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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하계훈

<뭉크-영혼의 시>전을 위해 방한한 노르웨이 오슬로의 뭉크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의 첫 인상은 똘망똘망한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흔히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바이킹의 후예인 노랑머리 털북숭이 거구와는 다르게 다부지고 아담한 체격에 단정하게 다듬은 흑갈색 머리모양에서부터 그에게서는 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오슬로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잠시 뉴욕 맨해튼에 있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한 뒤에 욘은 줄곧 노르웨이를 거점으로 활동해왔다. 오슬로 대학에서 현대미술 전공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독립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노르웨이 미술계에 대한 이론과 현장을 섭렵한 욘은 잠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에 근무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욘이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활동해왔지만 그는 벌써 30대 후반이었던 1997년에 베니스비엔날레의 스칸디나비아관 커미셔너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현대미술 뿐 아니라 유럽과 심지어 아시아 미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뉴욕 시절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한국 작가가 있다면서 일명 ‘보따리 작가’로 잘 알려진 김수자의 이름을 꺼내기도 하였다.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 (출처: 예술의전당 월간정보지 Beautiful Life with Seoul Art Center)


이러한 그가 뭉크미술관과 인연은 맺은 것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욘은 2013년 뭉크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에 예술의전당에서 뭉크의 전시를 대규모로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욘에게 뭉크의 탄생 150주년인 작년 한 해는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해였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그는 뭉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국내 학술행사 뿐 아니라 작년 10월에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개최된 <Edvard Munch: The Modern Eye>전과 연계하여 <Munch: The Promise of Modernity>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도 참가해야 했었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 그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작년에 처음 한국을 다녀갔어요. 2013년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었던 전시와 관련 행사들을 한국에 소개하자는 제안을 받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방문이었는데 서너 군데의 장소를 답사한 결과 최종적으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한가람미술관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훌륭한 전시공간과 편리한 부대시설이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미술관측의 적극적인 관심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적지 않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2013년이 뭉크 탄생 150주년의 의미가 있다면 2014년은 뭉크가 사망한 1944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죠”

욘이 근무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은 시립미술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오슬로 시가 미술관 운영에 소요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도 시의 소관으로 시의회의 결정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미술관 조직은 관장 밑에 보안팀, 관리팀, 전시/콜렉션팀, 교육팀(큐레이터), 마케팅팀이 있으며 전체 직원은 70명 정도라고 한다. 뭉크미술관의 한해 예산은 대략 120억 원($12million)정도인데 2019년에 미술관 규모가 크게 확대될 예정이라서 그때가 되면 예산규모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뭉크미술관은 1944년 뭉크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유족들에 의해 뭉크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의 유품들이 오슬로 시에 기증, 관리되어 왔다. 그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막 종료된 시기였기 때문에 미술관 설립이 곧바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오슬로 시는 공간만 없을 뿐 실제로 미술관 관장을 맡을 사람과 그 밑에서 일 하는 조직을 갖추고 작품과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1963년에 개관하게 되는 뭉크미술관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1950년대에는 몇 차례에 걸쳐서 미국과 유럽의 몇몇 미술관에 뭉크의 작품들을 대여해준 적도 있었다.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 열리는 첫 전시기 때문에 뭉크의 전 생애에 걸쳐서 대표될 만한 작품들을 골고루 소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뭉크의 젊은 시절과 말년의 자화상들, 그리고 작가의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들뿐 아니라 그가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 등도 소개되고 있어요. 물론 뭉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절규>나 <병든 아이>, <생의 춤>, <마돈나> 등의 작품들도 소개됩니다. 뭉크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1893년작 <절규>는 비슷한 작품이 모두 4점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 뭉크미술관에 소장된 2점중 하나는 2004년에 복면강도들에게 강탈당했다가 2006년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작품의 아래쪽 구석 부분이 좀 상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절규>의 수난사 때문에 템페라나 크레용으로 그린 채색화 <절규>가 국외로 반출되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 도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은 유럽의 어느 미술관들보다도 관람객에 대한 보안점검이 까다롭다. 뭉크미술관 입구에는 공항 검색대에서나 볼 수 있는 마그네틱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번 한가람미술관 전시장 역시 뭉크미술관 측의 요청에 의해 검색대를 설치하게 되었으며 전시장 내부의 일부 중요작품에는 개별적인 도난방지용 감지기가 설치되었다. 

작품의 수난사와 보안상의 염려 때문에 이번 한가람미술관에 소개되는 <절규>는 판화로 된 작품인데 욘은 뭉크의 작품이 유화나 다른 재료로 그린 채색화도 의미가 있지만 판화 작품들도 결코 이에 못지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 미술시장에서는 페인팅에 비하여 판화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뭉크의 경우에는 결코 판화가 페인팅보다 중요성이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특히 뭉크는 판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해왔고 몇몇 작품에서는 채색화보다 판화가 먼저 제작되기도 하였다는 점을 보아도 그의 판화는 일반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이는 판화에 그칠 수 없을 것같아요.”

뭉크의 <절규>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 절규 이외에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하나 골라달라는 주문에 그는 <화가와 모델>을 꼽았다. “뭉크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화면 속에 무대 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듯한 공간이 설정되고 그 안에 강렬한 감정의 표현이 응축된 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이러한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보이는 것은 <화가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뭉크는 말년에 오슬로 외곽의 에켈리(Ekely)로 이동하여 누드사진과 초상화를 많이 제작하였습니다. <화가와 모델>에는 뭉크가 자신을 작품 속 인물로 등장시키면서 자신의 집 내부를 하나의 무대로 전환시켜 드라마적 상황을 연출하면서 강렬하고 극적인 요소를 함께 표현하고 있어서 그 당시 뭉크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예가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물었다. “뭉크의 작품에는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담겠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이것을 극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 그것을 응축해서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절규>를 포함하여 뭉크의 더욱 큰 세계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으며, 한국의 관람객들이 뭉크가 작품 속에 담고 있는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주제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의 기획자로서 이번 기회를 통해 뭉크가 위대한 예술가임을 알리는 것과 그의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따라서 관람객들께서는 뭉크의 작품을 통해서 하나의 소재로서의 감정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예술적 경로를 통해 표현되었나에 집중해주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서양 근현대미술사가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현실에서 뭉크와 같이 미술사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던 작가의 진정한 위상과 가치를 연구하는 작업은 노르웨이 출신의 큐레이터인 욘 우베 스테이하우그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성공하길 바란다는 말로 욘과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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