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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 / 디지털 시대의 자연을 읽어내는 전통회화의 정신

하계훈

디지털 시대의 자연을 읽어내는 전통회화의 정신


하계훈(미술평론가)


1982년 제 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처음 명명되어 지금까지 그 명칭에 대한 논란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화는 우리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지켜왔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양화기법에 대한 관심 증대와 식민지 상황에서의 자기부정 의식, 그리고 6.25전쟁에 묻어 들어온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미술사조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점차 우리 미술사에서 그 설자리가 위협을 받아왔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급속히 전개되는 동안 우리의 미술교육제도, 생활양식, 경제 시스템 등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격하게 서구화 되면서 미술분야에서 한국화는 미술계뿐 아니라 우리 생활공간에서의 입지가 전보다 점점 좁아져갔다.


이러한 한국화를 둘러싼 변화의 바람 속에 일부 작가는 전통에 도전하기도 하고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통섭을 실험하기도 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서구화 바람에 맞서서 전통적 회화의 원형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서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전통회화는 분명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예술분야에서 한국화(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여 논하는 것은 다분히 재료와 형식 중심의 개념으로서 정작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의 주제나 창작의 주체 등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한국화를 특정 장르의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현재 우리들이 이곳에서 우리의 의식을 반영하는 작품이라면 모두 한국화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한국화(동양화)와 서양화라는 이분법적 회화개념뿐 아니라 미술 영역에 새롭게 도입되는 다양한 매체들의 홍수 속에서 형식논리와 재료의 순수성을 고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러한 작품들이 시장의 관심에서도 조금씩 멀어지게 됨으로써 그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까지 이른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오늘날의 한국화에 있어서는 전통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한국화의 형식과 개념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소화하여 그 표현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시킬 것인가를 모색하며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넘어서 시각예술이라는 보다 커다란 통합적 무대로 진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석철주는 이러한 한국화의 역사에서 순수한 전통의 마지막을 체험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16세부터 청전 이상범 문하에서 전통 화법으로 그림을 배웠으며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을 마치고 1980년대 초부터 수묵산수, 채색화를 섭렵하였다. 그 후 석철주는 종이와 먹이라는 전통 재료로부터 캔버스와 아크릴을 이용한 회화로까지 표현 재료와 기법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지금의 독특한 작업에 이르게 되었다. 


청색이나 분홍색 등의 바탕색 위에 흰색 아크릴 물감을 화면에 바르고 그것을 다시 물로 닦아내면서 단색으로 전통적인 산수화 화면을 떠올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전통화법의 기초 위에 그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표현 재료와 형식에 있어서는 동,서양을 가볍게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수련해 온 전통회화 기법을 기초로 다양한 재료의 속성을 철저하게 실험하고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화면에서 전통적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고도의 표현의 자유와 절제된 긴장감을 동반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석철주가 이제까지 작업해 온 작품들은 크게 <신몽유도원도>와 <생활일기>라는 주제로 양분된다고 볼 수 있다. 신몽유도원도 연작들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석철주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일련의 작품들로서 작가는 전통 회화에서의 실경산수와 관념산수의 구분을 넘어서면서 젊은 시절 작가가 즐겨 올랐던 우리나라 산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아 마치 안평대군이 꾸었던 꿈처럼 작가가 경험한 자연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몽유도원도 작품들은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여 바탕색을 바르고 그 위에 흰색을 덧씌운 후 물을 넣은 에어 건과 평붓으로 산의 윤곽을 그려내고 표면의 물감을 지워가며 바탕을 드러내는 형식으로서 제작한 작품들이다. 이렇게 제작되는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창작의도와 시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는 물감과 물의 자율적 상호작용이 혼합되어 오묘한 효과를 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통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대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전통의 화법에서 발견되는 구도와 공간감 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새로운 느낌의 전통산수화라고 볼 수 있다. 수다스럽게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산세의 디테일한 묘사가 적용되지 않았지만 관람자의 눈앞에 단색으로 펼쳐지는 대규모의 파노라마적인 작품은 관람객들을 자연 풍경의 화려함과 장엄함, 그리고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경외감과 신비로움에 빠져들게 해준다. 


