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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미술관

하계훈

사립미술관의 출발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부터 시작하여 1976년 토탈미술관, 1980년대 호암미술관, 워커힐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으로 이어진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들은 주로 개인의 컬렉션이 바탕이 되는 순수 사립미술관과 기업이 수집한 미술품이 바탕이 되는 기업관련 미술관으로 크게 양분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외에도 사립미술관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미술관으로는 사립대학에서 설립한 미술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수나 역할에 있어서 앞의 두 가지 성격의 사립미술관들과 나란히 비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점이 있으므로 이번 논의에서는 대학미술관 부분을 배제하기로 한다. 

개인이 주축이 되는 미술관은 다시 순수 사립미술관과 재단화된 미술관으로 나뉠 수 있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은 재단이나 기업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에 비하여 재정상태나 운영환경이 열악함을 이야기 해왔다. 실제로 이러한 지적은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가 이제까지 한국박물관협회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사립미술관에 대한 공공재정의 지원 근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관장


개인이 막대한 사재와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수집해 온 소장품을 사회와 공유하고자 미술관을 세운 결정은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립미술관을 설립한 설립자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미술관의 경우 그 규모나 소장품의 양과 질, 설립자의 경험과 학문적 깊이 등은 천차만별이다. 국공립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우에는 관장이나 학예관 등 미술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력에 대한 임명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당 인물의 자격이 검증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나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는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공간, 소장품 수,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이 갖춰지면 미술관은 큰 어려움 없이 설립되고 누가 관장직을 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검증장치나 정해진 규정이 없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사립미술관들은 설립자의 대를 이어 2세대 승계의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선 것 같다. 이러한 논의가 제기되는 것은 아직도 사립미술관이 설립자와 연관된 운영체제를 유지하여야 하고 그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설립자 혹은 관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이 관장직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사립미술관 운영의 일선에 설립자의 특수관계인이 개입하는 경우는 우리나라 이외에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으나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거의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우리나라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설립, 운영하며 그 성과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공과 실패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립미술관의 운영 실태 


유럽과 미국의 경우에는 개인이 세운 미술관일지라도 비영리법인화하여 공익성을 천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들은 비영리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몇몇 미술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개인 소유의 사립미술관으로 존재하면서 상당부분을 정부의 공공재정에 의존한다. 하지만 어느 미술관 하나도 연례보고서를 통해 공공재원을 사용한 기관으로서 투명하게 회계를 공개하는 경우가 없다. 그뿐 아니라 일반적인 운영에 관한 제대로 된 연례보고서도 발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직까지 사립미술관이 공공적 의무감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러한 점은 재정지원의 당사자인 정부 주무부서에 의해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개인소유의 사립미술관에 대한 공공재정의 지원의 정당성은 해당 미술관이 명실상부하게 개인의 소유에서 공공의 소유로 전환되었다는 점이 명백하여야 한다. 특히 회계 부문에서 이 점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공공의 의무를 다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편법적으로 사단법인이나 영리법인을 설립하여 정부의 재정지원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단법인의 경우에는 재정과 관련이 없는 인적 구성원 중심의 법인격을 가진 단체일 뿐이다. 따라서 전세계 어디에도 미술관이 사단법인 성격으로 설립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공재정을 지원받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학회나 협회처럼 사람 중심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과 같이 재정 운영에 관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법인격을 가진 기관으로서는 사단법인이라는 법인격을 갖는 것이 결코 적절하지 않다. 물론 영리법인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경우에는 결국 정부가 국민의 재산인 공공재정을 지원함으로써 영리법인의 영리 취득행위에 일조를 하는 셈인 것이므로 더욱 적절치 않다.


