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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옷을 벗은 마하>

하계훈

고야 <옷을 벗은 마하>


인간의 벗은 몸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어 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인간의 누드는 젊음과 건강의 상징으로 긍정적인 시선을 받았다. 인간의 신체가 부정적으로 죄악시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에 들어서서부터였으며 기독교 사회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신체를 연관시키면서 예술 작품에서 누드표현이 사라지게 되었다. 중세에는 죄의 근원인 인간의 몸을 드러내는 일을 그리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후로 인간의 벗은 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복원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 종교적 권위보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긍정이 회복되면서부터였다. 물론 그 후로도 근대의 점잖은 귀족문화에서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지나친 노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오기도 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예술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누드 표현을 하거나 자신의 누드를 적극적으로 내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 그림들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스페인 궁중에서 활동했던 프린시스코 데 고야의 작품이다.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로 마치 한 쌍의 그림으로 생각되는 이 작품들은 누가 모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두 작품을 같은 시기에 그린 것도 아니라고 전해진다. 스페인어로 <마하>는 옷 잘 입는 멋쟁이 젊은 여인을 뜻하는 말로서 그림속의 주인공은 고야의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궁에 드나들며 고야와 친분이 있었던 왕실가족이나 귀족의 주변 인물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 

30대 중반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뒤부터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은퇴해서 건강을 핑계로 프랑스의 보르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줄곧 스페인 궁정에서 화가로서 활동한 고야는 수없이 많은 왕실가족과 상류사회 인사들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근엄한 자세와 형식을 갖춘 공식 초상화와는 사뭇 다른 이 그림들은 그가 주변의 귀족들로부터 사적으로 의뢰받아 제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해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그럴 듯한 것은 이 그림의 모델이 고야와 가깝게 지내던 알바공작부인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부상하는 또 다른 학설로는 당시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던 젊은 장교 마누엘 데 고도이의 또 다른 애인이었다는 설도 있다. 고도이는 고야보다 스물한 살 아래로서 이미 20대 후반에 왕비의 후광으로 총리직에 임명되어 군사와 외교권을 주무르던 인물이었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린 1800년 무렵에 그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실패한 책임을 안고 권좌에서 물러나 있었으나 1801년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되는 시기였다. 1800년 고도이의 집에서 <옷을 벗은 마하>를 보았다는 기록이 발견되었고 두 점의 <마하>들이 1808넌 고도이의 수집품 속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기는 한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알바공작 부인일 것이라는 추측은 고야가 그린 여러 점의 알바공작 부인 초상화 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는 서명이나 그림 속 반지 위의 이름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증거에 의해 평민출신의 궁중화가와 귀족출신의 공작부인 사이의 로맨스라는 드라마틱한 주제로 인해 사람들은 이 둘의 관계를 기정사실로 믿고싶어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관계는 아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구인가와 관계없이 벗은 몸을 숨김없이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에 대한 관심은 X선 카메라 촬영이나 인물의 얼굴 형태에 대한 정밀한 골상학적 조사 등으로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밝혀진 것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이 두 그림은 당시 귀족사회에서 은밀히 유행하던 춘화관람을 위한 주문제작으로서 평소에 옷을 입은 마하를 옷을 벗은 마하 그림 위에 겹쳐 걸어두었다가 자기들끼리 있을 때 앞 그림을 치워두고 누드 그림을 감상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림 속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화가 고야만이 알 수 있을 테지만 그가 외설스런 그림을 그렸다는 혐의로 종교재판소의 추궁을 받고도 굳게 입을 다문 채 세상을 떠난 지금 그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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