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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Jelly :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 7인이 그려내는 육각벌집 안의 ‘로얄 젤리'

하계훈

로얄 젤리(royal jelly)는 꿀벌 유충의 성장을 위해 공급되는 꿀벌의 분비물이다. 동물 생태계의 섭리가 대부분 그러하듯 유충이나 유아가 섭취하는 물질에는 좋은 성분과 높은 영양이 포함되어 있다. 로얄 젤리라는 분비물은  젊은 일벌의 머리 부분에 있는 인두선(咽頭腺)에서 분비되며, 일벌이 될 애벌레를 포함한 모든 애벌레에게 영양이 풍부한 먹이로 제공된다. 말하자면 차세대를 육성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TV나 잡지 등을 통하여 이러한 애벌레들이 자라고 있는 육각형 방들이 밀집된 벌들의 서식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65년 헝가리 수학자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러한 벌집의 구조는 종잇장처럼 얇은 막으로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한다. 또한 계란 껍질의 구조도 확대해서 살펴보면 육각형을 단위로 조직되어 쉽게 깨지지 않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벌집의 형태에서 보이는 육각형이 확산되는 프랙털(fractal) 구조는 애벌레의 양육처럼 차세대 작가들의 육성이라는 의미와 연결해볼 수 있으며, 견고함과 안정성 등에 있어서는 그래핀(Graphene)이라는 물질의 속성과도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이 발견된다. 그래핀은 탄소원자가 육각형으로 결합해 벌집 형태를 이루는 화합물로 기초 전자소재를 대체할 차세대 신소재를 말한다. 흑연을 뜻하는 '그래파이트'(Graphite)와 화학에서 탄소 이중결합 형식을 띤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ene'을 결합해 만들어진 이 용어는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의 안드레이 가임 교수와 연구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떼었다 붙이는 방법으로 세계 최초로 그래핀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하면서 만든 용어다. 그래핀은 실리콘으로는 더 이상 진척이 없던 반도체 정보 처리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뿐만 아니라, 고성능 태양전지 개발, 유기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결국 로얄 젤리가 포함된 벌집 형태의 육각형 공간 구조는 자양분과 견고성, 안정감 등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royal jelly전>에서는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각자의 예술 세계를 다져오고 있는 7명의 작가가 함께 출품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전시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전시장에서 발견되는 사각형의 프레임이 유보되고 기본적으로 육각형 캔버스를 이용하여 작품을 구상한 이번 전시는 이런 의미에서 예술적 자양분의 공급과 차세대 예술가의 육성이라는 은유적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며 창작형식에 있어서도 르네상스 시대의 톤도(tondo) 형식이나 1960년대 뉴욕의 작가들에 의해 실험된 shaped canvas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네모난 화면을 고수하던 사고의 확장과 새로움을 환기시켜주는 측면이 읽힌다.


출품된 작품들을 굳이 장르별로 구분하여본다면 평면과 입체로 나눌 수 있고 다시 평면에서는 한국화와 서양화, 디자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인위적 경계는 별로 의미가 없다. 작가 개개인의 수십 년간의 탐구와 모색의 관점이 반영된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나 경향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들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작품마다 고도의 사유와 집중,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조형작품이 드러나는 방식에 있어서의 체화된 노동의 세련된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출품작의 성격은 크게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과 사회적, 역사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품,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반영한 작품들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의 모티브에 집중해 온 원인종의 경우 철선을 조밀하게 용접해나가는 방식으로 무겁지만 가벼운 느낌을 주는, 볼륨감을 지닌 오브제를 공간에 제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오브제의 배경처럼 흑연 드로잉으로 평면에서 오브제의 질감이 공명됨으로써 전체 공간의 분위기를 강화시키는 형식의 작업을 제시하고 있다. 


쇠를 깎는 과정에서 모아지는 쇳가루를 이용하여 설치와 영상, 사진 오브제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조형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종구는 조각적 형태의 변형이나 응용 등의 차원을 넘어서서 쇠를 깎는 집약적 노동의 과정에 수변되는 사유와 결과물로서의 쇳가루가 새로운 형식으로 창출되는 표현력에 집중한다. 작가는 쇳가루를 먹처럼 이용하여 서예적 표현을 시도하기도 한다.


서예와 동양 사상의 본질을 머금고 있는 이종목의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오랜 시간의 수련과 정신적 수양을 거치고 난 후에 비로소 진입할 수 있는 경지에서 펼치는 이종목의 작품은 일반적인 작품과 관람자와의 조우방식과는 다른 예비적 몰입과 심리적 교호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담한 필치의 먹선이 그려내는 <신들의 땅>은 간단한 듯하지만 거대한 서사를 농축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기영은 한지에 나이프로 소석회와 대리석가루를 여러 겹 두껍게 발라 만든 바탕위에 죽필이나 마른 붓으로 꽃이라는 모티브와 여백을 역동적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파편화된 이미지가 육각형의 화판의 조합에 의해 새로운 움직임을 창출해내는 화면 속에서 먹이라는 전통 매체의 특성과 서양의 미니멀리즘적 감각을 절충하는 작품을 보여준다.


잉 킴의 작품은 관람자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만난다. 그 편안함은 시대적 감각의 공유에서 올 수도 있고 작품을 지배하는 색상이나 이미지의 재현 방식일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해학적 은유와 대조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을 바탕으로 명시성 높은 이미지가 제공되고 이에 부수하여 이행연구(二行聯句, Couplet)를 이루는 문장이 삽입되는 형식의 작품은 애매함이나 논쟁의 여지가 침범할 빌미를 재공하지 않는다.


이광호의 작품은 극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마치 접사 촬영된 사진처럼 실물 크기 이상으로 대상의 모습이 확대됨으로써 극히 사실적인 묘사이면서도 동시에 관람자의 평범한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추상성을 함께 드러내기도 한다. 가볍고 얇은 터치로 그려진 선인장의 세부 모습에서 드러나는 역동성과 실제같이 느껴지는 촉감을 주는 선인장에서 강한 생명력과 함께 기술적인 도전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하는 작가는 대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감성과 욕망을 그 대상에 투영하는 형식으로 관람자들이 보통의 극사실회화가 보여준 재현과는 다른 감각의 영역을 경험하게 해준다.



프라이머를 바르지 않은 무명 캔버스 천에 콩테나 연필로 정교하고 섬세한 인물 드로잉하는 조덕현은 여성의 이미지를 주로 다루어 왔다. 이러한 작품 이외에도 조덕현이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흐름과 그 안에서 흘러온 개인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 적도 없고 그들의 이름이나 신사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없는 인물들이지만 작가는 낡은 사진 속의 인물들을 작품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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