문제점


필자가 파악한 우리나라 사립미술관의 문제점은 첫째, 설립의 절차가 비교적 용이하여 설립까지는 별로 어려움이 없지만 설립 단계에서 향후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는 장치가 없기때문에 설립 후의 부실운영이 쉽게 예견되는 점이다. 이 점은 우선적으로 설립자의 미술관 운영에 대한 인식부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설립과정에서 등록업무를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 제도가 실시되고 선출직 기관장이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사립미술관의 등록을 맡게 되면서 자치단체의 관내에 설립된 미술관의 수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적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미술관의 설립이 이전보다 용이해지게 되는 것이다. 2007년 필자가 현장을 다녀온 미술관 중에는 미술관 입구에서 전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미술관장 가족의 살림 공간을 지나치게 되는 우스꽝스런 공간이 지방의 미술관으로 버젓이 등록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처럼 사립미술관의 설립 등록을 시,도로 이관한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의 규정 아래서는 앞으로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내의 사립미술관을 자신의 업적 쌓기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맞물린다면 지금보다 점점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미 등록된 미술관이라도 등록 당시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꾸준한 관찰이 이루어져야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본래의 설립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운영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경우 재심의를 통해 미술관 등록 자격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를 새롭게 판단하는 절차가 중앙 정부적 차원에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립미술관이 안고 있는 두 번째의 문제점은 미술관의 고유 업무이자 중요한 업무인 학예연구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몇 해 전부터 학예인력 지원사업을 통해 상당수의 미술관들이 학예인력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 사업이 지속적이지 않은 것도 문제이고 이러한 인력이 지원되었는데도 개별 미술관에서 소장품과 관련된 수준 높은 연구업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을 열심히 수집해 온 설립자의 열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학문적인 연구기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사립미술관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세 번째 문제점은 오늘날과 같은 경쟁의 시대에도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경영이나 마케팅에 대한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관람객들의 시각에서 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보다는 설립자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조그만 식당 하나를 열어도 몫 좋은 곳을 찾는데 하물며 미술관을 세우는데 이러한 고려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립미술관의 설립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연고지나 지방의 폐교시설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미술관을 설립함으로써 적지 않은 수의 사립미술관들이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관람객의 접근편의성을 외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립미술관들의 위치선정은 미술관의 공공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면이 있다.

미술관 사업의 내용을 홍보하는 면에서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은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방송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이 부족한 편이다. 이런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접근성도 용이하지 않은 위치의 미술관에서 실시하는 사업을 일반인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화활동 영역의 사업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해당 미술관의 관장과 직원들은 예산부족과 담당인력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사업과 관련된 적극적인 홍보는 그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립미술관의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점은 미술관 설립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미술관을 공공의 재산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이 사적으로 관리하거나 향후에 자녀들에게 넘겨줄 사적 재산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미술관이란 근본적으로 비영리적이며 공익적인 기관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공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개인의 소유물과 재산이지만 일단 공공의 미술관으로 개관한 이후에는 미술관을 사고팔거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미술관이 앞으로 어떻게 해서 보다 공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미술관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공적 지원을 위한 전제조건


