 적혀있기도 한데 이러한 드로잉은 결국 여성들의 의식 속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엉켜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연연은 이러한 여성의 모습을 연작으로 제작해왔으며 작가가 주로 선택하는 색에 따라 흰색, 붉은 색, 그리고 검은 색 등의 물감으로 주도하는 인물들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이러한 작가의 창작의 궤적 안에서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모두 금색 배경을 드러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작품 속의 인물들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을 벗어난 여성성의 상징이자 사회적, 역사적 인간관계의 함축적 의미를 드러내는 시각적 기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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