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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혜 / 사실성과 몽환성의 복합적 화면 구성에 담긴 다중성

하계훈

사실성과 몽환성의 복합적 화면 구성에 담긴 다중성


하계훈(미술평론가)


회화의 역사에서 화가의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은 중세 이후 최근까지 작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사실적 재현을 추구해 온 화가들의 고민은 어떻게 2차원적 평면인 화면 안에 3차원의 공간을 구현해내느냐 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원근법이나 조감법 등의 표현 기법들이 동원되었고 사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사실을 넘어서는 극사실적인 사진기법과의 제휴도 이루어졌다. 


김자혜는 조형 훈련을 통해 연마해 온 사실적 표현기법을 바탕으로 콜라주나 콘트라스트와 데페이즈망 등의 다양한 기법을 통해 회화적 표현의 외연을 확장시키며 복합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에는 현실에서 한 공간에 공존하기 어려운 개체와 장면들이 정밀하게 병치되고 접합되어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김자혜의 화면 속의 공간은 바다와 하늘이 나란히 펼쳐지기도 하고 현실에서 보던 공간과 마치 꿈속에서나 보았을 듯한 미지의 상상 속의 공간이 경계면을 맞대고 나란히 제시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부분적으로 사실적 묘사를 수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공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비현실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거나 거울에 비치는 이미지를 통해 중층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되는 공간은 르네상스시대 이후 화가들이 모범답안처럼 지켜온 원근법의 원칙을 의도적으로 거스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작품에서는 이러한 원근법을 교란하기 위하여 복잡한 사선 구도를 형성하는 직선들이 등장하거나 나무와 창들, 그리고 전선 등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불규칙한 선원근법적 구도를 암시하기도 한다.


Not here, but somewhere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3


김자혜가 모호한 미지의 공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기법은 공간 속의 한 부분에 설정된 물이나 매끈한 표면에 반사되는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반사현상에 의해 드러나는 이미지는 원래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시각 원리에 맞는 것이겠지만 김자혜의 작품 속에 도입된 반사 이미지 부분은 원래의 이미지를 반영하지 않고 스스로 독자적인 조형요소를 펼쳐내는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관람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경험의 허를 찌르게 된다.


이렇게 김자혜가 바라보는 대상은 사실성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무의식에서 솟아오르거나 마음속으로부터 떠오르는 심상과 결합하여 부분적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이기도 한 복합적 화면 구성을 이룬다. 그뿐 아니라 김자혜의 작품 안에는 기하학적 패턴과 사실적 재현이 공존하기도 하고 초점이 흐려진 피사체와 뚜렷한 사물의 모습이 콜라주 형식으로 인접한 화면을 차지하면서 하나의 화면을 이루기도 한다.


김자혜가 바라보는 공간이 이러한 것처럼 공간의 구성요소를 포착하는 조형 감각 역시 복합적이다. 김자혜의 작품 속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곳에서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아 온 오브제들과 공간들이 하나로 접합된다. 오브제들은 현실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조형적 구성비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크게 또 때로는 작게 그 크기를 변형시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원근법과 사물의 음영이 제대로 표현된 공간이 있는가 하면 평면화된 화면에 기호처럼 이미지가 제시되기도 하고 일부 작품에서는 종합적 큐비즘 시대의 입체파 작품이나 개념적인 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텍스트의 파편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자혜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일부 작품에서는 주제에 앞서서 분위기 전달에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기의 작품에서는 묘사의 사실성에 비하여 색채를 청회색이나 퍼플과 그린 톤이 감도는 색조를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제시하는 화면이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보는 빛바랜 사진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After the something has gone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3


후기 작품에서는 노랑, 코발트색과 오렌지 색 등의 밝은 색들이 평면적으로 도입되어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화면의 분위기는 여전히 몽환적이면서 꿈이나 환상을 다시 불러오려는 회고적인 느낌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김자혜가 의도적으로 제시하는 모호함에 의해 발생하는 현실과 환상의 간극은 몇 가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우리의 의식 저변에 숨어있는무의식과 잠재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데페이즈망이나 프로타쥬, 오토마티즘 등의 기법을 고안해낸 것처럼 작가는 이렇게 가공된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일부 이미지들을 왜곡, 변형시켜 관람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작동 원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경험에만 의존해서 해독할 수 없는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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