신몽유도원도 연작들은 작업의 특성상 물감의 건조상태를 민감하게 파악해야 하므로 작업에 수반되는 시간성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절제, 그리고 그러한 작업과정을 뒷받침 해주는 육체적 노동이 요구되는데 이러한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가 감당하는 긴장과 노동의 양은 보통의 작가들보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목격한 작가 석철주는 이러한 작업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면서 작업실 캔버스 앞에서 물감과 붓을 다루는 구도자적인 작가의 몰입 상태를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신몽유도원도와 달리 생활일기에서 석철주는 꿈속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속한 현실의 세계를 담아내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들풀과 들꽃, 달항아리, 그리고 화분 등의 일상적인 이미지가 화면을 차지하는 생활일기 연작들은 작가의 말대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생명의 건강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사실 서양의 아카데미적 관점에서 볼 때 들풀이나 화분 등이 화면을 점유한 작품은 거대 서사나 신화를 주제로 하는 작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학적 혹은 상업적 가치에 있어서 폄하되어왔던 시절이 있었다. 서양뿐 아니라 한국화의 전통에서도 문인화의 여백이나 절제미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석철주의 생활일기 작품들은 전통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작품들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전통 문인화에서 발견되는 정제되고 수정불가능한 획으로서의 필선의 세련된 정신은 이어받되 주제와 재료면에서 현대적인 표현을 통해 대중의 의식과 가치를 은유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양자의 절충적 수용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신몽유도원도가 석철주의 거시적(macroscopic) 시각을 표현 하였다면 생활일기는 작가의 대상밀착적인 미시적(microscopic) 시각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자연이라는 대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지만 신몽유도원도의 산은 일정한 공간 안에서의 산 전체를 먼 거리에서 관조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반하여 생활일기의 식물들은 잎 하나하나의 뻣침과 모양을 코앞에 놓고 관찰한 것처럼 자세하고 힘차게 표현되어 전통회화의 선이 갖는 에너지를 풀잎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동양화부 큐레이터 마이크 헌(Mike Hearn)은 동서양의 회화를 비교하면서 서양화가 형태와 색채, 그리고 원근법 등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에 동양의 회화는 선에 담긴 에너지로 대상을 표현하기 때문에 굳이 색채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석철주의 작품이 재료면에서나 표현 기법 면에서는 스밈과 번짐이라는 우리 전통회화의 기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의 작품에서는 필선의 일회성, 공간의 삼원법, 음과 양의 조화에 대한 배려 등의 요소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으며 창작의 태도에 있어서 결과보다는 과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정작 완성된 작품에서는 작가의 주관적 견해보다는 관람자의 상황과 관점에 따라 작품의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중용적이고 넉넉한 여유를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석철주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작업해 온 신몽유도원도 연작에 조심스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작가는 이전까지 사용해오던 아크릴에 더하여 투명 젤을 도입하기도 하고 단색조의 화면에 푸른 계통과 붉은 계통의 색이 안개속에서 하나로 엉클어지는 듯한 표현을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작품에서 이전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작은 단위의 모눈(grid)이 산수화의 전면에 더해지는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러한 작품은 이제까지 전통회화의 현대적인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해 온 시도의 연장선에서 디지털 시대의 한국화의 모습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산업화 사회를 지나 디지털화 사회로 접어들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일상에는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는 꿈꿀 수 없었던 전자정보와 디지털 영상이 마치 우리 신체의 일부인 것처럼 자리잡고 그 영토를 점점 더 넓혀가고 있다. 생활의 패턴이 현대화하면서 자동차, 현관문, TV, 상점의 계산기나 은행의 입출금장치에서부터 신분증, 가전제품 등등 일상의 물건들도 디지털 메커니즘을 모르면 사용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로 이행해오는 시점에서 한국화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석철주의 새로운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방충망을 단 창문 너머로 바라본 먼 산에서 작가는 컴퓨터 모니터나 디지털 TV의 화소처럼 다가오는 작은 모눈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눈을 통해 들어오는 산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렇게 다가오는 신몽유도원도의 풍경이 우리시대에 전통의 산수를 새롭게 바라보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최근의 신몽유도원도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해지면서 이전보다 더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초선명성이 디지털 기기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인 것을 생각하면 점차 몽롱하고 희미하게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시대 역행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디지털시대의 선명성과 조금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숨막히는 현대 생활의 긴장감을 보상하는 균형추로서의 자연과 그 자연을 관조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아날로그적 접근을 제시하는 시각예술에서의 새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


오늘날 예술가의 천재성과 작품의 탁월성은 여전히 예술에 대한 사회적 효용과 가치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고도의 디지털 기술복제가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원본성과 유일성은 작가의 손에서 탄생하는 천재성을 담아내는 값진 창조행위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어느 예술분야이건 간에 순간적인 천재성의 섬광에 의존하는 창작행위는 점점 지속적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작가에게 성실한 노력과 집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 바탕위에 시대의 변화를 창작의 노력과 결합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며 작가의 예술적 감수성과 천재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석철주의 시대를 읽는 노력과 작가로서의 근면성은 그의 작업실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찬 작품의 양에서도 짐작할 수 있으며 다작에 수반되기 쉬운 태작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작업의 진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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