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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about Exhibitions』 서평

하계훈

Thinking about Exhibitions


전시(exhibition)는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상호소통을 일으켜주는 대표적인 문화현상이다. 미술관의 역사상 초기의 개인 컬렉션이나 불완전하게 공개되던 전시장에는 오늘날과 같은 전시 시스템이 필요 없었으며 감상자들이 작품을 다루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금보다 더 주관적이고 자유스러웠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술관이라는 전시장이 대표적인 대중의 공간이 되고, 특히 일부 국가에서는 무엇보다도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미술관의 전시는 미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보다 깊은 의미가 내포된 현상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Thinking about Exhibitions>는 이러한 역사적 변천을 겪어 온 미술관의 전시에 관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그 의미를 천착해보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유럽과 북미 그리고 호주의 관련 학자,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 등의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이 태어나게 된 배경에는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인 리사 그린버그(Reesa Greenberg)가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1980년대에 개최해온 전시에 대한 세미나와 다른 두 명의 편집자인 브르스 퍼거슨(Bruce Ferguson)과 샌디 낸(Sandy Nairne)이 1990년에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와 뉴욕의 디아(DIA) 재단에서 개최한 <이미지의 정치학(The Politics of Images)>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바탕이 되었다. 


편집자들에 따르면 전시, 특히 그 가운데 현대미술의 전시는 단순한 시각적 볼거리를 넘어서 사회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사회적 인식이나 사고 구조를 재구성해내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중요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연구나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 대한 연구가 이제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제 비로소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이론으로 정리되기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편집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은 미술 전시를 기본적으로 지식(knowledge)을 생산하여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이 책을 출판하는 일을 전시를 조직해내는 활동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시가 그러한 것처럼 이 책에서도 전시에 대한 필자들의 자유로운 견해를 수용하여 각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거나 서로 충돌하는 면을 편집자로서의 조정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앤솔로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모두 6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주제마다 3-6 명의 필자가 기고하여 모두 27편의 글이 실려있는데 전시의 역사에서부터 큐레이터쉽이나 관람객을 유인하는 태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우리에게 광주비엔날레를 계기로 잘 알려진 해럴드 제만이 1969년 스위스 베른의 쿤스트할레에서 기획했던 <태도가 형태가 될 때>전이나 카셀 도큐멘타 등의 중요한 전시사례에 대한 분석과 전시 관련자와의 인터뷰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지역과 언어권별로 분석해 본다면 영어권에서는 주로 정치적 소외와 이의 수정에 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바라보고 있고, 불어권에서는 의미론, 후기구조주의 등의 사회학적 관점에서 전시를 바라보는 태도로 주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며, 독일어권에서는 전위미술 전시의 역사를 추적하고 여기에 붙은 가설을 검증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글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가운데 제 4장에 들어있는 프랑스 사회학자 나탈리 하이니크(Nathalie Heinuch)와 마이클 폴락(Michael Pollak)의 글 <미술관 큐레이터에서 전시 저자(Auteur)로>는 비록 프랑스의 사례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오늘날 큐레이터의 역할에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변화를 잘 지적해내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의 큐레이터가 그의 활동 영역을 넓혀 큐레이터에서 ‘크리에이터(창조자)’로 발전하여야 하며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미술계에서 부와 명예에 대한 유혹을 버린 큐레이터가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가를 수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라는 원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영국의 비평가로서 런던의 ICA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는 <The Great Curatorial Dim-out>이라는 글에서 1969년 9월부터 1975년 3월까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140여 개의 크고 작은 전시회를 분석하여 공공미술관의 전시공간에서 흑인 예술가들의 소외문제를 파헤치는 한편,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작가-화상-소장가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틈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점을 오늘날의 큐레이터쉽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유혹을 경계할 것을 강조하며 연구자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전시 그 자체만큼이나 카탈로그를 통한 큐레이터의 전문적 학문연구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에 따르는 큐레이터의 역할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남미 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마리 카르멘 라미레즈(Mari Carmen Ramirez)의 글 <Brokering Identities>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라미레즈는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열리는 남미 미술 전시에서 비평가나 화상들보다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그들이 누구를 접촉하는가, 누구를 대상으로 남미의 미술을 소개하려고 하는가 하는 역할 여부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에 소개되는 제3세계의 미술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미술 전시공간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르는 전문인력의 양성 문제나 미술기관의 경직된 관료주의적 운영에 따르는 문제점, 상업주의의 폐단 등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서울, 광주, 부산 등의 지역에서 국제적 미술행사를 치르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시행사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비록 서구적 관점과 우리와 다른 사회적 환경의 사례를 통한 담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시각문화에 대한 좌표를 확인하고 미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참고문헌으로서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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