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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회화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인식과 사유의 깊이

하계훈

사진과 회화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인식과 사유의 깊이


하계훈(미술평론가)


2013년 비발디파크 레지던스 1기로 참가한 작가인 국대호와 주도양이 2인전 형식으로 메이플동의 The Gallery D에서 개최하는 이번 전시는 사진과 회화의 접점을 공유하는 두 작가의 개성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국대호는 사진을 바탕으로 공간과 색채의 문제를 탐구하면서 기억과 경험을 관람자들과 공유하는 회화작품을 출품하고 있으며 주도양은 심하게 왜곡된 상(anamorphosis)을 담은 회화 같은 사진작품을 통해 관람자의 시각의 문제나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탐구하는 내용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표현 매체를 달리하고 있지만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재는 우리들의 생활공간을 구성하는 장면과 풍경들이다. 미술사에서 풍경화가 차지하는 위상은 근대 낭만주의나 인상파 작품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아왔을 뿐이다. 그때까지의 회화의 용도가 공간의 기록이나 장식보다는 종교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뚜렷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이나 종교적인 장면에서 화면 속의 인물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나 영웅담을 극화하는 부수적인 배경으로서의 풍경이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에 풍경이 인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동양에서의 풍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오늘날의 풍경화와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면이 있다. 동양 회화에서 풍경은 사실성의 표현보다는 초월적이고 탈속적인 공간으로서의 관념적 공간이 오랜 시간동안 추구되어 왔다.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실제 우리 주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공식화된 하나의 표현 규범(canon)으로서의 공간이 화면을 지배해왔으며 근대에 이르러서야 실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동양의 풍경화와 서양의 그것이 서서히 접점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출품한 작가중에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마치 서투른 사람이 제대로 초점을 맞추는데 실패해서 희미하게 찍은 사진 같은 장면을 담아내는 국대호는 여행을 통해 이미지를 채집한다. 작가는 낯선 곳의 평범한 일상의 장면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색상의 미묘함에 사로잡혀왔다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쉽게 포착되는 평범한 소재의 풍경화라고 생각할지모르지만 이러한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작가는 붓의 움직임에 의해 형성되는 화면의 평면성과 재현의 문제, 3차원적 물질과 공간과의 관계, 색채의 문제 등에 대한 탐구를 거쳐왔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의 표현이 관람자들에게 친숙함을 주는 편안한 시각의 재현으로 나타는 것이다.


19세기 후반기에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상당한 직업상의 위협을 느꼈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이제 회화는 죽었다”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실제로 실물처럼 대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높이 평가하던 서양의 근대 회화에서 사진의 등장은 적지 않은 위협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대호는 100여 년 전 사진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던 서양 근대미술의 많은 작가들의 우려를 떨쳐버리고 사진과 회화의 동행에 성공하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국대호의 경우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사진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사실주의적 재현성에 있으며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초시간적 기억 창고 노릇을 해준다는데 있다. 작가는 사진을 통한 이미지의 포착과 그 이미지의 보존, 재해석 등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탄생시킨다. 이렇게 작가의 화면 속에 제시되는 장면들은 작가 본인이 그곳에 체류하거나 여행한 경험이 있는 곳으로서 관람객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으로 제시되지만 작가 본인 에게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함축하는 기억 속의 한순간을 재현한 것이다. 


국대호는 이러한 작품에서 자신이 갖는 주관적인 경험의 특정성과 객관적인 시각 경험을 하는 일반 관람객들의 보편적 인식 사이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공감대를 생성하는 장치를 필요로 하게 된다. 서로 다른 개체의 상호 교차와 접촉에서 발생하는 이질감과 마찰을 피하는 방법은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두 지역의 특성이 공존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들이 합체하여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국대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과 관람자의 보편적 인식 사이의 완충지대는 곧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묵혀 현재의 시점으로 제시하는 기억의 이미지들의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장면들일 것이다. 


주도양은 오랜 동안 우리가 풍경화를 바라보는 눈에 길들여진 사각형의 프레임을 넘어서 원형의 틀 속에 왜곡된 형태의 풍경을 담아내는 사진 작품을 출품하였다. 혹자는 이러한 왜곡의 형태에 담긴 주도양의 작품을 알록달록한 유리구슬과 같은 만화경 속의 이미지와 유사하자고 보기도 하는데 주도양의 작품과 만화경의 이미지의 공통점은 확장과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주도양의 작품에서 우리는 형태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한다. 그의 작품 이미지에는 직선이 곡선으로 나타나고 곡선은 직선에 가깝게 나타나기도 하며 형태의 크기가 전통적인 원근법에서보다 훨씬 더 급격하고 왜곡이 심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들의 평범한 눈으로는 포착하기 힘들며 사진기 렌즈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장면이다.


우리는 사진이 원근법이나 사실적인 재현에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신뢰할 만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재현된 이미지는 사진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도양은 이러한 전통적인 시각으로부터 사진을 해방시켜 좀 더 자유롭게 대상을 포착하게 해준다. 


주도양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대상에 대한 극단적인 왜곡과 360도의 모든 장면을 하나의 완결 된 화면 안에 담아내는 방식에는 우리가 이 세상과 우주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스스로 시각과 생각을 가두어 둔 것으로부터의 확장과 전환을 시도하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난다. 주도양은 이러한 작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중심이 되어 세계가 '보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대호와 주도양에게 있어서 각각의 작품에 적용되는 매체와 재료는 다르지만 두 작가가 바라보는 우리 주변의 모습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작품을 통하여 두 사람 모두 사진과 회화가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두 영역의 다른 한 쪽이 나머지 한 쪽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는 것처럼 두 작가는 사진과 회화가 상호보완적이며 촉진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미디어라는 것을 잘 알고 이것을 잘 활용하고 있으며 그 효과에 있어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여 관람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뿐 아니라 인식과 사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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