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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dialogue

하계훈

감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접점에서 발생하는 dialogue


하계훈(미술평론가)


전시의 역사를 돌아보면 초기의 계몽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전시가 점차 학문적인 검증에 의해 주제나 형식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는 이렇게 마련된 전시 내용이 좀 더 폭넓게 대중적인 호응과 교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공되는 수순을 밟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암웨이미술관에서 기획한 <Dialogue전>에 출품한 세 작가는 전시를 통해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이고 작가-관람객 사이의 상호교감을 바탕으로 전시공간의 완결성이 마무리되도록 양자 사이의 정신적, 물리적 교호작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기획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Dialogue전>은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작품들을 일방적으로 감상하는 전시라기보다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개입과 반응에 의해 동일한 작품에 대한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며 관람객 중심적 해석에 의해 작가가 제시한 메시지가 상호촉진적으로 완성되어가는 형태의 전시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생태와 현상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감추지 않으며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과 수단을 적용하기 위하여 시각예술의 다양한 매체를 골고루 도입하고 있다. FRP, 철 등을 이용하여 우리 일상의 공간에서 발견되는 사물들을 단색조의 오브제로 재현하는 노영훈은 평범한 일상의 현상과 사물에서 철학적 사유와 사회적 관조의 시각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단순히 이러한 사물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재현된 오브제들의 외형을 왜곡시킴으로써 그 안에 사회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기제로서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작가로서 자신이 속해있는 시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며 작가의 감수성을 개입시키게 된 것은 노영훈이 대학을 졸업하던 1998년 대한민국 사회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유래 없는 경제적 위기를 겪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개인과 기업의 파산,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희망의 상실과 아까운 생명들의 희생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충격을 목격해 온 작가는 예술이 사회에 개입하는데 있어서의 방법과 효능에 대한 회의감을 품기도 하고 사고의 전환을 통해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시각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 가운데에는 무인원격조정기로서 정찰과 폭격 등의 전쟁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지만 그 기능을 점차 확대시켜 최근에는 물류의 수단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드론(Drone)이라는 인간의 발명품이 우리들의 행동과 인식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해준다. 노영훈은 앞으로의 작업계획에 있어서 설치, 조각, 비디오, 사진, 인터넷 등 가능한 다양한 매체들을 더 폭넓게 실험하여 '나와 타인들 그리고 세상의 만남이라는 관점 속에서, 그리고 이론과 예술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뉴미디어를 전공한 신성환은 사물의 실재와 허상의 문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우리 삶의 변화에서 떠오르는 철학적 개념의 화두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실제 자신이 사용하였던 일상적 오브제들을 하얀색으로 칠하여 전시공간에서 그 위에 영상이 맺히는 바탕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바탕에 투사되는 영상으로 인해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실제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실제처럼 우리의 인식체계로 다가선다. 


표현 방법에 있어서 작가는 이러한 영상 뿐 아니라 빛-소리-공간에 대한 관심을 종합적으로 표현하여 멀티미디어를 통해 구현되는 동양적 사유가 그려내는 설치작업에 관심을 기울인다. 신성환의 경우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사용하던 실제 물건들을 백색으로 배치한 공간에 영상 이미지를 덧씌워 음향을 가미함으로써 계절의 변화와 시간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활기 있게 펼쳐지는 작품을 연출한다. 


기본적으로 빛을 이용한 이미지의 창출 작업을 통해 신성환은 밝음과 어두움, 비움과 채움, 생성과 소멸,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과 같은 우리 삶의 대비되는 요소에 대한 고찰과 사유를 유도하며 이러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냄에 있어서 음향과 영상 미디어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교차하여 환각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미디어 이미지가 범람하는 풍요로운 일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관람객들에게 신성환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일상적이고 친근한 매체로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시각적 전개에 있어서 역동적이고 변화가 많은 연출방식을 택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주목성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작품에 이끌린 관람객들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의 주제를 무의식적으로 서서히 떠올리게 되고 그것에 조금씩 침잠하게 된다.


최문석의 작품은 키네틱 아트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color wave>, <dolphin wave>, <light wave>와 같은 작품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색채나 형상 또는 빛의 리듬을 이루는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문석은 색과 빛 등의 조형 요소들을 아래위로 혹은 앞뒤로 움직이게 만들거나 회전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운동감과 시각적 효과를 통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키네틱 아트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움직임과 관람객의 반응에 의해 전시 공간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에너지는 작가가 고안한 장치에서 발생하는 동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작동은 정적인 미술 작품들에 비하여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의 특성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최문석의 작품은 기술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객들을 회고적 감상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며 우리들의 어린 시절 장난감들 가운데 눕히면 눈을 감고 몸체를 누르면 말소리가 나는 인형, 그리고 현란하게 달리며 변신하는 자동차나 로봇 등의 장난감들은 그 시절 우리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넉넉히 충족시켰었다. 최문석의 작품 안에서 그 시절의 인터랙티브한 감각이 되살아남으로써 작가와 그의 작품은 관람객과의 경험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문석의 또 다른 작품에는 경첩을 변형한 듯한 획일화된 인간군상이 같은 동작으로 열을 맞추어 끊임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군상의 움직임은 여러 사람이 하나같이 움직이는 획일화된 현대사회의 군중의 모습처럼 보인다. 작가는 개인의 고유한 개성보다는 집단의 목표와 가치를 앞세우고 협력과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몰개성적으로 기계화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이번 전시에 출품한 세 명의 작가들은 다양한 미디어와 키네틱 아트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의 현재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현상과 고뇌를 작가의 시선과 조형 의지로 공공의 장에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이렇게 제시된 작품들을 통해 작가와 관람객들이 감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접점을 이루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미적, 경험적 대화(dialogue)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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