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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 개인전

하계훈

박성순 개인전


하계훈(미술평론가)


오늘날 우리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많은 것들을 접하며 산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치고, 대형 쇼핑 몰에는 옷, 식품, 전자제품 등이 가득 차있고 그 옆에 붙어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여러 편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며 관람객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크고, 많고, 새로운 것은 아름답고 사랑 받을 만한 것으로 추앙된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백화점과 영화관 입구를 향해 길게 줄서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가히 종교적이다. 마치 과거의 예배의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서는 사람처럼 그들은 물신(物神)을 숭배하기 위하여 바쁘게 이러한 곳으로 들어선다. 혹자는 이러한 행동을 삶의 허무를 애써 잊으려는 몸짓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이 자신을 어여삐 보살핀다는 증거를 확보하고싶어한다. 비록 그 신이 물신이라는 허상일지라도.


K양, 테라코타, 73×23×17cm, 2003


이러한 사회에서 소매와 바짓가랭이에 붉은 흙을 묻혀가며 자기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빚어내는 박성순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고 물신의 은총에서 멀리 떨어진 그저 그런 예술가로 보일 수 있다. 성전의 벽화와 제단의 조각에 감탄했던 사람들은 이제 제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가졌더라도 자동차의 속도감과 화려한 옷과 영화 속의 환상이 주는 쾌락을 따라잡지 못하는 예술가에게 더 이상 존경의 눈빛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현실적 가치에 의해 평가된다. 현인(賢人)의 말보다 개그맨의 말장난이 더 높은 화폐가치를 가진 세상에서 한국의 전통미를 고수하고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는 일은 별로 재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폄하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박성순은 일찌감치 이 보람없는 작업을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기법과 맥이 닿은 테라코타의 순수한 맛과 해부학적 정확성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포즈의 인물을 10년 넘도록 표현해온 작가의 작품에는 찰나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없는 예술적 성숙함과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흙에 대한 우리의 향수일 수도 있고, 대다수의 인체 조각이 갖고 있는 서양적 미감에 식상한 우리의 눈을 구원해주는 청량제일 수도 있다.

박성순 작품의 인물들의 표현은 사실적이며, 그들의 동작이나 표정은 어떤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기보다는 사색적이고 관조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은 홀로 있거나 함께 모여 있거나 별로 변함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리스 조각의 세련미도 없고 애써 고상하게 보이려는 시도도 없다. 작가는 자신 주변의 인물들을 모델로 하면서 그들의 외면의 모습뿐 아니라 마음속의 생각까지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록 고령토나 갯벌의 진흙처럼 부드럽고 쫀득한 맛이 없고 거칠기만 한 황토지만, 이 흙으로 빚어낸 인물상들이 뿜어내는 사실적이고 생명감 넘치는 충격은 박성순의 흙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이해와 작업에 대한 뚝심에서 비롯된다. 물론 가마의 크기나 흙의 건조 문제 등의 현실적 제작 여건의 제한으로 작가의 예술적 역량을 100퍼센트 다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것은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쇄해도 될 듯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박성순은 이제까지 자신의 테라코타 인물작업을 총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는 출발점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의 주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경쾌한 이미지 속에서 그가 이제까지 지켜온 소박하고 건강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은 작품들이 이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한 번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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