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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정 / 숲과 숨(Breath & Forest)

하계훈

숲과 숨(Breath & Forest)


하계훈(Ha Kyehoon 미술평론가)


홍수정은 작가이자 여성으로서의 민감한 정서와 사유를 캔버스 위에 개성적인 이미지로 시각화시키는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제까지의 홍수정의 작품에서는 파스텔 톤의 평면적인 배경 위에 표정을 배제한 인물의 모습이 배치되고, 마치 그 인물의 생각과 꿈을 외화(外化)하는 듯하게 가느다란 선으로 연속해서 이어지는 꽃잎의 형상이 인물의 머리나 손 부분으로부터 담쟁이 넝쿨처럼 화면 가득히 증식되어갔다.




화면 속에서 인물의 위치나 자세는 얼굴을 감싸면서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단순한 기립자세 정도로 제시되어 특별히 묘사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인물들은 실루엣으로 표현되거나 한 두 가지의 색면으로 간단하게 처리되고 인체의 명암이나 그림자들이 사실적인 묘사를 따르지 않으며 때로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현실적 공간에 위치하기도 한다. 따라서 홍수정의 작품에서 공간을 활성화하고 내러티브를 전개시키는 것은 가느다란 선으로 지어내는 연속되는 꽃잎 모양의 형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의 표현이 유보된 화면에서도 그 형상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홍수정의 작품에는 작품 제목을 통해 작가가 경험한 사건이나 공간을 추측할 수 있는 오브제들이 등장하고, 거기에 다시 작가 특유의 표현 방식인 실선의 증식에 의한 의식의 확산 또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넘나들기가 가시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 작가는 “타자와의 이야기를 시도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홍수정의 작품에서 특징을 이루는 실선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선들은 작은 꽃잎 또는 곡식의 낱알 모양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그 형상들이 체인처럼 연결되어 증식돼 나아가는 형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구름이나 버섯처럼 볼륨감을 갖는 형상이 일그러진 동심원을 반복하는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 반복된 표현에는 선의 굵기의 미세한 차이나 색의 미묘한 변화가 담겨 있어서 시각적으로 리듬감을 주며 의미상으로 이러한 증식 작용이 단순한 기계적 작용의 연속이 아니라 세부적으로 미묘한 변주(variation)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표현은 결국 작가가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넘나들기나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 또는 생각이나 감정의 증식 등을 활성화시켜주는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며, 방법적으로 모티브를 상징적 또는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서 홍수정의 작품을 관통하는 표현 형식의 주된 줄기이자 주제를 담아내는 기제(機制)로 동원되는 것이다.


홍수정의 작품은 작가의 사유에서부터 탄생하고 그러한 사유는 작가가 체류하는 공간의 상황에 의해서도 도출된다. 독서를 통해 발견한 이미지가 차용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여행을 통해 발견하는 생각의 단초로부터 태어나는 이미지도 있다. 홍수정은 이러한 작품에 두 가지 형식의 제목을 붙여 우리들에게 제시한자. 작가가 제시하는 한 가지 형태의 제목은 마치 구도자의 선(禪)적 수행의 화두처럼 <끝에>, <호흡 과다>, <mememe> 등과 같은 짧은 단어로 제시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마치 작가의 일기나 편지의 한 줄처럼 <숨길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해보아요>,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등과 같이 서술적 표현 형식을 띠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홍수정이 주제로 채택한 것은 ‘숲과 숨(Breath & Forest)'이다. 2014년 초 홍수정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의 칸세라 레지던시(Can Cerrat Residency)를 다녀오면서 번잡한 도시의 대척점을 이루는 분위기인 고즈넉한 숲속에서의 침잠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숲과 습지, 원시의 땅에서 소리없이 서식하는 생명의 기운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이번에 새롭게 출품된 작품들이다.



드로잉과 소품 제작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담아 온 작가는 한국의 작업실에서 칸세라의 느낌을 살려 <Welcome to CAN>, <Grove> 등의 대작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작품에서 마치 푸른 들판에서 솟아나는 새순같기도 하고 오래 전 태고의 시간으로부터 거기에 자리잡고 있었던 괴석 무리들이 과묵하게 서있는 것같기도 한 화면속의 오브제들은 홍수정의 이전 작품들에서처럼 반복적으로 굽어지는 선들을 나이테처럼 품고 서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홍수정이 이제까지 유지해 온 선묘 중심의 시각 언어를 유지한 채로 배경과 형상의 배치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Dryad>와 같은 작품은 이전의 작품으로부터 최근작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전의 작품에 비하여 파스텔 톤의 색채가 좀 더 강한 원색으로 대치되고 있으며 배경의 디테일 묘사가 강화되고 공간의 깊이감을 강조하는 최근작에서 홍수정은 화면 속 개체의 구체성과 현존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화면 속의 오브제들은 좀 더 사실적인 공간에서 스스로 굳게 자리 잡으면서 생명과 호흡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홍수정이 관람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정서와 담론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함께 지켜보는 것이 이번 작품들을 감상하는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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