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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꿈꾸는 조각가들의 교류와 융합의 무대

하계훈

유토피아를 꿈꾸는 조각가들의 교류와 융합의 무대




하계훈(미술평론가)


GS칼텍스 예울마루가 개관 1주년을 맞아 조각전을 개최한다.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장흥조각아뜰리에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유토피아>전은 두 기관에서 선정한 작가들이 함께 출품함으로써 우리나라 현대조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일군의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을 한 곳에 모아 점검해 보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물리적으로 두 기관 뿐 아니라 이 기관들이 속해있는 여수와 양주라는 두 도시간의 교류와 융합의 의미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조각작업이란 3차원의 공간에서 조형성을 드러내는 입체작품 활동으로서, 원래 건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종교적인 주제를 담아내는데 집중하면서 발달해왔다. 초기에는 주로 나무나 돌, 흙 등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재료를 깎거나 쌓아서 인물이나 사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조각가들은 건축가들과 함께 작업에 참여해왔으며 서양에서는 중세 상인들의 길드(Guild)에서도 조각가들이 건축가들과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경제활동을 해왔었다.

조각의 건축으로부터의 점진적 분리는 건축공학적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동안 조각은 공학적 논리로부터 해방되어 점차 미학적 가치를 앞세우는 조각가들에게 창작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현대에 와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재료들이 화학적 발명에 의해 생겨나게 되고 용접과 도금같은 기술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조각의 재료와 표현 방법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졌으며 작품과 공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간에 개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현대미술에서 조각의 의미는 보다 확산되어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화화나 사진 등의 장르와의 융합에 의한 복합적인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어서 중세나 근대적인 의미로만 조각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제는 조각이라는 용어가 갖는 볼륨감과 무게감이 무색한 작품들이 종종 관람자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키네틱 조각에서는 자연의 동력이나 기계장치와의 결합에 의해 작품의 정태성을 중요한 특징으로 유지해 온 조각에 시간과 움직임이라는 4차원의 요소를 결합시키게 되었다.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은 다양한 재료와 주제로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꿈꿔온 조각가들로서 작가마다 각자의 작품을 통해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모습과 특색을 작품에 담아서 보여준다. 출품작 가운데 많은 작품들이 인체와 인간의 모습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출품작가 가운데 강덕봉은 파이프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어내고 우레탄 페인팅을 가미하여 회화성을 강조하는 조각작품을 출품하였다. 속이 비어있어 물이나 기름이 그 속을 통과하는 파이프의 기능에서 알 수 있듯이 파이프를 이용한 작품의 상징적인 의미는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흐름과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에 대한 관심은 신치현, 왕지원, 김범수, 나점수, 김지현, 정국택  등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치현의 인물은 레고 조각처럼 분절된 블록을 조합하여 형성되는 구축적인 인체를 표현함으로써 작품의 힘과 물질성을 잘 보여주며, 왕지원은 구체관절인형처럼 인체를 구성하고 톱니바퀴와 같은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그 인체의 움직임을 가미한 작품에 종교적 아우라를 담아낸다. 김범수는 그로테스크한 인체를 도입하고 팔다리 등의 신체부위가 크기의 비례를 무시한 상태로 작품 속에 도입되어 불안, 생소함 등의 감각을 자극해준다. 인간과 자연의 내적 필연의 삶의 관계를 천착해온 나점수는 인물상을 출품하였으며 김지현은 기념비적 조형물로서의 고대조각상들을 오늘의 인간의 속성과 정서를 가진 작품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정국택은 인체를 표현하되 사실적인 묘사를 버리고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이용하여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비현실적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상황에 우리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닮은 인물상들을 만들어낸다. 

전윤조는 정상인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동시에 느껴왔던 개인적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작품을 제작해왔다. 정상적인 인체들과 비정상적인 것들을 조합해놓은 작은 인물상들을 수없이 많게 제작하고 전체를 하나의 볼륨으로 형성하기 위하여 철사나 끈을 이용하여 개개의 인물상을 공간에 매다는 노고어린 작업은 공존의 메시지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 사이의 괴리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출품작들 가운데 동물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박영한은 인간의 삶에서의 의미추출방식을 나뭇잎 사이에서 노니는 달팽이를 빗대어 조형적으로 표현하였다. F.R.P, 레진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공룡같은 동물들을 빚어내고 그것을 단색의 우레탄도장으로 처리한 강민규의 작품은 우리들을 사라져버린 공룡의 세계로 안내하는 상상력을 촉발시키며 멸종된 생명체의 표현을 통해 우리 생태계의 환경과 미래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박용식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보이는 개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생산한다. 인간 중심의 시각을 뒤집어 개가 주인공이 되면서 그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업으로서 작가는 오브제 작업과 그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회화작업과 입체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오고 있는 류신정은 생태와 환경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반 고흐의 작품 속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작품에서 작가는 거대한 기류의 움직임이 사실은 작은 생명의 개체의 집단적인 움직임일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해준다. 

김상균은 현대의 회색 도시 풍경을 시멘트로 제작해왔다. 도시 공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건축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공간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응시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은 시멘트라는 물질을 통해 우리의 시각에 들어오는 것들을 가시적인 풍경으로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노영훈은 조소 작가로서 갤발하여 온 관찰의 시각으로 일상적 오브제들이 뒤틀려 꿈틀거리는 듯한 방을 연출하고, 그렇게 뒤틀어진 오브제들의 방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 변화를 자극하는 작업을 해왔다. 송운창의 작품은 계산되지 않는 철조각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완성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각같은 시간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로 전체를 구성하고 그것이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이번에 출품한 조각가들은 각자의 작업 방향과 작품에 부여하는 의미를 함께 모아 유토피아적 미래를 지향하며 한자리에서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사유와 관조를 시각적 언어로 전달하는 작가로서의 교류와 융합의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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