사립미술관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재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공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사립미술관들은 공적 지원을 요구하기 앞서서 스스로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공성이 준비되어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립미술관의 공간과 소장품들이 사적 재산으로 머물러 있고 미술관을 폐관하는 순간 미술관의 재정과 자료 등이 다시 개인들에게 귀속될 수도 있는 상태에서는 정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정부로서도 지원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립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의 입장에서는 미술관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공성을 올바르게 인식하여 처음부터 될 수 있는 대로 개인이 임의로 설립한 단순한 사립미술관으로 출발하기보다는 비록 자신의 재산이지만 이미 사회에 환원할 의사가 분명하다는 것을 밝히고 미술관을 재단법인 등의 공적 기구로 출발시킴으로써 정부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사적 재산에 대한 공적 지원이라는 논리에서 파생되는 염려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비록 개인의 재산과 소장품으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비영리 재단으로 등록되어 있고 미술관을 운영하는 핵심 기구로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개인의 재산과 소장품을 가지고 사립미술관을 열기보다는 정부의 관리 능력을 신뢰하고 정부에 모든 것을 기증하여 개인의 소장품으로 출발한 문화자산이 정부의 관리 아래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일부의 예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소장품들이 본격적으로 정부에 기증되어 공공적 문화자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 뿐 아니라 설사 사립미술관을 개관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 미술관을 설립자 개인과 그 가족들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일부 사립미술관들은 아직 정부의 공적 지원을 요청할 준비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사립미술관의 설립과 별도로 개인의 소장품이 흔쾌히 국가에 기증되지 않는 이유를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에는 개인 소장가들이 자신들의 소장품을 정부에 기증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관리 능력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정부 당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화자산의 관리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나 무능력 때문에 문화자산이 개인의 손에서 힘겹게 유지되거나 상업적 영역을 통해 공공적 접근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는 자기반성과 함께 앞으로 적극적 기증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검토의 기회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사립미술관뿐 아니라 국립이건 공립이건 미술관이라는 기관 자체가 수익성이 있는 기관이 아니므로 설립 이후의 운영은 적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술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이 점을 설립준비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미술관사업에 착수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소규모 사립미술관들은 이러한 설립 과정과 설립 이후의 운영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설립자의 열정에 의존하여 일단 설립해놓고 보는 식으로 미술관을 개관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문제점이 누적된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 운영의 핵심점인 두 가지 요소는 소장품 해석과 관련된 전문성과 재정의 안정성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서 전문적인 운영이 잘 이루어지는 미술관은 재정적인 면에서도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으며, 다시 재정적으로 안정된 미술관은 전문적 인력의 활용이나 그 밖의 필요한 투자에 있어서 다른 미술관보다 적극적일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국내외에서 대부분의 모범적인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는 설립 당시부터 이러한 두 가지 요소에 관하여 충분한 검토를 거쳤으며 설립 이후의 운영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많은 경우 그들은 미술관 운영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처음부터 미술관 운영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하고서 출발하였으며 비교적 충분한 후원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미술관 사업을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이나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Isabella Stewart Gardner) 미술관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폴 게티(J. Paul Getty) 미술관 등의 예에서 사립미술관의 모범적인 사례를 배울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은 소규모의 재정과 소장품을 가지고 사립미술관을 설립하려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뜻있는 인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례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설립하였거나 이제 설립하려고 준비하는 미술관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서 참고할 만하다. 

일단 사립미술관이 설립되면 그 운영에 있어서도 투명성과 전문성이 뚜렷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정 운영면이나 전문 인력의 활용에서의 투명성은 필수적이다. 앞의 외국 사례처럼 미술관의 설립 목적이 전문적인 미술품 해석을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미술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소양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거창한 설립목적을 선언해놓고 실제로는 제대로 운영의 활성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든지 설립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전문성과 관계없이 요직을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문화사업과 사교활동에 몰두한다면 이러한 사립미술관들에 대한 정부의 공적 지원은 그 명분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사립미술관의 공공지원을 논하는 마당에서 사립미술관들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만족시킨 이후에라야 정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을 제대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금부터라도 준비되지 않은 사립미술관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는 그 설립준비 단계에서부터 설립자가 올바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전문가 집단의 적절한 지도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맺음말 - 사립미술관장의 세대교체


대부분 198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 가운데 일부는 이제 관장의 교체를 고려하여야 하는 시점이 이르렀다. 현재 대부분의 사립미술관들이 재단법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장의 교체에 관한 의사결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설립자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 설립된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 가운데 한 미술관에서 설립자가 자신은 설립자로서 남아있고 자신의 미술관 운영을 위하여 전문인 관장을 선임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사립미술관도 이제는 설립자의 주관적인 의사보다는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 기구의 심사를 거쳐 미술관의 관장이 임명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가족이기 때문에 내 미술관의 관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FTA시대에 미술관 운영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자들과 역량을 겨루어야 하는 오늘날 얼마나 낡고 불합리한 결정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사립미술관 설립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동적으로 배제될 필요는 없다. 관장의 자녀들 가운데 지난 수년 혹은 십여년 동안 미술관을 통해서 문화적 소양과 경험을 쌓고 개인적인 학습을 마치고 사립미술관의 운영을 통한 사회적 기여에 대한 책임감을 함양한 사람들을 굳이 설립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음 세대의 미술관장 자격에서 배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양과 책임감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단순히 관장이나 설립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적임자의 기회를 박탈하고 관장직을 맡는 경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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