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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 향불이 지어내는 이항대립적 사유와 치유의 미학

하계훈

향불이 지어내는 이항대립적 사유와 치유의 미학


하계훈(미술평론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회화는 주로 시각적 표현에 의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미학적 가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적 자극을 위해서 작가들은 색채와 형태, 원근법과 다양한 운필법 등을 연구해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작가들의 노력은 유파별로 분류되어 연구되거나 사회사적 맥락에서 고찰되기도 하였는데 미술사적으로 볼 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들에 의해 회화의 근본 속성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왔다.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는 제임스 엘킨스 교수는 그의 저서 가운데 한 편에서 모든 그림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그림은 다른 그림이 말해주지 않는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구술된 이야기가 언어로 전달되듯이 회화의 이야기는 작가가 구사하는 조형적 수단에 의해 전달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작가의 고유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길우는 한국화를 기본으로 작업해왔다. 그러나 전통적 방식의 조형을 넘어서는 확장된 조형방식에 대한 관심이 이길우의 마음속에서 항상 창작에 대한 자극이자 부담으로 잠재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을 마치고 작업실을 나서다가 우연히 거리의 낙엽이 허송에서 역광 속에 비춰지는 장면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이길우는 새로운 조형 표현 방법으로 향(香 incense)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자신의 작품 창작의 ‘언어’로 선택하게 되었다.

향은 라틴어로 태운다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 즉 그것은 물질로서의 존재가치 보다는 스스로를 태움으로써 발생하는 과정과 결과에 의해 그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향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개념은 의식, 명상, 치유 등일 것이다. 주로 식물의 잎을 가공하여 만든 향은 불에 타면서 나오는 연기와 냄새로 그 공간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실제로 불편한 냄새를 중화시켜줌으로써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보다 쾌적하게 머물 수 있게 해주는 편익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길우가 순지에 향불의 끝부분을 접촉시켜 불구멍을 내는 과정은 새로운 회화적 조형과정이면서도 명상을 통한 정신적 수련과 치유, 작가 정신의 정화, 그리고 태워서 사라지는 것이 반복됨으로써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조형을 탄생시키는, 마치 생명의 순환과정과 같은, 불교적 표현을 빌자면 윤회적인 창작과정과 조형상의 변성작용을 복합적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종이가 얼마만큼의 크기로 태워져 구멍을 만드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밑그림이 그려진 순지에 향불로 한점 한점 완성된 그림을 향하여 구멍을 내가는 것은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긴장과 예술적인 노동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다시 그것을 흘려보냈을까 궁금하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형태도 없는 예술이라는 유령을 향해서 자신을 태우며 나아가는 작가의 숙명에 대해서........

평론가 윤진섭은 이길우가 보여주는 이러한 작업과정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말하며 “그는 제의에서 정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분향의 의식처럼 끈기 있는 인내심으로 이 행위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마치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식을 수행하는 것처럼 향불로 형상을 지어내고 다시 그 이미지를 바탕에 그려진 이미지와 겹쳐놓음으로써 이중적인 이미지를 조합하여 최종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이길우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 등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하나로 접합되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길우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전보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서로 다른 개념의 두 가지 치유”라는 주제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적인 치유와 몸의 치유라는 두 종류의 치유에 대한 가족사에 바탕을 둔다. 개인적으로 부모님의 병환과 노화를 목격하며 창작에 몰입해온 작가가 포착하는 삶의 콘트라스트는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대조 등이다. 부친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하여 작가가 부모님께 전달하는 약은 작가에게 이러한 대조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환자에게 투여하는 알약의 형상이 넓게 전개된 화면 위에 겹쳐서 향불 작업으로 전개되는 산수의 풍경은 인공적으로 화학처리된 알약이 우리의 육신을 치유해주는 반면에 산수자연이 우리의 정신을 위로하고 치유해준다는 대조적인 상황을 한 화면에 겹쳐서 제시하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서로다른개념의 두가지 치유-의자와 풍경>, <생성과 소멸> 등의 작품에서도 이제까지 이길우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천착해온 이질적인 대립항의 결합이라는 화두를 함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작가 자신, 혹은 작가의 아버지(결국 이 둘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일 수 있다)의 것으로 추측되는 웃옷의 모습이다. <pm 6시>, <am 6시>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에서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아버지의 구겨진 저고리가 벽에 걸려있고, 다시 다음날 이른 아침 출근하기 위해 입을 준비가 된 저고리가 어느새 반듯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벽에 걸려있다. 아마도 어머니가 그사이에 출근 준비를 위해 다듬어서 새롭게 걸어놓았을 것 같은 그림에서 우리는 작가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와 부부애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타인과 소통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때로는 잔잔히 반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길우는 이제까지 자신이 탐구해온 이항대립적인 요소의 결합과 그로부터 유래되는 삶의 의미, 그리고 향불을 통해 탐구해 온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치유, 윤회적 철학 등을 종합하여 작가가 이제까지 수행해 온 예술적 사유의 중간정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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